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심사라는 게 한도 없이 모자르고 또 모자란 것이어서, 남이 쓴 글은 쉽게 읽히고(또한 쉽게 써졌을 것만 같고), 남의 계획은 멋있고(또 잘 진행되는 것 같고), 남의 삶은 참으로도 풍요로워서(이쯤되면 기가 차지) 나와 끊임없이 비교를 하고 앉았는 것이다. 자기애와 자기기만, 자아도취와 자아학대. 병렬도 아닌 지리멸렬한 단어들의 틈바구니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것은 변태가 아니고 뭐란 말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상한 시절, 끼니를 때우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버겁던 시절, 학교 다닐 돈도 격려해주는 어른도 없던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울고, 소리 질러도 변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그냥 울 수밖에 없던 여자애가 있었다고 했다. 그 애가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고 했다.


그날, 그 애가 하늘을 올려다 본 건 운명이었을까, 꿈이었을까.


그 옛날에 하늘을 날고 싶었던 여자애, 박경원의 이야기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수십 년을 흘러 다른 여자애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영화 <청연>을 본다는 것은 박경원의 삶을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당연한 욕망, 혹은 이미 각자 완성한 박경원 스토리를 감독과 작가가 어떻게 재현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선택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후자를 택했고, 당연하게도 실망스러웠다.


충실하게 박경원의 라이프 스토리를 따라 영화를 보았다면, 나는 박경원과 함께 몇 년씩 휴학을 하면서 비행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것이고, 대포 한 잔, 담배 한  개비로 울분을 삭일 수 있었을 것이고, 구름을 뚫고 하늘을 날 수 있었을 것이고, 시대와 다른 꿈을 꾸었던 스스로가 애처로워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관객의 감정과 판단의 개입을 허용치 않고 교과서적인 설명을 함으로서 나의 모든 감동을 빼앗아갔으며, 영화를 둘러싼 친일담론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들을 노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역사교과서보다도 재미없는 과거를 재현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실미도>와 같은 한국남성판타지시대물 사이에서 거액을 투자한 식민조선의 여자비행사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상영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관객의 역할이라면, 궁시렁대며 만족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현재는 여기까지. 딱 여기까지다. 식민시절에 독립이나 생존의 꿈을 가지지 않고, “다른 꿈”을 꾸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나, 아버지나 남편에 순종하지 않고 “다른 꿈”을 꾸었던 어떤 여자의 이야기나, 딱 여기까지만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영화가 개봉될 즈음 포탈사이트를 달구었던 박경원 친일논란에 관한 뉴스와 그에 달린 수천 개의 리플. 그것들이 주는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상영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훌쩍 넘었는데도 <청연>을 떠올리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이런 복잡하고도 단순한 생각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구름을 뚫고 하늘을 가르던 박경원의 비행기가 여전히 "다른 꿈"일지도 모르겠다는 비관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지나친가?

1월 6일 저녁, 단성사에서 M과 함께 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른 날보다 모처럼 일찍 출근하여 정시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한 월요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타러 갔다 돌아왔는데, 컴퓨터가 아직도 부팅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모니터랑 연결선이랑 확인을 해보았는데도 역시 그러했다. 몇 번 껐다 켜 보니 전원와 연결, 모니터의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담  OS가 깨진 것?

설마설마했다. 물론 나의 컴퓨터는 내가 워낙 이상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깔아놨기 때문에 바이러스도 많고, 악성코드도 많았지만 그냥 그때그때 어떻게 해결하면서 1년이 넘게 버텨왔던 터였다. 그래도, 나는 설마했던 것이다. 좀 한가해지면 내가 포맷도 해주고, 깨끗하게 써 줄게, 하며.

사무실의 컴퓨터 담당자가 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운영프로그램을 새로 깔아야 된다고 해서 운영프로그램 CD를 넣으니 부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컴퓨터는 동네 컴퓨터 수리점으로 긴급이송되었다. 어쨌든 포맷을 해야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어떤 자료를 백업할 것이냐고 묻는다. 대강 몇 개의 폴더를 가르쳐 주고 나서 생각해보니 사용빈도가 잦지는 않았지만 고양이손으로 모아놓은 뭔가 꼭 필요할 것만 같은 파일들이 백업대상에서 제외된 것 같아 마음이 고통스럽다. 물론 잘 보지도 않고, 어느 폴더에 넣어 두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지만.

그래, 이런 식인 거지. 하면서 체념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 주변 정리를 하려고 할 때, 내 의지보다 언제나 백 발 쯤 느린 행동으로 인해 갑자기 정리가 되어 버리는 상황들. 이왕지사, 잘 되었다 싶다. 컴퓨터는 빨라봤자 오후 세 시에나 올 것이고, 정리하려고 했던 책상, 오늘 치우면 될 것이고, 없어진 파일들은 어차피 잘 보지도 않았던 거 그냥 깨끗이 잊어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중간중간 남의 컴퓨터에서 블로그에 잡설이나 하면 그만이지.

하지만, 모처럼 의기충천하여 출근한 월요일에 뭔가 바스라진 것만 같은 계획들에 속이 쓰린 건 사실이다. 컴퓨터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얘기 많이 했지만, 영화 속의 대재앙은 아니더라도 나름 큰 재앙을 겪은 오늘 아침. 대재앙을 막기 위해 컴퓨터를 어서 없애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월 8일 날씨 맑고 추움.

오랜만에 스케줄이 있는 일요일을 보냈다. 오전에는 알찬 부업을 하고, 오후에는 선배를 만나 같이 선배가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중간에 시간이 좀 비어서 다소 난망했으나, 아무렇게나 점심을 챙겨 먹고 나니, 그리 난망할 것까지도 없는 시간이었다.

1.

이제 마흔이 거의 다 되는 선배는 처음으로 자기가 독립해서 살 집을 구하는 중이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도 10년이 되어가니, 대강 그의 삶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이 집, 저 집 떠돌면서 사느라 눈치밥도 많이 먹었을 테고, 그만큼 마음 고생도 했을 터이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리 비비고, 저리 비비고 해서 이만큼 살아왔다.

내가 그의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이런 면을 좋아한다. 하나, 남들 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고, 둘, 자기가 얼마나 꿈이 많은지 아냐며, 자기가 깨어 있을 때 꾸는 꿈은 자면서 꾸는 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멋지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다. 

2.

처음으로 복덕방에 가보고, 당황스러워하는 그에게 부족하나마 나의 10년 이사이력을 죄다 고했다. 언젠가 집을 구하다 구하다 여의치 않아, 어느 산동네에 올라가 수많은 집들을 보며,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나 하나 살 곳이 왜 없냐고 울먹였던 일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한 사흘 더 고민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선배가 우리 동네로 이사와서 가끔 늦은 밤이나 혹은 이른 아침에 같이 아무 부담없이 놀았으면 좋겠다.

3.

무슨 신병이 났는지, 근 열흘간 몸이 근질근질하다. 사실,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뭘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나를 발견한다. 예전에는 똑부러지게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마도, 똑부러지지는 않아도 어디가서 일못한다는 소리는 안듣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전혀 만족이 안된다. 일은 하면 되는 거고, 일 속에서 아무리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조직 속에서 하는 일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마도 나는 꽤 오랫동안 현실과 너무나 맞닿아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상상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은가 보다. 딱 생각만큼 더디게 바뀌는 세상이 너무 지루한가 보다. 어떻게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전에 <여행의 기술>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이 남자는 참으로 얄미웁고 수상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비슷한 정서에 잠시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하긴, 인간의 감성이 어디 동시대에만 통하랴마는.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본다.

한 이 년을 사귀던 이와 헤어지고 나서, 뭔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던 즈음, 학교 운동장에서 담배를 태운 후,  꽁초를 주머니에 넣던 박이 하필 눈에 띈 건, 사랑이었을까. 박이 처음 고백하던 날 마셨던 커피가 유난히 맛나게 느껴졌던 건 사랑이었을까. 박과 헤어지고 비실비실 웃음이 났던 것, 박을 떠올릴 때마다 거리 한 복판에서 주저앉을만큼 강했던 설레임은 사랑이었을까. 오갈 데 없던 겨울 밤 난로 앞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과히 좋지 않은 목소리로 밤새 노래를 불러주었던 박은, 사랑이었을까. 신입사원 교육에 갔다가 뛰쳐 나온 박에게 잘 했다며 등을 두드려 준 나는, 사랑이었을까. 벌어도 벌어도 왜 나에겐 돈이 하나도 없냐며 울었던 밤에,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고 말해주었던 박은, 사랑이었을까.

그 후로 칠 년. 우리는 좋다가, 싫다가, 울다가, 화내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반 년 후, 박은 나에게 '살만하니'라는 뜬금없는 문자메시지를 새벽 다섯시에 보냈었다.

그리고 다시 반 년 후, 아무리 대청소를 해도 버려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나는, 이것도 사랑인지 혼자 물어보다가, 흘러가는 대로 모든 것들 내버려 두기로 결정같지도 않은 결정을 한다. 박의 물건들을 버린다고 해서 우리가 만났던 게 없어지는 것도, 우리가 웃었던 게 없어지는 것도, 화내고 싸우다 분이 풀리지 않아 바들바들 떨며 밤새웠던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다시금 나에게 찾아온 마음의 평온에 안도할 뿐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내 감정의 밑바닥을 나도 박도 볼 일이 없기에. 

냉소적으로 그려지는 앨리스가 사실, 사랑 별 거 아니야, 라고 하면서도 대중가요를 듣고는 설레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나'를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기 어려운 말. 우리 사랑일까, 가 아니라, 왜 나는 너와 다른가. 왜 나는 나와 다른 너를 좋아하는가. 왜 나는 나와 다른 네가 슬픈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리 봐도 미성숙한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다.  인정하기 씁쓸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보통이 우리 사랑일까, 이렇게 물어본다면, 나는 아직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라고 밖에 대답 못하겠다. 니들의 사랑은 니들이 알아서 하세요, 내 건 나도 모르거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