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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스티븐 달드리 감독, 제이미 벨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 출연 :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게리 루이스, 제이미 드레이븐 등
1.
" 더 넓은 곳으로 가라"고 윌킨슨 선생님이 예의 그 무표정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역시 무표정할 수밖에 없는 빌리에게 한마디 던진다. 그리곤 다시 그녀는 발레연습장으로 들어가 "하나, 둘, 셋"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떠나본 사람과 떠나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힘겹게 떠나본 사람들과 힘겹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소란스런 이별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빌리가 런던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직전 아들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말없이 안아주던 아버지와 어깨에서 내리자 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타는 꼬마의 심정같은 것들. 무심하게만 굴었던 형과 아버지가 떠나는 동생과 아들의 커다란 여행가방을 서로 들겠다고 사소한 다툼을 벌이는 마음같은 것들. 다리를 덜덜덜 떨다가 갑자기 왈칵 손자를 껴앉는 할머니의 손길같은 것들.
"빌리 엘리어트"를 보다가 내가 이별을 떠올린 것은 너무나 개인적인 일인 지도 모르겠다. 대학 1학년 땐가. 아직 겨울일 무렵, 청량리행 기차를 타려고 발걸음을 옮기던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 그가 건네 준 귤 한 봉지를 보며, 나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 속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를 놀려댔었다. 나는 놀리는 것, 그래서 궁상맞게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철원에서 춘천으로, 춘천에서 다시 서울로 나의 삶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손바닥만한 철원에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던 춘천으로 이사갔을 때, 느꼈던 도시. 다시 한 사람만 건너면 모든 사람을 다 알 것만 같이 작게 느껴졌던 춘천에서 상상도 못했던 커다란 횡단보도와 육교와 전철과 육중한 대교들이 들어차 있는 서울이란 도시. 이 도시가 다시금 작게 느껴졌을 무렵, 나는 또 어디론가 떠나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빌리를 보면서 떠남을 생각하게 된 것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었다.
빌리 엘리엇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건 열 몇살 먹은 소년의 댄스라기 보다는, 누구라도 한 번 쯤 빛났었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참을 수 없이 일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으로 무언가의 매력에 흠뻑 취했을 때, 그 무언가로 인해 내 삶의 시간표가 바뀌었을 때, 언제나 머리 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을 때, 그것으로 충만했을 때...
마치 앞으로 다신 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인 양, 나는 빌리의 발동작에, 빌리의 발레슈즈에, 빌리의 마이클에게 너무나 감정이입을 했을 지 모르겠다.
재능 있는 아이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어 있다. 상황이 어떻더라도, 재능있는 아이는 가족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어디론가 떠나게 되어 있다. 열한 살에 조숙해져버린 소년은 자기 뜻대로 쉽게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와 텅빈 가족의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어쩌면 자신에게 왕실발레단의 오디션은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년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소년은 아마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조숙한 소년답게 합격통지서를 받고는 "나 합격했다"고 소리치는 대신 울어버렸을 것이다.
내 생에 어떤 재능과 어떤 열정이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지나간 소녀시절을 위해 잠깐 묵념을 할 필요가 있겠다. 더 이상,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나를 위해 말이다.
3.
검은 시냇물이 흐른다는 도시에 대해 직접 듣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탄광이 있는 고장에서 자란 친구는 검은 시냇물이 흐르는 도시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북한강 상류의 맑은 물만 보고 자랐던 내게 검은 물이 흐르는 도시는 그것 자체로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탄광에 대한 내 관심은 어떤 소설의 몇 페이지 쯤에 꽂혀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광부이다. 석탄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광부는 일자리를 잃거나, 그렇지 않으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참고 견뎌야 한다. 탄광촌의 아이들은 경찰의 방패와 now strike와 같은 문구로 도배된 포스터를 훑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등교하거나 퇴교하거나 논다. 그 아이들은 자라서 광부가 되어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아니면 길거리의 구걸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길을 꿈꿀 여유조차 없는,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강인한 육체를 갖게 해주는 것 뿐이다.
그런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 고급 중의 고급이라는 발레에 물이 들었다. 통탄할 노릇이다. 아이의 진심어린 눈빛을 애써 외면하던 아버지는 어느날 그것과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는 내 모든 것을 줘서라도 너만은 여기서 떠나보내마하고 작심을 한다. 파업중인 노조를 배신하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그는 통근버스에 올라탄다.
혹자는 이 영화가 휴머니즘으로 노동운동을 덮어버렸다고, 배신자를 부성으로 미화했다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발레를 안한다고 노조가 승리하나. 노조가 승리한다고 세상이 금방 바뀌나. 노조의 승리 다음엔 뭐가 있나. 노조가 실패한 건 빌리 아버지의 부성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을 수 있다. 욕먹겠지만, 노조가 실패한 것은 다른 것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노조 대 부성의 구도로 몰고가면 해답은 없다. 다행히 빌리 아버지는 통근버스를 타고 갔다가 일은 하지 않고 돌아왔다.
4.
이 영화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월킨스 선생과 마이클이다. 라이센스 하나 갖지 못한 월킨스 선생은 겉보기에 아주 재미없는 사람이다.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늘상 담배가 손끝을 떠날 줄 모르고, 별 재능없어 보이는 딸 하나를 끈덕지게 발레 교습소로 데리고 오는 그런 여자다. 하지만 눈썰미 하나는 용하고, 가르치는 재주는 남달랐던(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여자는 다른 소녀들을 제치고 빌리를 수제자로 삼는다.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말이다. 월킨스 선생은 지난 역사의 기록 속에 남아 있는 존경받아 마땅한 선생의 원형이다.
마이클로 오면 얘기가 좀 복잡해지는데, 마이클이 등장함으로서 자체도 그렇거니와 마이클과 빌리의 관계까지 확장하면 이야기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이클은 다른 어떤 아이보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일찍 고민했고, 빌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했고, 빌리는 멋진 웃음을 보내며 깔끔하게 관계를 이어나간다. 추측이지만 빌리가 마이클과 같은 소년시절을 보내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 때, 그 애가 발레에 미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들의 관계는 과거완료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다. 빌리가 백조왕자가 되어 공연을 하는 날 객석에 마이클이 (다른 애인인 듯한 사람과 함께이긴 했지만)"내가 빠지면 안되죠"라며 앉아있었으니까. 이 영화에서 마이클에게 빌리가 발레를 가르쳐 주는 장면이 아주 예뻤다.
5.
내가 왜 이렇게 정색을 하고 앉아서 이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본 성장영화라서 그런가. 뒤숭숭한 꿈자리 때문인가. 에효.
빌리 엘리엇은 사실은 개천에서 용난 이야기이다. 나중에 왕실발레단의 (아마도) 수석 발레리노가 된 빌리가 백조의 호수에 맞추어 힘찬 도약을 할 때, 빌리가 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_-;; 성인 빌리로 분한 아담 쿠퍼의 몸매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심지어 자막 올라갈 때, 그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썼었다... DVD가 나와 있던데.. 발레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다 보고 싶을 지경이다. 곧 구입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