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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의심스러운 싸움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0
존 스타인벡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과 영화로 내게 기억되는 작가지만, 정작 '분노의 포도'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본 기억도 없고.
다만 20세기 초 미국의 일반 서민의 삶을 매우 건조하게 그려낸 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오래 전에 구매해놓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오픈파트너 이북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었다.
3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사과 과수원 농장주들과 그들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파업으로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캘리포니아 어느 지역의 금력과 권력을 독점하는 소수의 농장주들은 총과 법을 앞세워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너뜨리려 하고, 그에 대해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든 저항하려 하지만, 사실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이 파업이 시작되고, 조직화되는데 기여한 사람은 맥이라는 열성 공산당원과 이 파업으로 공산당 활동에 처음 합류하게 되는 짐이다. 초기에 소개 되는 짐의 성장 배경과 가족사는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하다. 그런 배경이라면, 정말 아무 잃을 것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임하겠구나 싶었다. 반면 맥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희미하게 나타난다. 그는 끝까지 그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남아 있다. 그러기에 그의 생각과 행동 또한 짐과는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짐의 말과 행동은 이해가 가지만, 맥의 말과 행동은 조금 낯설고 새롭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얼핏 보면,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농장주들을 비판하는 것으로만 보일 수 있다. 분명 그러한 면을 포함하지만, 또한 맥으로 상징되는 공산주의 활동 또한 섬뜩하게 느껴지게 된다. 농장주들의 폭력이 잔인하고 섬뜩할 만큼, 맥의 사고 또한 냉혹하기 이를데 없다.
개개인의 생명과 행복에 대한 존중을 각자 자기들의 목적보다 후순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맥과 농장주들은 극과 극에서 묘한 공통점을 드러낸다. 그러한 사고 방식을 통해 이루게 되는 체제는 결국 마찬가지라는 말을 스타인벡은 하고 싶었던 걸까?
공산주의의 치명적인 결함인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씨앗을 맥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보게 된다. 개인의 생명을 집단의 이익보다 후순위에 놓은 결과로, 결국 '집단'을 상징하는 일부 권력층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독재체제로 변했던 스탈린 정권과 북한 정권의 모습이 맥의 - 생각보다 낯설지 않은 - 말과 행동에서 느껴져 온다.
그렇다고 농장주들이 대표하는 체제의 모습 또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결국 공산주의나 20세기 초의 자본주의나 다수의 희생위에 소수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이란 점에서는 묘한 일치점 가지는 것이 아닐런지.
이 소설은 발표되었을 때 좌우 양쪽으로부터 모두 공격을 당했다 한다. 좌나 우나 각자 충분히 불편해할만한 모습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현실적이었던 것이라니. 30년대라면 스탈린의 잔혹한 독재가 세계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의심스러운 싸움' 이란 제목은 그만큼 의미심장한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그 싸움을 위해서 도달하게 되는 곳은 어디인가.
이 소설은 사실 아무런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 듯 하다. 그냥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마음 아프다. 마지막 결론은 그만큼 많은 걸 보여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