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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춘추』에 따르면, 이윤은 아무래도 탕의 명령을 받고 첩자로 하에들어간 듯하다. 그런데 일단 탕을 섬기던 인물이 하로 옮겨가면 의심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윤은 탕의 노여움을 사 달아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 믿지 못하겠음을 두려워하여 탕은 이에 스스로 이윤을 쐈다.
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탕은 화가 나서 이윤을 죽이려고 활을 쏘는 시늉까지 했다. 이윤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하로 도망친 것처럼 되었다. 연기가 아주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하로 들어간 이윤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총애를 잃은 말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왕조 심장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모음과 동시에 내부 교란작전도 함께 펼쳤다. 하지만 이윤의 첩보활동이나 모략공작만으로 하가 멸망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의 멸망은 왕조 내부가 크게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P132

이윤은 하에 3년 동안 있었다고 한다. 박으로 돌아온 이윤은 탕에게자세히 보고했다. 이제 하 왕조의 명맥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과감하게 일어나라고 권유한 사람은 틀림없이 하의 정세를 잘 알고 있던 이윤이었을 것이다.
탕은 이윤과 맹세하여 하를 반드시 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는 『여씨춘추』의 문맥으로 보아 탕과 이윤은 주종이라기보다는 맹우에더 가까웠던 듯하다. - P133

은나라 사람들의 행동은 전부 점복(占卜)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점복이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실권이 점복을 관장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질 우려가 있다. 왕이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점쟁이들을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 스스로가 점복을 행해야만 한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갑골을 구워 나타난 점괘를 판단하는 것은 왕의 몫이었다.
은나라의 왕은 일종의 법왕(法王, 사제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신과 조상신을 받들어 제사를 지내고 점복을 관장했으니 성직자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수장으로서 현실의 정치도 맡았다.
이와 같은 제정일치 체제에서 왕은 신성하여 범할 수 없는 자, 신 그 - P152

자체가 되어 버린다. 은나라의 왕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난 신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세습제의 모순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오히려 왕을 더욱 신성화하는 법이다. 제사권, 점복권을 손에 쥐고 있기만 하면 더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왕좌는 안전하다고 할 수있다. - P153

은 시대에는 이와 같은 청동기, 청동무기 외에 타악기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구리거울이 출현한 것은 전국 시대 이후부터다.
‘갑자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그 표현이 꼭 알맞을 정도로 은의청동기는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떤 공예품이든 치졸한 유년기와같은 시기가 있으며 점점 경험이 쌓이고 개량이 더해지다가 기술이 향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중국의 청동기는 최고의 것이 은 시대에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보인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기발한 설이 등장을 한다.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헬리콥터를 타고정상까지 날아오르려는 것이다. - P158

갑골문의 양식도 역시 시대에 따라서 다르다.
제1기-글자가 크고 대담하고 힘이 넘친다.
제2기-글자가 중간 정도의 크기가 되었으며, 세밀하고 정확하고 품격이 있다.
제3기-유약해졌으며 오자가 많다. - P170

제4기-다시 힘이 넘치며 활기가 느껴진다.
제5기-글자가 작아졌으며 배치를 고려한 흔적도 보이고,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썼으며 섬세하고 우아하다.
이와 같은 차이도 인간의 예술 활동의 흐름, 그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해하는건창업 당시의 씩씩한 기운, 그것의 거친 기운을 적당히 깎아내 정리를하는 기간, 머지않아 찾아오는 퇴폐기, 반성에 의한 부흥에 이은 성숙, 섬세해져 가는 시기.
이렇게 보니 모든 것이 유유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태고 시대에도적잖은 기복의 역사가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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