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 과히 정상이 아니다 싶다. 일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 오래 전 부터 내 생각과 마음과 능력의 일부는 고정되었다. 그리하여 정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 것만 같다. 나머지 생각과 마음과 능력은 정진하려고 하나 그 어떤 일부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말 그대로, 꾸역꾸역이다. 그래도 이만큼이나 하고 있으니 기특하지, 라고 칭찬해줄만도 한데, 나의 나태함과 나의 우유부단함과 나의 미련이 밉다. 

오늘도 꾸역꾸역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꾸역꾸역 끌고와서, 겨우, 구정 설 전에 맞추어 올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너무 심각한 손해를 입었지만, 그나마 끝낼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싶다.  

아무래도 파주는 가지 않는 게 좋았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고, 아무래도 아무래도 뭔가가 잘못되었거나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어떤 과거도 뭔가 남기기 마련인데, 이런 정도의 시시함이라니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진심이었던 어떤 순간들에도, 과연 그랬을까, 나 스스로에게조차 의심이 생긴다. 입춘도 지나고 이제 곧 설이니, 좀 털고 가고 싶다. 이끌려 가고 싶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지난 판에서 이끄는 패는 내 패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판'이라고 쓰니 좀 위안이 된다. 잘못되었거나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다 '지난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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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스스로를 유배시킨 것 같은 비장함마저 들었더랬다, 처음에는.

제법 거리는 익숙해졌고, 오가며 얼굴 알아보는 사람도 여럿이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고, 혼자 다니는 공원이며 미술관이며 모든 게 괜찮다.
밤 늦은 시간에 술 한 잔하고 돌아오는 길도 무섭지 않고, 낯선 언어로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괜찮다. 

시간이 흘렀고, 나도 흘렀고, 그래서 괜찮아졌다. 


여기도 그리워질까? 

아마도.


이 도시의 풍요와 이 도시의 빈곤과 이 도시의 사람보다는 
아마도 그때 여기에 있었던 나 때문에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

숨 넘어갈 정도로 깔깔댄 일도, 늦은 시간 술에 취해 길거리에 주저앉은 일도, 되도 않는 말에 상처받는 일도, 오지 않는 전화를 확인한 일도, 한없이 부끄러운 일도, 그 아무 것이 조용히 떠돌던 나 때문에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꼬박 두 달이 넘게 지났고, 이제 3주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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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라는 걸 알 게 뭐람, 하며 살았던 수십 년간의 세월을 지나, 시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세상에.  

시간을 거스르는 비행기 안에서 그래서 좀 울컥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나에겐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시계는 뒤를 향하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차이 안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 그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살면서 없지는 않았지, 뭐 그런 생각들과 함께.  

 

농담처럼, 이제 당분간 우린 같은 시간에 절대 존재할 수 없어, 라고 했지만, 그건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나의 8월 13일 늦은 11시 16분과 너의 8월 14일 오후 12시 16분이 어떻게 동시간일 수 있을까. 그저 결국엔 어떤 순간으로 표현되어야 맞을 시간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라기보다는 어떤 지혜같은 것이었다. 굳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그렇게 조금씩은 다르니까, 그리고 13시간의 시차처럼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그 어떤 것들, 어떤 차이들은 많으니까. 

 

우리가 함께 속삭였던 그 순간이 너에겐 8월 14일의 오후로, 나에겐 8월 13일의 늦은 밤으로 기억될테니, 결국엔 우리는 그 순간 함께가 아니었다고 기록하는 게, 수많은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지금은 진실로 느껴진다. 지난 우리가 무언가를 함께 했었다면, 그건 '우리의 시간'에는 있지 않은 것이었다고.   

그건 13시간짜리만큼의 씁쓸함이지만, 참 절대적인 씁쓸함이다.    

 

그래서, 현지시간, 00시.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고, 나의 객관성을 획득하는 세련된 말, 현지시간 00시. 결국 '우리가 함께 했던 어떤 시간'으로는 기억될 수 없을 현지시간 00시. 내가 바보같이 즐겨해왔던 말, 현지시간 0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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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나는 꽤 잘 지내고 있다. 지난 일요일 아침은 얼마나 황홀하게 완벽하던지 하마터면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꽥 소리를 지를 뻔 하기도 했다. 아침바람이 드는 창 밑에서 한참이나 건전하고 착한 책을 읽고, 한 달만에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팔이 덜덜 떨리도록 오이지를 짜내고, 밥을 먹고, 탁탁 소리나게 빨래를 널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몸을 흔들었다. 그 일요일이 있기 전까지는 정신을 차린 채 회의에 참석하고, 수첩에 빽빽하게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착착 해나가기까지 했다. 이 당연한 모든 것들과 나는 얼마나 오래 헤어져 있었던 걸까.

얼마 전 정이 내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뜨거웠는가, 라고. 나는 누구에게도 뜨거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은 허수경을 물었는데 왜 안도현을 대답하냐고 했다. 어느쪽이라도 맞는 말이다. 나는 뜨거웠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되었건 간에 이번 여름이 무척이나 뜨겁고 더웠던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여름이 지나간다. 가을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뜨거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하고 순정적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비아냥거리면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힘들 것이다. 한동안 배우는 것을 경시했다. 모든 열심히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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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민게시판에 들어가든 결국엔 비슷한 고민들이다. 고민게시판에서 얻는 가장 큰 위로는 결국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산다는 것. 내 것만 더 모나거나 흉측하지 않다는 것.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법을 또 배운다. 그러나 나는 지난 연휴 지리산길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모난 인간인가에 대해 알아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그런 것처럼 나도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못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그렇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지리산에서의 2박 3일동안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시니컬이 자신감 없음의 이면임을 재확인하게 된 것은 최악이었다. 아무 계산 없이 마음을 열어재치는 건 절대 손해볼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고민게시판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의 고민을 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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