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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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사람들은 십자군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프랑크인들의 전쟁 내지는 침략이라고 말한다. 프랑크인들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바는 지역, 저자들,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 오늘날 서유럽인들을 가장 대중적으로 부르는 말로, 특히 프랑스인들을 지칭하는 프랑크다. - P11


최근 며칠 간 십자군 전쟁에 관련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소수의 지식이 얼마나 서구 중심, 그리스도교 중심의 역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유럽 기독교 세력은 십자군 전쟁을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성전의 기치를 내걸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측인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잘 살고 있는 땅을 유린당하고 가족, 친지를 잃으며 떠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작가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에서 태어났으나 조국이 내전에 휩싸이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여 아랍 문화와 서양 문화를 동시에 경험한 배경을 지녔다. 게다가 소설가인 동시에 역사가이면서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랍의 다양한 사료를 기반으로 갖고 와 당시 아랍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전하고 사건은 르포처럼 현장감이 있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특징이 있었다(작가가 머리말에서도 밝히듯 실화 소설을 다루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사료 중 가장 많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는 ‘이븐 알 칼라니시’이다. 그는 문필가이자 연대기 사가로 1096년 프랑크인들이 들어온 이래 사건을 목격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나이 23살 때부터 기록을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청년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십자군 전쟁을 겪은 셈이다. 


그 해 여름, 서쪽 하늘에 혜성 한 개가 나타났다. 그 혜성을 스무 날이나 계속 올라가더니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곧 사라져 버렸다. 소문은 점점 구체성을 띠어 갔다. 그리하여 9월 중순에 이르자 사람들은 프랑크인들의 전진 과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1097년 10월 21일,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안티오케이아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들이 온다!” … 이른 아침 수크의 왁자지컬함은 뚝 끊겼고 상인들과 손님들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섰다. 여자들은 기도문을 웅얼거렸다. 삽시간에 온 도시는 공포에 휩싸였다. - P42~43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가 생생히 전해진다. 


프랑크인들은 계속 전진하여 1098년 말 시리아의 ‘마라’라는 도시에 들어오게 된다. 이 때 시리아에 들이닥친 프랑크인들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보자.

마라에서 우리들은 이교도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다. 또 그들의 아이들을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웠다. - P70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인데 프랑크군의 연대기 저자가 직접 쓴 것인만큼 충분히 잔혹한 상황이었을거라 짐작할 수 있다. 

프랑크인들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들에게서 엄청난 용기와 전투에 대한 열정을 갖춘 맹수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힘세고 호전적인 동물들이었다. - P71

그럼에도 ‘마라’ 근처의 도시인 ‘샤이자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엄청난 기근이 있었다고는 해도 꼭 그런 상황이 불가피했는지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아무튼 마라에서 벌어진 살육은 아랍인들과 프랑크인들 사이에 큰 반감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주목할 만한 인물이 몇 있었다. 

이마드 알 딘 장기는 알레포와 모술의 새 통치자로 선출된 이후 프랑크인들과 최초로 맞선 전사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전사이자 전술가였을 뿐 아니라 추후 아랍계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통치가였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으며 주변에 인물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음으로써 프랑크군에 맞설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장기는 선전술이나 교란술도 능수능란해서 프랑크군의 애를 먹였다. 그리고 그는 군율을 엄격하게 하여 군기를 어지럽히는 자를 벌하면서도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성이 아닌 막사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장기의 둘째 아들인 누르 알딘은 장기의 아들답게 선전선동에 탁월했다고 한다. 

그는 시와 서신, 책을 쓰게 하였으며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만한 적당한 때를 골라 퍼뜨리게 하였다. 그가 설파하는 교리는 간단했다. 단일 종교. 곧 이슬람 순니파로서 모든 ‘이단들’에 맞서는 격렬한 싸움을 의미하였다. … 권좌에 머무른 28년 동안 누르 알 딘은 여러 울라마들을 부추겨 조약을 쓰게 했으며, 이슬람 사원들과 학교에서는 대중 강독을 통해 성지 알 쿠드스의 가치를 선전하게 하였다. - P208

그는 알레포를 장악하고 에데사를 함락시켰으며 프랑크군의 다마스쿠스 진군도 실패하게 만들었다(이때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넘겨받았다는 것이 탁월한 점). 또 각종 세금을 없앰으로써 군중이 인정하게 만들어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를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시켰다는 점도 있다. 


장기는 힘을 실어준 술탄이 사망한 이후 계승 전쟁에서 불리해지는데 이때 타크리트의 지도자인 아이유브의 도움을 얻는다. 아이유브의 아들이 바로 살라딘(유수프)이다.

살라딘과 누르 알딘과는 교묘한 경쟁 관계였다고 보여진다. 당시 이집트 원정을 떠난 시르쿠와 살라딘에 맞서 이집트는 프랑크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 시르쿠가 사망하자 살라딘이 파티마 왕조 칼리프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통치자에 오른다. 누르 알딘은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결국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르 알딘이 사망하면서 그 결행은 이어지지 못했다고. 만약 둘이 승부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아무튼 살라딘은 결국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어떤 학살이나 약탈 행위도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당시 주변 관리들이나 이슬람 주민들에게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살라흐 알 딘은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포위 공격을 할 때 방어자들이 거세게 저항하면 그는 이내 지겨워하며 포위를 풀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군주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운명이 아무리 그에게 호의적이더라도 말이다. 그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아 성공을 굳히기보다는 성공의 과실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살라흐 알 딘이 티레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런 면모를 잘 보여주는 예다. 무슬림이 그 도시 앞에서 말머리를 돌린 것은 분명한 과오였다. - P287

공격자들의 공격이 지겨워서 설마 포위를 풀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가 보인 행동은 이슬람 측에서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상대측에게 퍼주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을 것 같다. 1189년 프랑크 왕은 살라딘과의 협약을 깨고 아크레를 포위해버리고 만다. 아크레 전투는 장장 2년 동안 이어졌고 결국 살라딘군은 프랑크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살라딘의 동생이었던 알 아딜은 아이브유 왕조를 하나로 모으는 일을 일구어냈다. 그는 뛰어난 행정가로 아랍 세계를 평화롭게 유지시키고 번영하게 만들었으며 관용의 태도를 보인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면서 아이브유 제국의 일인자가 되었으면서도 프랑크인들과 공존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랍인의 목소리를 통한 서술인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저자가 이슬람 칭찬 일색으로만 이야기를 서술하지 않으려 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야기적 서술로 재밌게 읽을 수 있으나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뒤섞여 나오는 경우가 많아 거시적으로 역사를 정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부분은 책의 뒤에 연대기를 실어놓고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물의 특징, 특정 사건에 대한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십자군 전쟁 동안 에스파냐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아랍 세계는 아직은 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가장 앞선 문명의 보고였다. 그러나 나중에 세계의 중심은 결정적으로 서쪽으로 옮겨진다. 여기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과연 십자군이 서유럽에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으며 아랍 문명에는 종말을 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전혀 그릇된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판단이 약간의 수정을 요한다는 점이다. 아랍인들은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분명한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프랑크인들이라는 존재가 그것을 드러나게 했고 더 악화시켰을지는 모르지만 그 결함을 창출한 장본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 P36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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