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라는 걸 알 게 뭐람, 하며 살았던 수십 년간의 세월을 지나, 시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세상에.
시간을 거스르는 비행기 안에서 그래서 좀 울컥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나에겐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시계는 뒤를 향하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차이 안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 그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살면서 없지는 않았지, 뭐 그런 생각들과 함께.
농담처럼, 이제 당분간 우린 같은 시간에 절대 존재할 수 없어, 라고 했지만, 그건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나의 8월 13일 늦은 11시 16분과 너의 8월 14일 오후 12시 16분이 어떻게 동시간일 수 있을까. 그저 결국엔 어떤 순간으로 표현되어야 맞을 시간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라기보다는 어떤 지혜같은 것이었다. 굳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그렇게 조금씩은 다르니까, 그리고 13시간의 시차처럼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그 어떤 것들, 어떤 차이들은 많으니까.
우리가 함께 속삭였던 그 순간이 너에겐 8월 14일의 오후로, 나에겐 8월 13일의 늦은 밤으로 기억될테니, 결국엔 우리는 그 순간 함께가 아니었다고 기록하는 게, 수많은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지금은 진실로 느껴진다. 지난 우리가 무언가를 함께 했었다면, 그건 '우리의 시간'에는 있지 않은 것이었다고.
그건 13시간짜리만큼의 씁쓸함이지만, 참 절대적인 씁쓸함이다.
그래서, 현지시간, 00시.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고, 나의 객관성을 획득하는 세련된 말, 현지시간 00시. 결국 '우리가 함께 했던 어떤 시간'으로는 기억될 수 없을 현지시간 00시. 내가 바보같이 즐겨해왔던 말, 현지시간 0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