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정훈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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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 피터 자이한

The Accidental Superpower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이탈하고 스스로 고립주의를 선택할 것이다.”

피터 자이한, 스스로를 지정학 전략가이자 글로벌 에너지, 인구 통계학, 안보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민간정보 기업인 Stratfor에서 분석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2012년에 자신의 회사인 Zeihan on Geopolitics를 설립했다. 2014년에 미국에서 나온 이 책은 자신과 자신의 회사의 역량을 홍보하는 역할이 클 것 같다.

지리, 역사, 정치, 사회 등 다방면의 지식을 모아서 분석하는 내공은 상당해 보인다. 그는 지정학과 인구통계학을 결합한 프레임을 기반으로 과거의 역사를 리뷰하고, 현재의 상황을 상당히 명료하게 분석한다. 다만 미래를 전망할 때는 그의 외삽이 조금 과해 보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의 미국의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듯 해서 그의 이 책은 상당히 유용하다 생각된다.

저자는 먼저 어떻게 미국이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기술한다.(주1)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는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기반으로 형성된다.(주2)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에게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안보를 제공하는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 사회의 모습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오랜 기간 동안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상호 협력해서 유럽 연합을 만들었다. 세계 곳곳의 유럽 식민지들이 자유를 찾았다. 일본은 이제 더 이상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위협이 되지 않았고,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로부터의 위협 없이 내부 통합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모습은 그 이전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기이한 일이었다. 세계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모든 것, 에너지 공급 시장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브레튼우즈 체제 기반하에서 발전했다.

저자는 이러한 체제가 앞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2015년부터 2030년까지 향후 15년간의 세계의 변화를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를 도출한다. 첫째는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둘째는 인구역전 현상, 셋째는 셰일 혁명이다. 그 모든 격동을 미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한다.

애시당초 브레튼우즈 체제는 소련의 견제를 목적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소련은 붕괴했다. 오늘날의 러시아는 그 이전의 소련만큼의 위협적 대상은 아니다.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브레튼우즈 체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다.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자유무역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미 해군은 연간 족히 1,500억달러를 쓴다. 미국이 이 체제로부터 전략적 이득은 얻지 못하면서 체제 유지비용을 계속 부담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면 브레튼우즈체제는 존속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인구 역전 현상은 주요 국가의 연령대별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결론은 이 부분에서도 미국만이 인구 역전 현상으로 인한 충격을 가볍게 겪을 것이라 말한다. (주3)

사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번째인 셰일 혁명이다.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였지만, 2014년 기준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석유를, 러시아보다 천연가스를 더 많이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다. 세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은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운송 체계에 더 이상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현재의 세계 정세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서서히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이탈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인구 구조는 역전되고 있으며, 셰일 혁명은 미국으로 하여금 에너지 유통 경로를 방어할 필요가 없게 하였다. (주4) 미국은 에너지와 식량을 모두 자급자족할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미국은 나머지 세상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결국 '개입하지 말자'가 세계를 대하는 미국의 기조가 된다. 오랫동안 미국의 보호를 받고 사는데 익숙해진 나라들은 이제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제 미국의 안보 우산 때문에 얌전히 지냈던 나라들은 이웃나라를 상대로 마음껏 도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전제하고, 전세계의 주요 국가,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인구통계학적 분석을 진행한다. 결국 유럽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며, 캐나다는 분열될 것이라고 본다. 중국 역시 북부, 중부, 남부를 통합하고 있는 결속력이 약해질 것으로 보며, 일본의 팽창주의는 중국을 계속 고민케 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도.)

대만과 한국의 입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지정학적으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국가이고, 뛰어난 산업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동맹 체제에 포함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크다고 본다. 다만 한국, 대만이 동남아시와 오세아니아의 나라들과 엮여서 경제 클러스터를 형성한다면, 미국에게도 매력적이 될것이라 한다.

전세계적으로 혼란이 가중되겠지만, 미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을 지속하게 될 것이라는게 저자의 결론이다.

지난 번에 읽은 [예정된 위기]의 저자 안병진 교수님은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라는 책에서 자이한의 논리가 지리학적 인구학적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있으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측면은 자이한이 놓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만의 위기가 아니고 전세계적인 위기로 퍼져나갔고, 그 영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주요 국가들은 금융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과연 미국이 피터 자이한의 논리대로 완전한 고립주의로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가 전세계를 흔들고 있다.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에 대해서 여야할 것없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미국은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아직 놓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보에 대한 부담을 이제는 동맹국들에게 넘기려 하는 모습은 마치 후퇴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에 함대를 파견하라고 한국과 일본에 요구하는 모습은 일견 소름끼칠 정도이다.

전세계적인 패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움직임과 세계 무대에서 퇴장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언뜻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결국 오버랩되면서 수렴해갈 것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도발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일본의 우익이 지향하는 바가 어렴풋이 짐작되기도 한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정치 외교에서 세계적인 시각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갈지 미리 알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로서는 앞으로 어려운 시절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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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저자는 이집트, 오스만 투르크, 이베리아(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 독일이 어떻게 각각의 역사적 시점에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지리적 위치와 기술의 상호작용이었다. 영국은 이베리아보다 원양 항해기술을 더 잘 이용했고, 독일은 영국보다 산업화를 더 잘 활용했다. 그러나 이 두 요소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지리적 입지가 있었으니, 그게 미국이었다. 거대한 곡창지대를 보유한 미국 땅은 미시시피 강을 중심으로 하는 수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교역을 통한 자본 창출이 용이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변 국가들 중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으며, 아시아나 유럽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미국은 지리적 이점나 기술발달(즉, 산업화) 측면에서 기존의 어떤 강국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산업기술들이 확산될 무렵, 미국에는 이미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역량을 갖춘 교육 체제와 금융 체제를  자체적으로 구축한 도시 중심지가 50개에 이르렀다. " (115p)

(주2) 미국은 1890년 부터 세계의 초강대국이 되었고, 이 막강한 힘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제 2차 세계 대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막강한 지상 군사력을 지닌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구축하였다. "자유무역"을 캐치프레이즈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추진하면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첫번째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두번째로 모든 해상 운송의 보호, 세번째로 전략적 우산이었다. 미국 시장은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거의 유일한 시장이었기에 모든 나라들이 진입을 원하는 시장이었다. 그러한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해상 운송이 필수적이다.  그 이전 시대에는 이 해상 운송은 항상 위험하였기에 각 나라 별로 별도의 해군력을 운용해야 했으나 이제는 미국이 해상 운송을 보호해주겠다고 하니,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해군력은 사실상 한계에 달했지만, 미국은 6,000척이 넘는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체제에 합류화는 나라는 모두 소련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단 한가지 조건은 "냉전은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도록 내버려둔다는 조건이었다." 이 세가지 조건은 당시 서유럽 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브레튼우즈는 삽시간에 확대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도 1969년 소련과의 국경 분쟁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주3) 청년층, 장년층, 노년층 등 각 연령대 별로, 소비와 투자의 패턴이 다르다. 청년층은 소비대비 소득이 크지 않지만, 장년층은 소득이 늘어 잉여 소득을 자본시장에 투자하게 된다. 선진국 전체에서 장년층 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대규모 잉여자본이 창출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이 은퇴하는 시기가 되면,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투자는 하지 않으며 대부분 연금을 받게 된다. "몇 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금융부문 전체가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자본을 제공하던 거대한 세대 대신에, 규모가 작은 세대가 등장하게 된다. 자본 비용은 역사상 최저에서 역사상 최고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게 된다. 특히 역사상 가장 덩치가 큰 은퇴 집단의 연금과 의료비 지출을 고려하면 말이다." (161p) 이는 전세계 선진국 전체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저자는 지금까지와 같이 자본이 풍부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며, 앞으로도 이런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 부분에서도 다른 나라 대비 유리하다. 미국에서만 이러한 인구역전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인구가 다른 주요 국가 대비 가장 젊으며, 이민자들이 잘 동화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은 인구 감소가 겨우 한 세대 동안 발생한다. 미국만 유일하게 1980년에서 1999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Y세대)가 인구 구조를 역전시킨다고 한다.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는 다른 주요 국가에서 소비 시장의 성장은 곧 정점을 찍게 된다. 2030년이면 미국만이 자본이 풍부한 유일한 나라, 시장이 성장하는 유일한 나라로 남게 된다고 본다.

(주4) 2008년 현재 미국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4%, 이 가운데 5% 정도는 에너지다. 지난 6년 동안 셰일은 이 5%를 절반 정도로 줄였고, 앞으로 0이 될 전망이다. 수출은 10%정도인데, 북미 지역이 이 중의 1/3을 흡수한다. 결국 미국은 세계 에너지 안보, 무역 공급 사슬의 안보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무역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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