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위기 -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것인가?
안병진 지음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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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한일 관계로 인해 하루하루 괜시리 긴장하게 되는 날들이다. 미국은 당연하지만, 한일 관계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의 서투른 봉합이 가진 한계를 목격해서일까, 미국 측에 유리한 상황이기에 사태의 진전을 내버려 두고 있는 걸까.


트럼프의 등장으로 시사되는 미국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 갑작스러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그 자체를 목적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미국 본토인들은 남북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트럼프의 재선에 조금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비중이 얼마나 클까. 그러다보니 중국을 견제하는 큰 그림에서 어떤 포석인지 궁금해진다.


방위비 분담액 증액 이슈에서도 느껴지는 바와 같이 미국은 전세계적인 군사력 전개에 대해 그 필요성과 유용성을 다시 질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셰일 가스가 미국 본토에 넘치도록 있는데, 굳이 미국이 중동에 신경을 써야할 이유는 무엇일까? 남은 건 중국과 러시아. 중국이 막강하지만, 미국 경제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중국과의 신경전은 구 소련과의 냉전과는 구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상호 협력 관계로 가는 것은 결국 미국의 압박 때문이겠다. 절묘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 세력과 미국의 동맹국이 만나는 곳이 하필이면 한반도이다. 왜 늘 이래야만 하는 걸까. 이 상황에서 남북 문제는 중러 연합과 한미일 동맹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걸까. 남북은 종전을 선언하고 그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을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나아가서 국교 정상화까지 갈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은 어떻게 나올까?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어떠한 생각으로 임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걸릴까?


어떤 전문가도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궁금해서 어떤 책이 있을까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저자인 안병진 교수님음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미국에서 미국 정치를 가르치다 현재는 경희대에서 미국학과 교수로 재임중이시다. 저자는 1962년의 쿠바 사태의 진행 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케네디 정부, 소련의 흐루쇼프,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리뷰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결국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서 상대방의 의도를 간파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그 프레임중 하나는 '베두인 전설'이다. 늙은 베두인 족장이 정성껏 키우던 칠면조를 누군가 훔쳐갔다. 족장은 큰 위험을 느끼고 두려워 하면서 아들에게 경고했으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무시했다. 결국 어느 날 낙타도 도둑 맞았고, 족장 아들의 딸이 강간을 당하기에 이른다. 족장은 이렇게 한탄한다. "칠면조를 훔쳐갈 수 있다는 걸 놈들이 알았을 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바라보는 케네디 정부에게 쿠바는 칠면조이다.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용인하는 순간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위기의식이 케네디를 지배했다. 그 첫번째가 베를린이었다. 당시 동독의 한가운데 있던 베를린 서부 지역은 미소 대결의 주요한 전장이었다.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배치의 목적이 베를린을 장악하려는 흐루쇼프의 큰 전략의 한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이 두번째 프레임인 '베를린 대전략 가설'이다.


이 책은 당시 위기의 단계별로 나타난 케네디 정부의 대응과 그에 이르기까지의 의사 결정과정을 '베두인 전설'과 '베를린 대전략 가설'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사 결정이 이러한 프레임을 인정하고 나면 더 깔끔하게 설명될 수 있음을 보인다. 


쿠바 위기는 그 진행 과정 중에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차츰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고, 그 의도가 '베두인 전설'이나 '베를린 대전략 가설' 같은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케네디는 결국 소련의 흐루쇼프와 핫라인을 설치하게 되고,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까지 추진하던 중에 암살되고 만다. 후임자는 당시 부통령이면서 민주당내 강경파였던 존슨. 그는 베두인 전설 프레임에 기반한 의사 결정으로 미국을 베트남전이라는 수렁으로 이끈다. 소련에서도 흐루쇼프가 쿠바 위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실각하게 되고, 보다 호전적인 브레즈네프가 들어서면서 냉전은 더 연장되고 말았다.


 '베두인 전설' 같은 프레임이나, 그 이전에 겪었던 강렬한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 등이 쿠바 위기에서 양측의 의사 결정 과정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짚어보면서 저자는 이 과정에서 얻게 된 깨달음을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 적용시켜보고자 한다.


저자는 북한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지를 생각해보자고 한다. 한국 전쟁 때 미국의 어떤 장군은 '북한에 대한 폭격을 통해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북한은 미국의 군사 전력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고 한다. 북한 입장에서 소련과 상대했던 미국의 가공할 만한 핵전력은 북한으로 하여금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격심한 신경발작적 반응을 보이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은 '허드슨 하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B-29 폭격기를 평양으로 날려 보내어 모의 핵폭탄을 투하한 적도 있다고 한다. 거대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본 당시 평양에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와 트라우마는 어땠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저자는 북한 지도부가 이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북한에게 있어서 핵무력은 결국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수단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핵무기 획득 자체가 목적이라면 은폐하려 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이스라엘 처럼 모든 것을 지하에 건설해야했을 것이라 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북한의 핵보유를 정당시 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추구는 수십년간의 경제 제재와 봉쇄를 초래했으며, 북한 정권은 언제나 교체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으며, 북한 국민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북한의 핵포기가 가능하냐고 하는 질문에, 저자는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한다. 쿠바와 국교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냐는 질문은 오바마 시대 전까지만 해도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 오바마 시대 이르러 미국과 쿠바의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국교 정상화를 이루었고, 오바마는 쿠바를 방문하기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가 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도 이와 같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보다 더 다양한 국제 관계가 작용하는 한반도에서 북한 핵문제는 수많은 행위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상대방이 두는 수에 따라서 부단히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바둑과 같다. 필연적 미래를 상정하는 결정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상황에 따라 핵문제는 한없이 연장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때에 갑작스러운 해결을 볼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쿠바 위기 이후에도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까지 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미완성이다. 북한과의 평화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베두인 전설' 같은 프레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당면한 이슈 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방안을 (마치 쿠바 위기 때 캐네디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계속 제안하고 실행하는 것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내는 것은 정치적 용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책 두께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종이책으로 36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결코 적지 않았다. 쿠바 위기의 진행 과정은 상당히 자세해서 그 과정의 디테일에 큰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흥미진진했다.


안병진 교수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라는 책을 2016년도 후반에 읽고 참 감명 깊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지난 미국 대선의 구도를 진단하면서 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했었으나 현실은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미국 전문가인 저자도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었다. 그 책이나 이 책에서도 느껴지는 바 저자는 리버럴한 이상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때로는 그 이상으로 인해 현실의 냉엄함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 이상에 대한 희망으로 인해 현실의 결론도 그 방향으로 바이어스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작은 우려 정도. 


그럼에도 이분의 논의 자체는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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