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巳】五十九年秦伐韓取陽城負黍斬首四萬伐趙取二十餘縣斬首九萬赧王恐倍(背)秦與諸侯約從欲伐秦秦使將軍樛攻西周赧王入秦頓首受罪盡獻其邑三十六口三萬秦受其獻而歸赧王於周是歲赧王崩
○ 先是東西周分治赧王徙都西周盖以微弱不能主盟會武公依焉
東周君
東周自考王封其弟于河南是爲桓公以續周公官職桓公卒子威公立威公卒子惠公立惠公乃封其少子於鞏以奉王號東周惠公
南宮氏靖一曰周自武王至東周君滅而始亡此實錄也後有秉春秋之筆者盍從而改諸
【丙午】元年周民東亡秦取其寶器遷西周公於憚狐聚
○ 秦丞相范雎免
【丁未】二年秦伐魏取吳城
○ 韓王入朝於秦
【庚戌】五年秋秦昭襄王薨子孝文王柱立
○ 趙公子勝卒
【辛亥】六年十月秦王柱卽位三日薨子楚立是爲莊襄王
하->은에 이어 주나라 시기는 서주 시기와 동주 시기로 나뉜다. 평왕에 이어서 난왕에 이르는 시기를 동주 시기라고 부른다.
자치통감은 난왕이 죽으면서 사실상 주나라 전체의 시기가 끝났다고 보아서 주나라 역사는 거기까지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통감절요는 이와는 해석을 달리 하여 동주 시기 중 고왕에서부터 분기하여 문왕에 이르는 시기를 서주군으로 보고 혜왕 때 둘째 아들에게 봉해준 땅에서 분기하여 이르는 시기를 동주군으로 보았다.
이 동주군에 대한 시기까지 포함하여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까 동주 시기를 통틀어 이야기한다면 도읍을 총 세 차례 옮겨다닐 정도로 주나라 왕실의 힘은 미약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이 동주군까지 멸망시키고 통일을 한 것은 동주군 7년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