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가 여희로 인해 혼란에 빠지다
제환공이 중원을 구하다
중이와 이오가 어미를 피해 달아나다
관중의 만류로 제환공이 공격을 만류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빌미로 자신의 소생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이에 외폐(外壁:군주의 총애를 받는 신료를 지칭, 총애를 받는 여인은 內라고 함)인 대부 양오(梁五)와 동관폐오(東關壁五)에게 뇌물을 주어 진헌공에게 이같이 말하게

했다.
"곡옥(沃: 진헌공의 조부인 환숙의 봉지로 산서성 문희현 동쪽에 위치)은 군주의 종묘가 있는 곳이고 포(蒲: 산서성 습현 서북쪽)와 이굴(二屈: 남굴과 북굴로산서성 길현 남쪽과 동북쪽에 각각 위치)은 군주의 주요한 변경 지역입니다. 이들지역은 다스리는 주인이 없으면 안 됩니다. 종묘가 있는 곳에 주인이 없으면 백성이 군주를 어렵지 않게 여기고 변경에 주인이 없으면 융인이 야심을 품게 됩니다.
백성이 정령을 가볍게 여기고 융인이 침공할 야심을 품는 것은 나라의 큰 우환입니다. 태자에게 곡옥, 중이에게 포, 이오에게 이굴을 각각 다스리게 하면 백성이군주를 어렵게 여기고, 융인이 두려움을 품게 되며, 군주의 공적을 떨치는 일이 될것입니다."
여희는 후에 다시 두 사람을 시켜 이같이 말하게 했다.
"적인(人)이 사는 광막한 땅에 성을 쌓으면 진나라 영토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진헌공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여름, 진현공이 태자 신생을 곡옥, 중이를 포성, 이오를 이굴로 보낸 뒤 나머지 여러 공자들도 모두 변경에 살게 했다. 그러고는 오직 여융의 두 여자가 낳은 해제와탁자만이 도성인 강()에 머물게 했다.
이오(二五: 양오와 동관폐오)는 마침내 여희와 모의해 여러 공자들을 무함한 뒤해제를 태자로 삼았다. 이를 두고 진나라 사람들이 이같이 비판했다.
"이오우(二五耦)."

여름, 초성왕이 대부굴완(完)을 제나라 군중으로 보냈다. 이에 제후들의 군사가뒤로 물러나 소릉(김陵 : 하남성 언성현 동쪽)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때 제환공이제후들의 군사를 도열시킨 후 굴완과 함께 수레를 타고 사열하면서 굴완에게 이같이 말했다.
"어찌 제후들이 불곡(禾穀: 과인) 때문에 이리하겠소. 모두 선군 때 맺은 우호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오. 초나라도 나와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떠하오."
"군주가 이곳까지 와 폐국(國)의 사직을 위해 요복(福:복을 구함)하고 널리우리 군주를 용납해 친선하고자 하니 이는 우리 군주가 내심 바라던 바이기도

니다."
제환공이 또 말했다.
"내가 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가 싸운다면 누가 능히 대적할 수 있겠소. 또 이 군사로써 성을 공격한다면 어느 성인들 이기지 못하겠소."
굴완이 대답했다.
"군주가 만일 덕으로 제후들을 다스린다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힘을 믿고 대한다면 우리 초나라는 방성산(城山: 하남성 섭현 남쪽)을성벽으로 삼고 한수(漢水: 장강 최대의 지류)를 못으로 삼을 터이니 비록 군사가많을지라도 결코 쓸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에 굴완이 제후들과 결맹했다.

어떤 사람이 태자에게 이같이 건의했다.
"군주에게 사실을 해명해야 합니다. 군주가 반드시 분별할 것입니다."
그러자 태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같이 말했다.
"군주는 여희가 없으면 거침편치 않고 음식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하이
오. 내가 해명하면 여희의 죄가 반드시 드러나게 되오. 게다가 군주는 이미 늙었으니 그러한 일을 원치 않을 것이오. 오우불락(吾不樂)"이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외국으로 가려는 것입니까."
"군주가 아직 그 죄의 원인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있는데 이 죄명을 쓰고 외국으로나가면 누가 나를 받아들이겠소."
12월 27일, 태자가 신성에서 액사(死)했다. 그러자 여희가 또 다른 두 공자를 이같이 무함했다.
"그들도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중이는 포성(城), 이오는 굴성(城)으로 달아났다.

"우리 정나라에서는 대부 설씨(氏)와 공씨(孔氏), 자인씨(子人氏)의 세 씨족이군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군주가 그들을 제거해 폐국과 화친을 맺으면 저는 정나라를 들어 군주의 내신(內臣)이 되겠습니다. 그리되면 군주 또한 이롭지 않겠습니까."
제환공이 이를 허락하려고 하자 관중이 이같이 만류했다.
"군주는 예(禮)와 신(信)으로써 제후들을 모아 놓고 사악함으로 회맹을 맺으려고하니 이는 옳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자가 서로 범하지 않는 것을 예라 하고군명을 받들어 그 직무를 다하는 것을 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기는 것보다 더 큰 사악함은 없습니다."
"제후들이 정나라를 쳤으나 아직 이기지 못하고 있소. 지금 다행히 그 틈을 노릴만한데 그의 말을 따르는 것 또한 가하지 않겠소."
그러자 관중이 이같이 반박했다.
"군주가 덕으로써 정나라를 위무하고 교훈이 되는 말로 전에 배맹(背)한 죄를 질

책하면 됩니다. 만일 듣지 않을 경우 제후들의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토벌하면정나라는 복망(覆亡: 원래는 망한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위기를 구한다는 뜻임) 하기 위해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감히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 나라의 죄인인 태자 화를 이끌고 정나라를 치게 되면 정나라는 변명할 말이 있게 되니 그들이 어찌 이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더구나 제후들의 회맹은 덕행을 존숭하기 위한것인데도 제후들이 모이는 자리에 간사하기 그지없는 태자 화에게도 자리를 내주면 장차 무엇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보일 것입니까. 제후들의 회맹이 있게 되면 각나라의 덕행과 형벌, 예법, 도의 등을 기록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만일 간사한 자가 회맹에 참여했다고 기록하면 군주가 주도한 회맹은 폐기되고 말 것입니다. 일을 하고도 기록되지 않는 것은 성대한 덕행이 아닙니다. 군주는 그의 말을좋지 마십시오. 정나라는 반드시 맹약을 수락할 것입니다. 공자 화는 이미 태자가되었으면서도 큰 나라를 개입시켜 자신의 나라를 약하게 하려고 했으니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정나라에는 대부 숙첨)과 도숙(叔), 사 등)
의 3량(三良 : 3명의 현신)이 어진 정치를 펴고 있어 아직 그 틈을 노릴 수가 없습니다."
이에 제환공이 태자 화의 요구를 사절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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