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지구화

[탈냉전과 기억의 지구화]
‘스톡홀름 선언‘(2000.1.28 공표): 홀로코스트가 보편적 의미를 지니며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되어야한다라고 명시
‘기억·책임·미래 재단‘의 발족으로 동유럽에서 강제 노동된 노동자와 독일 내 강제수용소의 수감자와 유대인, 전쟁포로 등이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 법. 1953년 ‘런던채무협약‘으로 전후 배상 문제는 일괄 타결되었다고 간주해온 독일 정부 및 재계의 과거 입장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 이루어진 것 - 인권에 대한 보편적 관심의 확대
-> 한국 언론은 독일의 배상을 전례로 삼아 일본 정부와 재계에 식민지 조선인 강제노동 배상에 대한 촉구 - 지구적 기억 공간에도 큰 반향

[일본군 ‘위안부‘와 반인륜적 범죄]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여성 국제전범재판소(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on Japan‘s Military Sexual Slavery)‘(2000.12 도쿄):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도덕적 목소리로 인해 정치적 의미가 컸음. 일본군 ‘위안부‘ 기억활동가들은 천황을 비롯한 일제 최고위 정치 군사 지도자 10명을 전쟁범죄와 반인륜 범죄로 기소. 생존자 증인 35명의 법정 증언과 비디오 증언을 증거로 채택. 법정은 위안부 제도 아래 자행된 강간과 성노예제가 ‘반인륜적 범죄‘라 판결 -> 아시아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여성에게 저지른 성범죄를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가 지구적 기억의 문제가 되었음을 선포한 것
1994년 르완다와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벌어진 제노사이드가 ‘일본군 여성 국제전범재판‘에 영향을 주었음
1993년 빈 세계인권회의에서 여성의 권리는 인권 문제임이 강조, 같은 해 12월 유엔 총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 채택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로마 규정: ‘강간, 성노예제, 강요된 매춘‘을 전쟁범죄이자 반인륜적 범죄로 규정
20세기 성폭력은 제노사이드의 주요 수단 중 하나였고 생물학적 인구 재생산을 통제하는 제노사이드의 방법과 결합하면서 성폭력의 양상이 더 체계적이고 정교해짐.(가부장제와의 결합)
성폭력으로서의 강제 결혼이 반인륜적 범죄라는 최초의 판결은 ‘시에라리온특별재판소‘의 찰스 테일러 항소 법정
1991년 김학순 피해자의 공개 증언 이후 양국 여성단체의 초국가적 연대와 북미 대륙의 한국계 이주민 여성들의 문제 제기로 ‘위안부‘ 문제는 전지구적 이슈로 발전 일본계 미국인 NGO 단체인 ‘인권과 배상을 위한 일본계 미국인(Nikkei for the Civil Rights and Redress, NCRR)‘의 활동: 일본군 위안부가 거짓이라 주장하고 백악관 청원과 의회 로비, 지방 정부에 대한 압력 등을 통해 ‘위안부‘ 기림비나 소녀상의 철거를 주장한 본국 정부와 일부 일본계 미국인의 원거리 민족주의와 대조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음
미국 내의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기억활동가(글렌데일의 시의회 의원인 아라 나자리안, 자레 시나얀)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활동가의 연대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안에 문을 연 갤러리 리플렉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기획 전시(2017.5) 개막전 ‘기억의 풍경‘은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서 공식 역사와 생존자 증언의 관계를 묻는 전시, 두번째 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침묵과 대화에 대한 예술적 성찰‘
2005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박물관에서 열린 ‘나치 강제수용소와 강제 성노동‘ 전시: 강제 성매매의 문제를 기억의 공론장에서 논의하게 된 계기
2007년 9월 라벤스브뤼크 ‘전시 강제 성매매‘ 여름 대학: 일본군 위안부와 보스니아 그르바비차에서 벌어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이슬람 여성 집단 강간, 나치 수용소의 강제 성매매를 함께 다루면서 강제 성매매와 폭력을 같은 기억 공간에 배치

[검은 대서양과 홀로코스트]
<우리는 제노사이드를 기소한다> 유엔에 청원서 제출(1951):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미국의 인종주의적 박해가 지닌 공통점 지적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아프리카 국민회의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정치범들, 넬슨 만델라에게 인기가 높아
1920년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독일로 이주한 ‘검은 독일인‘과 독일에서 태어난 자식 세대 역시 괴롭힘과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았음
《할런의 책(The Book of the Harlan)》(2016): 아프리카계 미국인 재즈 연주자 할런과 리저드를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로 그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대한 묘사나 수용소 소장 부부에 대한 비역사적 설정, 아프리카계 독일인이나 유럽의 흑인보다 파리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홀로코스트의 주된 희생자로 그리는 등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 많은 문제점 노출
아실 음벰베 논쟁(2020):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적 기억과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만났을 때 누가 더 큰 희생자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한 갈등을 보여
다른 역사적 비극과의 비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홀로코스트를 절대화하고 홀로코스트가 도덕적 불문율로 탈역사화되어서는 안되

[68혁명과 기억의 연대]
19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베트남 반전 평화운동과의 결합)은 탈영토화된 지구적 기억구성체의 연대를 향한 역사적 배경
1971년 중일전쟁과 난징학살에 대한 일본 사회의 비판적 기억을 끌어낸 것은 1960년대 일본 베트남 반전운동인 ‘베트남평화시민연합’의 행위에 따른 결과 - 일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1968년 혁명은 실패했지만 기억 문화의 관점에서 실패라고 단언할 수 없다.
1961년 아이히만 재판,
파리 시가에서 반식민주의 시위에 나선 알제리 이민자들의 학살 피해, -> <두 개의 게토>(마르그리트 뒤라스): 바르샤바 게토 생존자와 알제리 노동자를 병치해 홀로코스트와 식민주의에 대한 기억의 연대 타진
아메리카 선주민에 대한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정착민 민주주의 체제가 권위적인 식민주의 체제보다 학살의 빈도와 강도가 훨씬 더 많고 높음)와 홀로코스트의 기억의 연대 ->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제노사이드의 기억은 서구에서 제노사이드나 홀로코스트가 발생할 수 없다는 서구중심주의의 역사적 알리바이가 거짓임을 표출. 서구 민주주의가 홀로코스트의 가능성을 내장한 체제인 것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난 기억은 20세기의 제노사이드를 비판적으로 기억하면서 민주화를 향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든다다.
독일의 이슬람계 이주민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맺고 있는 기억의 연대: 소설 ‘위험한 유사성’(1998)에서 터키계 이슬람 독일인의 기억 속에서 홀로코스트와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를 조우하게 하면서 기억의 민족적 경계를 뒤흔듬
베를린 노이쾰른구의 기억활동가들이 시도한 ‘노이쾰른 동네 어머니 프로젝트’

1989~1991년 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자유주의 서구문명이 세계사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낙관주의에 취해 있을 때, 르완다와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와 체계적 성폭력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역사의 반복‘임 - P173

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보스니아의 이슬람 여성에게 자행된 체계적인 집단 강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일본군‘위안부’의 기억을 전 세계에 되살렸다. 또 거꾸로 르완다 및 유고슬라비아의 국제전범재판에서는 무력 충돌 때 발생한 체계적 강간에 대한법적 정의를 내리는 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참고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1930년 제정된 강제노동협약위반이라고 보았다. - P174

실제로 성폭력은 피해자인 여성은 물론이고 그 여성이 속해 있는공동체의 남성에게도 여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안겨준다는 점에서 가해자의 권력을 행사하고 과시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효율적인 지배 도구였다. - P174

성적 제노사이드의 가해자에 대한 단죄가 지체될수록 더는민족의 몸을 재현하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자는 외부의 가해자뿐 아니라 내부의 가부장적 민족주의자들의 비난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열린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일본 전범에 대한 도쿄 재판에서 성범죄에 대한 고발과 처벌은 홀로코스트와 난징 학살, 연합군 포로 학대 등의 이슈에 밀려 주변화되었다.
반인륜적 범죄로서의 전시 성폭력이 전 세계 시민사회의 심각한 윤리적 의제로 등장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서의 일이었다." 지구적 기억구성체의 형성과 더불어 지금까지는 타자화되었던 성폭력 희생자에대한 윤리적 감수성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 P175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 트랜스내셔널한 억압의 기억 때문에트랜스내셔널한 페미니즘적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은 일본 제국의 파시스트 가부장주의, 전후의 가부장적 성차별주의, 탈냉전기의 신민족주의의 결절점으로서 가해자 이데올로기의 연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일본 내부의기억 정치적 지형에서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은 페미니즘의 미투동에 대한 남성주의적 혐오와 연결되어 있다. - P180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다른 제노사이드의 기억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소통하는 ‘다방향적인 기억‘ 또는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와의 ‘비판적 상대화’를 통한 비교는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홀로코스트의 단일한 역사성을 인정하면서도 특권적 지위에 대한 헤게모니적 욕망을 제어하는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기억과 더불어 식민주의적 과거에 대한 망각이 전후 독일의 기억 문화를구성하는 다른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P194

1960년대의 반전운동을 통해 홀로코스트와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미국의 노예제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의 침략과 잔학행위에 대한 기억이 전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서로 만나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히 전지구적 시민운동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정치 동학의 관점에서는 68혁명이 실패한 혁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억 문화의 관점에서는 실패라고단정하기 어렵다. 1968년을 기점으로 국가권력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자기중심적 기억 문화의 코드를 흩트리고 국경을 넘어 타자의 고 - P198

통에 공감하는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국민국가의 틀에서 구출하여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기억 문화의 코드를 바꾸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68혁명의 문화사적 의의는 실패한 정치혁명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 - P199

민족공동체가 흔히 빠지기 쉬운 영토화된 민족주의적 기억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과거를 공유하지 않는 이질적 기억 주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예컨대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억은우파적 기억이냐 좌파적 기억이냐, 공식 기억이나 풀뿌리 기억이냐의구분을 넘어서 베트남계 이주민들이, 더 나아가서는 베트남의 침공을받은 캄보디아계 이주민들이 기억의 구성 과정에 참여할 때 급진적으
‘로 탈영토화될 것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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