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견으로는 나라고 민족이고 간에 그거는 다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겠소? 생각해보시오. 왜놈들이 우리 백성을 청풍당석에 앉히놓는다면 어느 누가 칼 들고나갈 깁니까. 그러나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왜놈은 우리 백성들 갑데기를 벗기고 있으며 조만간에 우리 조선사람들 씨를 말리고 말 것이오. 그러니 우리 모두 목이나 매달아 죽어부리까그래야만 되겄소?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 너 남 지간에 한다는말이 일본은 심이 세다, 세계에서는 강국이다, 대항해보아야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럴 바에야 더 배워서 시기를 기다리는 기이 낫다, 제기랄! 호랭이 앞에서 기다리보아야 잡아묵히기밖에 더하겠소. 살아남을라카믄 심약한 인간은 창을 맨들고 함정도 파고 덫도 놓고, 환하게 다 알믄서 소선생은 와 딴전을 피우는 깁니까?" - P53
"삼림조합 사건이 터진 단천(端川)이라는 곳은 원래부터 반일세력이 강했다 하더군요. 연해주가 가까운 관계로 공산당 조직도 상당히 뿌리가 박혀 있고, 그간에도 농민동맹과 청년동맹이 주축이 되어 누에고치 공동판매 반대, 관제인 군농회(會) 반대, 농촌학취체반대, 화전민 정리반대 등등 대항이 계속되었는데, 삼림조합 반대에서 일은 크게터진 거지요." "장풍탄광에서 일이 터졌을 직에 전국에 번진 학생운동맨크로 전국의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 사람들은 생각했는데, 그기이…………." 관수의 말이었다. "한쪽은 쑤시고 한쪽은 초병 마개만큼 단단하게 틀어막아야, 다 쑤시면 일 안 되지. 게다가 조선놈 공부하는 거는 달갑지 않아도 노동자들이야 부려먹어야 하니까." - P61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업가 김두만 씨, 누가 뭐라 하건 중후한 중년 신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연장망태 어깨에걸머지고 다니던 김목수, 술 도매상이랍시고 차린 좁은 점포에웅크리고 앉았었던 김씨, 그런 모습들은 세월의 물결에 실리어가버린 지가 오래다. 아들형제 기성과 기동이가 다니던 중학교학부형 회장직의 관록도 이제는 몸에 배었으며 천장절(天長節)이다, 명치절(明治節)이다 하며 일본인 국경일의 의식에는 귀빈으로, 그것도 어지간히 자연스러워졌고 사람들은 뒷구멍에서 험담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꾸벅꾸벅 절을 했으며 서장 나으리, 시장 나으리, 그런 높은 사람들 모인 자리에 참석도 하고, 싫든좋든 진주서는 손꼽히는 명가 양교리댁의 당주인 양재문도 김두만을 만나면 손을 내민다. 비빔밥집은 걷어버리고 안방 어부인으로 자리를 굳힌 서울네, 해서 김두만은 양조장나으리라 아양을 떠는 기생집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돈 좋지. 돈 좋고말고, 아암 돈같이 좋은 기이 어디 있노." - P67
동북지방 산중에서 짐승같이 더럽고 무지하게 살아온 일부 일본 인종이라 할지라도 명희나 여옥과 같이 교육받고 의식이나 생활의 풍도가상류에 속하는 여성들조차 억압과 모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는 매일반이다. 그들은 대일본제국의 반사경인 것이다. 학식이있고 없고 간에 부하고 빈하고 간에 아이건 어른이건 간에 식민지에서의 그들은 모두 국책의 충실한 반사경. - P99
"명문거족의 딸들은 기왕의 누려온 그 특권으로 해서 새로운 학문도 시집가는 혼수같이 되어전과 다름없는 며느리 아내로 낙착이 되었지만 그럴 수 없는 계층의 여자들은 오히려 신분이 떨어져 버린 느낌이야. 남의 소실 후처댁이 심지어는 광대취급이고 소수가 사회 일각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가시밭길을 걷는데 말로는 존경한다, 평가하는데는 교육받은 여자라는 것이 보탬이 되기도 하고 남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거지. 호기심의 대상으론 시골이라고 다를 없어. 더했음 더했지.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 P110
"요즘 식자 좀 들었다 하면 사회주의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하고들 말 많이 하는데 난 때론 무서워져. 어째서 내가 그들의적인가 하구, 그들은 모두 착하구나 같은 사람은 모두 악하구,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말하는, 그런 이론을 믿는 사람 대다수는 노동자도 농민도 아니지 않아. 북만주에 가서 독립운동하는 소위 양반의 후예보다 농민이 더 위대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니." "그 말엔 나도 동감이야. 가난하다고 다 착하다는 논리는립될 수 없지. 그 속에도 고약한 사람 많아. 권좌에 앉혀놓으면포악무도할 요소를 가진 사람 말이야. 또 민중을 믿는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그러나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통해서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닐까?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것 아니라 할 수는 있으나 일면 고난이 사람을 맑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 " - P126
"하지만 피해를 어떻게 물질에만 둘 수 있겠니. 이런 말 또하면 넌 배고파보지 않은 자의 호사스런 얘기라 하며 공박할지모르지만 오늘만 해도 바닷가에서 뱃사람들이 떠들고 깔깔대고 했을 때 기분이 나쁠 정도가 아니었어. 겁이 나던걸. 그 경우난 여자였으니까 말이야, 약자에 대한 심리적인 일종의 포악성을 느꼈어. 순간 내 가슴을 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절망비슷한 것이었는데 내 의식 속에도 가난한 사람은 피해자다, 따라서 늘 당하기만 하는 약자, 착한 사람이다, 하는 것이 잠재해 있었던 것 같았어. 오히려 그들이 뱃사람 아닌 경찰관 그런부류의 인간이었더라면 기분이야 나빴겠지만 절망 같은 것 느꼈을까?"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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