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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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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에 <여행의 기술>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이 남자는 참으로 얄미웁고 수상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비슷한 정서에 잠시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하긴, 인간의 감성이 어디 동시대에만 통하랴마는.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본다.

한 이 년을 사귀던 이와 헤어지고 나서, 뭔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던 즈음, 학교 운동장에서 담배를 태운 후,  꽁초를 주머니에 넣던 박이 하필 눈에 띈 건, 사랑이었을까. 박이 처음 고백하던 날 마셨던 커피가 유난히 맛나게 느껴졌던 건 사랑이었을까. 박과 헤어지고 비실비실 웃음이 났던 것, 박을 떠올릴 때마다 거리 한 복판에서 주저앉을만큼 강했던 설레임은 사랑이었을까. 오갈 데 없던 겨울 밤 난로 앞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과히 좋지 않은 목소리로 밤새 노래를 불러주었던 박은, 사랑이었을까. 신입사원 교육에 갔다가 뛰쳐 나온 박에게 잘 했다며 등을 두드려 준 나는, 사랑이었을까. 벌어도 벌어도 왜 나에겐 돈이 하나도 없냐며 울었던 밤에,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고 말해주었던 박은, 사랑이었을까.

그 후로 칠 년. 우리는 좋다가, 싫다가, 울다가, 화내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반 년 후, 박은 나에게 '살만하니'라는 뜬금없는 문자메시지를 새벽 다섯시에 보냈었다.

그리고 다시 반 년 후, 아무리 대청소를 해도 버려지지 않는 사랑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나는, 이것도 사랑인지 혼자 물어보다가, 흘러가는 대로 모든 것들 내버려 두기로 결정같지도 않은 결정을 한다. 박의 물건들을 버린다고 해서 우리가 만났던 게 없어지는 것도, 우리가 웃었던 게 없어지는 것도, 화내고 싸우다 분이 풀리지 않아 바들바들 떨며 밤새웠던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다시금 나에게 찾아온 마음의 평온에 안도할 뿐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내 감정의 밑바닥을 나도 박도 볼 일이 없기에. 

냉소적으로 그려지는 앨리스가 사실, 사랑 별 거 아니야, 라고 하면서도 대중가요를 듣고는 설레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나'를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기 어려운 말. 우리 사랑일까, 가 아니라, 왜 나는 너와 다른가. 왜 나는 나와 다른 너를 좋아하는가. 왜 나는 나와 다른 네가 슬픈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무리 봐도 미성숙한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다.  인정하기 씁쓸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보통이 우리 사랑일까, 이렇게 물어본다면, 나는 아직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라고 밖에 대답 못하겠다. 니들의 사랑은 니들이 알아서 하세요, 내 건 나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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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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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1월달부터 노동지수가 엄청 높았다. 아니, 언제 안그런 적이 있었나만은.

어쨌든, 가공할 노동에 심신이 지쳐갈 때 쯤, 정이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야금야금 읽으며 약을 올렸드랬다. 프리랜서인 정은 외근이 잦았던 11월, 가끔 나를 찾아와 함께 돌아다녔던 것인데, 나는 일을 하는 동안에  정이 읽는 <여행의 기술>이 그렇게 읽고 싶을 수가 없었다. 정은 가끔 책을 읽다가 괜찮은 구절을 낭독하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정이 그 책을 다 읽자마자 뺏어 들어 읽어내렸다.

여행.

혼자 여행을 떠난 것을 여행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내 여행의 역사는 고작 6년에 불과하다. 발신금지의 핸드폰과 보름치의 짐이 들어있던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떠난 2000년의 2박 3일 해남여행이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후로 기회만 되면 여기 저리 떠나곤 했다. 혼자 다닌 여행이 5년.

올해 베트남 여행을 끝으로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서는 주위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았다. 함께 떠나는 여행은 사람 수만큼 깊어지기도 하였다. 그게 10월의 일. 그 후로 함께 떠나는 여행에 재미가 들려 틈만 나면 여행 번개를 쳤다. 11월까지 그것만 세 번이다. 그리고 이제, 올해의 마지막 여행, 남해여행 계획을 마치고 한참을 설레고 있는 중이다.

숙소를 예약하고, 무엇을 먹을 지, 무엇을 볼 지, 무슨 책을 가져갈 것인지, 무슨 음악을 들을 것인지, 남해의 날씨는 어떤지, 어떤 길로 가야 운치가 있을 지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운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상할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떠나면 즐거울 거니까.

보통은 여행의 기쁨 중 첫번 째로 "기대"를 꼽았다. 천 표고, 만 표고 다 던진다, 그 말에. 떠남에 대한 기대, 떠남을 위한 준비,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점철되는 여행가기 전의 순간들.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있으랴. 지금 나는 기대의 단계에 있다. 이 단계를 충분히 즐기고 싶다.

보통은 얄미울 정도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끄집어 내어 기록했다. 여행에의 기대, 여행지에서의 실망, 여행지에로도 여전히 따라오고만 현실의 고민들, 그리고 여행하면서 느끼는 숭고함,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 마지막으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내 방안에서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기쁨을 뺏긴 것 같은 상실감에 잠깐 빠졌다. 비행기, 기차, 버스와 같은 탈 것과 모텔, 유스호스텔, 민박집, 호텔처럼 잠시 머물 곳과 그 보다 더 잠시 머무르는 휴게소에 대한 나의 애정들을 그가 가져가 버린 것같은 생각이 들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또 다시 여행을 기대하는 지금. 그런 사소한 얄미움은 잊고, 이 기쁨조차 보통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대범한 생각이 든다. 하하, 여행은 이런 것이다.

* 보통은 얄미웁기 때문에 별 한 개 덜 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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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4-2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남도여행을 가려고 하니 보통의 <여행의 기술> 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몇개의 리뷰를 뒤적이며 읽다 님의 글이 괜히 정겨워 몇자 남기고 갑니다.^^
 
아버지의 바이올린 - 베트남, 아무도 묻지 않았던 그들의 속내 이야기
정나원 지음 / 새물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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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호찌민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택시요금보다 더 비싸게 주고 시내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 간간이 불 켜진 술집 외에 시내는 조용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택시기사와 숙소 직원. 반갑다, 베트남. 다음날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잠을 깼다. 내겐 너무 이른 시간 7시. 창을 여니, 오토바이가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다. 드디어, 낯선 공간에 흘러들어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시클로와 택시, 이빨이 빠진 노점 할머니와 고급 아오자이를 입은 종업원, 대나무 바구니의 상인과 다이아몬드플라자의 상인, 5,000동 짜리 국수와 50,000동 짜리 국수, 30도는 기울어진 수상가옥과 건설 중인 엘지자이아파트, 그리고 호의와 호객 사이.


의도하지 않게, 베트남은 끊임없이 나에게 포지션에 대해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너는 몇 살이냐, 너는 얼마를 버느냐, 너는 얼만큼 아느냐, 너는 누구냐. 순진함으로 가장한 나는 순진함이 진심인양 거리를 쏘다녔다. 지금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정리하는 중이다. 정리가 될까, 의심하면서.


여행의 중반쯤에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전쟁의 참혹함, 미국의 포악함을 조악하게 보여주는 전쟁박물관과 현재는 통일궁인 전남베트남대통령관저, 커다란 몸집의 백인들을 태우고 달리는 씨클로,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을 지난 후였다. 정말, 어찌되었건, 베트남과 한국은 닮은꼴이다. 사람들의 모양새도, 사람들의 성격도, 겪은 역사적 사실도, 모두 똑같진 않지만 닮았다. 그래서 베트남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했다. 나는 여름휴가지로서의 베트남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피곤했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 책을 읽었다. 밥을 시켜 놓고도 읽고, 차를 기다리면서도 읽었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누워, 한 명의 성우가 대사를 전달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틀어놓고도 읽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기도 너무 없기도 하다. 여행가기 전에 영풍문고에 가서 베트남 역사책을 찾다가 발견한 이 책을 괜히 갖고 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읽고 왔어야 했다, 혹은 돌아와서 읽었어야 했다. 베트남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2인칭과 3인칭 사이에서 헤매다가,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읽고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순진함으로 가장했던 진심도, 싼 것만 찾아 헤매던 가난한 백패커도 모두 사라졌다. 작가 정나원은 그래서, 이런 고민을 적나라하게 책에 썼어야 했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인터뷰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는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만났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두 다 썼어야 했다. 그게 이 구술사 비슷한 이 책을 더 낫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었어야 했다.


돌아온 지 삼일 째, 일요일에 본 밀크커피색의 메콩강과 높던 하늘과 물살을 가르며 노 젓는 소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하면 할수록, 여행은 어렵다.


** 간단 코멘트


* 챕터별로 미주를 달아놓았는데, 기본적으로 나는 미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 인물별 정보를 챕터별로 해주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읽혔을 것이다. 인물 정보가 뒤에 있다.

* 인터뷰 경위 등에 관한 정보가 없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 정식 베트남 근현대사를 읽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베트남 근현대사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몇 가지 좀 틀린 데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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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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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밤, 금요일 월차를 내고 오랜만에 정의 집에 들렀다. 정의 집 마당엔 온갖 채소와 꽃들이 가득했다. 밤안개 속에 잠깐 멈추어 그 마당의 냄새를 흠뻑 맡아 보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맥주도 반쯤 남긴 채 말이다.

다음날, 나의 생체시계는 그닥 빠릿하지 못하여 열시가 좀 못된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정은 아직 한참 자는 중이었고, 그래서 나는 정의 침대 머리맡에 꽂혀 있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꺼내어 들었다. 지난 번 왔을 때, 읽다가 채 못읽은 책이었다.

그리고 정이 일어날 때까지 뒹굴뒹굴하며 책을 다 읽었다. 정은 매미소리가 제법 시끄러울 때 일어났다. 정은 모처럼의 연휴를 이렇게 보내서 어떻게 하냐고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창밖의 매미소리, 흙냄새, 뒹굴거릴 수 있는 소파, 간소한 식사. 이런 것들로 이미 행복하다고 말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이런 모처럼의 휴일에 잘 맞는 책이었다. 물론, 사랑을 잃거나, 멀리 떠나왔거나, 어쨌거나 외로울 때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그날처럼 별로 외로웁지 않을 때 옛편지를 들추는 마음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었다.

 

담배세가 전쟁에 쓰인다는 소리를 듣고 단박에 담배를 끊어버린 골초 녹색당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갑자기 금연을 결심한다거나,

헤엄을 치지 못하면서 물 속에 사는 하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처지를 돌아보거나,

어릴 때 엄마의 치마폭을 잡고 시장에 갔던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처럼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아도 좋았을 무렵의 냄새"를 떠올리거나,

벗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며 오랜만에 손글씨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거나, 

그때 왜 내가 그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를 생각해보는 것 .

 

이것들은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의 아주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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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파트리크 쥐스킨트 & 헬무트 디틀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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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을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워했다. 하긴, 내가 알기로는 국내에서 개봉한 적도 없으니.

하여간, 로시니를 읽는 것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 혹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음. 조금 더 오버하면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문제의 해결에 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올 초, 시나리오작법 강의를 들은 친구 하나 때문에 급작스레 우리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팀을 만들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니, 모인 사람들의 꼴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그래도 입은 하나씩 갖고 있는지라, 7,8분짜리 영화 시나리오가지고 이랬다 저랬다 하길 한 달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시나리오를 쓴 사람의 입이 시간이 갈 수록 툭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7개였던 신은 딱 2개로 줄어버렸드랬다. 

그래서 쥐스킨트가 쓴 "친구여 영화는 전쟁이다"가 더욱 맛나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책 뒤편에 붙은 시나리오와 영화스틸 사진들은 쥐스킨트의 글을 증명하는 존재로서 빛났다.

결론: 1. 시나리오에서 모든 걸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면 세상엔 일어나지 못할 일이란 없으니까. 2.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거나 쓴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과정을 쥐스킨트처럼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엄청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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