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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신의를 중시하는 마음
송양지인 고사의 유래
진문공이 패자가 되는 드라마틱한 사연
초 성왕이 미래를 내다본 한 수

나라에 재(財)가 많으면, 곧 멀리 있는 자가 온다. 토지가 벽거(僻居, 개발)되면, 곧 민(民)은 유처(留處, 머묾)한다. 창늠(倉庫, 곡창)이 차면, 곧 예절을 안다. 의식(衣食)이 족하면, 곧 영욕(榮辱)을 안다. 윗사람이도(度, 법령)에 따르면, 육친(六親)이 화합한다. 사유(四維, 예의와 염치)가 행해지면, 곧 임금의 영이 행해진다. 이는 『관자』의 첫머리에 있는 말이다. 관중의 사상이 여기에 응축되어 - P414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절도 영욕을 아는 마음도 모두 경제적인 기초가 없으면 안 된다는사고방식으로, 혹은 경제 지상주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말(曹沫)의 협박에 의한 약속을 환공에게 끝까지 지키게 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관중은 무엇보다도 신의를 중히 여겼다. - P415
패자의 자격으로는 회맹의 맹주가 되고 다른 나라의 일에 간섭할 수 - P434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송나라의 양공은 이전까지의 경위도 있었기에 제나라의 후계자 문제개입했다. 제나라의 환공은 관중과 의논하여 태자인 소를 송나라로유학을 보냈다. 송나라의 양공은 의뢰를 받은 일이기 때문에 소에게 제왕학(帝王學)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태자를 바꿔 무궤가 군주가 되었고, 소는 송으로 되돌아와 망명을 했다. 송나라의 양공은 아버지의 상중이었음에도 규구의 회맹에 참석했다. ‘천하의 일이 집안일에 우선한다는 것이 양공의 생각이었다. 그는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였다. - P435
진나라의 문공(文公)은 패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었다. 진나라의 군주가 되는 것조차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진나라의 군주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왔으며, 진후(晋侯)의 자리에 오르고 보니 눈앞에 패자로 가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 P453
만약 어쩔 수 없이 군왕을 병거(兵車)와 함께 평원광택(平原廣澤)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청하건대, 왕을 피해 삼사(三舍)하겠습니다. 만약 훗날 넓은 전장에서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삼사를 후퇴하겠다는 말이다. 사(舍)란 군대가 하루에 행군하는 거리로 30리라 정해져 있었다. 주나라의 1리는 405미터 정도였으니 1사는 12킬로미터 정도가 된다. 36킬로미터 정도 물러나겠습니다. 그것이 보수입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초나라의 장군인 자옥(玉)이 화를 냈다. 들개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망명 공자 주제에 그 무슨 불손한 말인가. 죽여 버리자고 성왕에게 말했다. 성왕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진나라의 공자는 어질지만 밖에서 오래 고생했다. 따르는 자들은모두 국기(國器, 나라의 어진 인재)다. 이는 하늘이 둔 바이니 어찌 죽일수 있겠는가. 그리고 말은 무엇으로 이를 바꾸겠는가.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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