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秦紀

始皇帝下

【庚辰】二十六年王賁自燕南攻齊猝入臨淄民莫敢格者秦使人誘齊王約封以五百里之地齊王遂降秦遷之共處之松柏之間餓而死

溫公曰從衡之說雖反覆百端然大要合從者六國之利也昔先王建萬國親諸侯使之朝聘以相交饗宴以相樂會盟以相結者無他欲其同心戮力以保家國也鄕(曏)使六國能以信義相親則秦雖彊暴安得而亡之哉夫三晉者齊楚之藩蔽齊楚者三晉之根柢形勢相資表裏相依故以三晉而攻齊楚自絶其根柢也以齊楚而攻三晉自撤其藩蔽也安有撤其藩蔽以媚盜曰盜將愛我而不攻豈不悖哉
王初幷天下自以爲德兼三皇功過五帝乃更號曰皇帝命爲制令爲詔自今以來除諡法朕爲始皇帝後世以計數二世三世至于萬世傳之無窮

○ 初齊威宣之時鄒衍論著終始五德之運及始皇幷天下齊人奏之始皇采用其說以爲周得火德秦代周從所不勝爲水德始改年朝賀皆自十月朔衣服旌旄節旗皆尙黑數以六爲紀

○ 丞相綰等言燕齊荊地遠不爲置王無以鎭之請立諸子始皇下其議廷尉斯曰 周文武所封子弟同姓甚衆然後屬疏遠相攻擊如仇讐周天子弗能禁止今海內賴陛下神靈一統皆爲郡縣諸子功臣以公賦稅重賞賜之甚足易制天下無異意則安寧之術也置諸侯不便始皇曰天下共苦戰鬪不休以有侯王賴宗廟天下初定又復立國是樹兵也而求其寧息豈不難哉廷尉議是於是分天下爲三十六郡郡置守尉監收天下兵聚咸陽銷以爲鍾鐻(虡)金人十二重各千石置宮庭中

진시황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그 이유를 선포하다. 시황은 전국 시대의 음양학파 추연의 학설(오덕이 순차적으로 옮아가며 각 덕에 합당한 정치가 존재하고 각 징조가 그에 부응한다)을 받아들였다. 진은 주나라 뒤에 통일한 국가이기 때문에 주(불, 적색)가 숭상했던 것과 반대로 겨울의 시작인 10월을 1년의 시작으로 하였다. 또 물을 숭상하고 검은색을 중요시하였으며 숫자 1(생), 6(성)을 길한 숫자로 여겼다. 주나라가 제후국을 봉하여 유지한 것과 다르게 진은 승상인 이사의 권고에 따라 군현제를 실시하기로 한다. 군현제는 지방에 군과 현을 두고 중앙에서 그곳에 직접 관리를 파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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