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8월 11일, 내부인민위원회가 "폴란드 군사 조직의 간첩 연결망 완전 청산"을 수행하도록 하는 ‘명령 00485호’를 공표했다. 명령 00485호는 부농 박멸 작전 개시 직후에 공포되었지만, 훨씬 더 과격했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계급으로 정의할 수 있는 적을 노린 명령 00447호와는 달리, 00485호는 특정 민족 집단을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폴란드 박멸 작전은 연이어 벌어진 다른 소수 민족 박해 작전의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작전들의 대상은 스탈린주의가 만든 신조어로는 ‘적국’인, 고국을 떠난 민족으로 그 고국과 실제 또는 허구의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이었다.

1939년 초반, 히틀러는 전환점에 도달했다. 독일 민족을 하나의 국경 안에 모은다는 그의 대외 정책은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동방 침략에 폴란드를 참여하게 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또한 히틀러는 독일을 재무장하는 한편 전쟁 없이 최대한 영토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3월 25일 히틀러는 독일 국방군에게 폴란드 침공 준비를 명했다.

1939년 런던과 파리는 독일의 공격을 저지할 목적으로 폴란드에 안전을 약속했고, 이를 통해 소련을 일종의 방위 동맹에 끌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독일이 폴란드나 소련을 공격하더라도 런던과 파리가 동유럽에 개입하진 않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독일과 합작한 후 자본주의 열강들이 서유럽에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소련의 공격이 있고 사흘 뒤에 체결된 독일과 소련 간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은 독일과 일본 간의 방공 협정을 무효로 만들었다. 전장에서의 패배 이상으로, 나치-소비에트 동맹은 도쿄에 정치적 격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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