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 속에서
조 월튼 지음, 김민혜 옮김 / 아작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들 속에서 - 조 월튼/김민혜/아작

책을 통해, 책으로 연결된 만남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소녀의 이야기
특히 SF를 통해서... 특이한 설정이지만, 맘이 많이 와 닿는 것은... 
저도 SF/환타지 애독자여서 일 겁니다. 


마법과 요정.. 마치 정말 있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난 꽃들이 녹아서 없어지고 잔물결들이 퍼져나가고, 공장은 무너져 폐허가 되고,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무들과 담쟁이덩굴이 거길 뒤덮고, 웅덩이는 진짜 물로 변하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웅덩이 물을 마시고, 이윽고 요정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거길 궁전으로 삼을 줄 알았어.” 


아래는 너무나 동의가 되는 문장이네요. 전 책 쓰는 건 포기지만.. 그런 책은 여전히 읽고 싶습니다.

세상엔 끔찍한 일들이 있고,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엔 위대한 책들도 있다. 어른이 되면, 너무 따뜻하진 않은 날 긴 의자에 앉아 읽을 수 있는 책, 읽으면서 여기가 어딘지 몇 시인지 완전히 잊고 자기 머릿속 생각보단 책 속에 더 빠지게 되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 딜레이니나 하인라인이나 르 귄의 작품 같은 책을 쓰고 싶다. 


아래의 문장.. 너무 확 들어옵니다. SF뿐 아니라, 모든 문학이 다 그렇지만, SF는 특히나 더 상상력을 자극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을 더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SF에 대해 항상 좋아해 온 점들 중 하나는, SF를 보면 여러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을 여러 각도에서 보게 된다는 거다. 


소녀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꿋꿋하게 이겨내려 합니다. 그래서 

장미 그림에 둠 스피로 스페로Dum spiro spero란 교훈이 적혀 있다. 사실 난 이 말이 꽤 맘에 든다. 숨 쉬는 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톨킨의 책들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반지의 제왕》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막에서 마법의 샘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안엔 모든 것이 있다. (‘욕망만 빼고’라고 다니엘은 말했다. 하지만 ‘뱀 혓바닥’이 있다.) 《반지의 제왕》은 영혼을 위한 오아시스이다. 지금도 난 언제라도 가운데 땅으로 물러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책에 어찌 감히 무언가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 


70년대에 영국 시골에서는 어른들도 포함된 북클럽에서 15세 소년이 모임도 인도합니다. 그것도 '잘'

휴는 모임을 굉장히 잘 이끌었고, 화제가 빗나가면 부드럽게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실제로 소녀는 자신의 전제를 때론 재검토하고 다른 각도로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고모들이 사악하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지? 왜 난 그렇게 가정하지? 어쩌면 약간의 마법만 뺀다면 고모들은 딱 보이는 그대로일 수도 있고, 나에 대해서도 빤한 것들만 빼곤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고모들이 원하는 건 날 착한 조카로 만드는 게 다일지도 모른다. 


프랭크 허버트도 얘기합니다.
특히 《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했다. 아라키스는 정말 굉장한 세계이다. 마치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진짜 세계 같다. SF에서는 흔히 볼 수 없지만, 문화 충돌은 아주 흥미롭다. 프레멘을 만나러 사막에 가는 폴은 다른 문화 속으로 뛰어드는 셈이며, 양쪽 모두 비밀이 있다. 다니엘은 이 부분에 관해 얘기하며 아주 생기가 넘쳤고, 위스키를 한 잔 따르긴 했지만 술은 조금 홀짝이기만 했다. 물론 담배는 내내 피워댔다. 


중간중간 픽픽 웃게 만드는 유머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건 헛된 게 아니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건 미래의 언젠가를 위한 준비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제 난 절대로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이기거나 올림픽에서 달리지 못하겠지만 (“윔블던엔 한 번도 쌍둥이가 나온 적이 없었어….”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새로운 책, 기대하던 그 책을 가만히 가지고만 있는 기분이 이런 거였습니다. 
글자도 읽지 않은 완전 두꺼운 하인라인 신간을 가지고 있으니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정말 뿌듯하다. 가만히 날 기다리는 저 책을 생각할 때마다 날아오를 것 같고 행복하다. 

그래서 읽지도 않는 책을 시쩍하면 지르나 봅니다. 단지 그 기분 때문에..ㅎㅎ


<높은 성의 사나이>와 <희년을 선포하라>는 대체 역사 관련한 리스트에서는 늘 등장하네요.
《파반》뿐 아니라 브루너의 걸작 《무수한 시간들》과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난 아직 읽지 않았다)와 워드 무어의 《희년을 선포하라》와 평행 역사란 개념 자체에 대해 토론했다. 또한 《과거 속으로》와 《타임 패트롤》과 윔이 극찬한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웨섹스의 꿈》(반드시 주문!)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책을 통해 소녀의 주변 사람들도 서로 연결됩니다.
우린 중국 식당으로 갔고, 지난번과 거의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었다. 윔과 나는 서투르게 젓가락질을 하며 주로 실버버그에 대해 얘기했고, 이야기는 화요일 밤 《파반》 토론 때 얘기했던 모든 것으로 하염없이 탈선했다. 다니엘은 《웨섹스의 꿈》만 빼고 안 읽은 책이 없었다. 나는 다니엘과 윔이 서로에게 감명받았다는 걸 알았고, 이 점에 아주 즐거우면서 또 아주 기분이 묘했다. 다니엘이 화장실에 갔을 때 윔이 내 손을 잡았다. “난 네 아버지가 맘에 들어.” 윔은 말했다. 


소녀가 줄곧 맘에 가지고 있던 그 뭔가의 실체는 사실 '죽음'이었습니다.

죽는 문제는, 음, 정말로 죽음에 관해선, 자기가 언제라도 정말 죽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간에는 차이가 있다. 난 알고, 윔은 모른다. 그게 다다. 난 우리에게 다가오는 헤드라이트들이 진짜라는 걸 깨달았던 그 끔찍한 순간을 그 누구도 겪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에 자길 죽일 수 있는 위험한 것들이 있긴 해도 나머지는 모두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죽을 수도 있었음을 아는 그 위험한 순간은 지나쳤지만, 아직도 길을 건너고 있다 


책을 통해 길러진 사고의 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여러 각도로 보는 힘.삶의 복잡한 층위를 모호함 보다는 풍성함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힘.책을 통해 연결되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제자리에 자리잡은 self-esteem 의 단단함.

차근 차근 형성되어 온 소녀의 이른 강점들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납니다.

마지막 장은 아름답고, 처연하지만, 저자는 그동안 비축해 온 힘을 다 풀어 놓아 강력하게 휘몰아 칩니다. 중반부의 유사한 상황에서 제대로 지탱하지도 못했던 소녀는 이제 당당하고 차분합니다. 

(이 장면의 묘사는 <앰버 연대기>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어지는 이 선언.... 

내가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바뀔 것이고 상상도 안 될 만큼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살 것이다. 난 살아있을 것이다. 난 내가 될 것이다. 난 내 책을 읽을 것이다. 절대로 내 책들을 물속에 버리거나 내 지팡이를 꺾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배울 것이다. 결국 나는 죽음에 이를 것이고, 죽을 것이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 혹은 천국, 혹은 그게 뭐든 사람이 죽으면 겪게 되어 있는 알 수 없는 일을 맞을 것이다. 난 죽을 것이고 썩어서 내 세포들을 다시 패턴 속에서 생명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어떤 행성에 있든지 간에. 

삶은 그런 것이고, 난 그렇게 살 것이다. 


마음에 쿵 하고 울려옵니다.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단순한 SF/환타지 쟝르소설이 아니라, 상당한 수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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