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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이올린 - 베트남, 아무도 묻지 않았던 그들의 속내 이야기
정나원 지음 / 새물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늦은 밤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호찌민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택시요금보다 더 비싸게 주고 시내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 간간이 불 켜진 술집 외에 시내는 조용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택시기사와 숙소 직원. 반갑다, 베트남. 다음날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잠을 깼다. 내겐 너무 이른 시간 7시. 창을 여니, 오토바이가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드디어, 낯선 공간에 흘러들어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시클로와 택시, 이빨이 빠진 노점 할머니와 고급 아오자이를 입은 종업원, 대나무 바구니의 상인과 다이아몬드플라자의 상인, 5,000동 짜리 국수와 50,000동 짜리 국수, 30도는 기울어진 수상가옥과 건설 중인 엘지자이아파트, 그리고 호의와 호객 사이.
의도하지 않게, 베트남은 끊임없이 나에게 포지션에 대해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너는 몇 살이냐, 너는 얼마를 버느냐, 너는 얼만큼 아느냐, 너는 누구냐. 순진함으로 가장한 나는 순진함이 진심인양 거리를 쏘다녔다. 지금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정리하는 중이다. 정리가 될까, 의심하면서.
여행의 중반쯤에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전쟁의 참혹함, 미국의 포악함을 조악하게 보여주는 전쟁박물관과 현재는 통일궁인 전남베트남대통령관저, 커다란 몸집의 백인들을 태우고 달리는 씨클로,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을 지난 후였다. 정말, 어찌되었건, 베트남과 한국은 닮은꼴이다. 사람들의 모양새도, 사람들의 성격도, 겪은 역사적 사실도, 모두 똑같진 않지만 닮았다. 그래서 베트남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했다. 나는 여름휴가지로서의 베트남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피곤했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 책을 읽었다. 밥을 시켜 놓고도 읽고, 차를 기다리면서도 읽었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누워, 한 명의 성우가 대사를 전달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틀어놓고도 읽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기도 너무 없기도 하다. 여행가기 전에 영풍문고에 가서 베트남 역사책을 찾다가 발견한 이 책을 괜히 갖고 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읽고 왔어야 했다, 혹은 돌아와서 읽었어야 했다. 베트남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2인칭과 3인칭 사이에서 헤매다가,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읽고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순진함으로 가장했던 진심도, 싼 것만 찾아 헤매던 가난한 백패커도 모두 사라졌다. 작가 정나원은 그래서, 이런 고민을 적나라하게 책에 썼어야 했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인터뷰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는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만났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두 다 썼어야 했다. 그게 이 구술사 비슷한 이 책을 더 낫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었어야 했다.
돌아온 지 삼일 째, 일요일에 본 밀크커피색의 메콩강과 높던 하늘과 물살을 가르며 노 젓는 소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하면 할수록, 여행은 어렵다.
** 간단 코멘트
* 챕터별로 미주를 달아놓았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미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 인물별 정보를 챕터별로 해주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읽혔을 것이다. 인물 정보가 뒤에 있다.
* 인터뷰 경위 등에 관한 정보가 없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 정식 베트남 근현대사를 읽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베트남 근현대사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몇 가지 좀 틀린 데가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