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의 불학과 불학에 대한 당시의 쟁론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되었을 때 당시의 중국인들은 불교철학을 접하고는 우선 그것을 중국철학 고유의 술어로 번역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할수 있다고 느꼈다. 불교철학을 선양한 사람들도 반드시 불교철학의 사상을 중국고유의 철학 술어로써 설명해야 중국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을 당시에 "연류(連類)" 혹은 "격의"라고 불렀다. - P235

유무 또는 공유는 바로 노장과 불학에 공통된 문제였고 또한 남북조 이후 불학가들이 가장 많이 토론한 문제였다. 이는 6가 7종으로 분류된다. - P238

한 생각이 미혹되면 본디 무아인데 망령되게 하나의 자아를 세우게 된다. 자아가 생김에 따라 드디어 비아(非我)가 생기고 주관과 객관이 나뉘어 대립하면 그로부터 현상세계가 일어난다. - P255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인연(因緣)이 모여야 생기고 인연이 모이지 않으면 멸하기 때문에 모두 환화인과 같다. 이런 면에서 보면 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라고 한 것은 "환화인은 참된 사람이 아님"을 지칭했을 뿐이고, "환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화인이있다는 면에서 보면 물론 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물은 유가아닌 까닭도 있고 무가 아닌 까닭도 있다." 이것이 "참되지 않으므로 공이다는 이론(不眞空義)"이다. - P257

「물불천론」은 말한다. "불변성에 대한 탐구에서 우리는 변동을 떠나 정지를구하지 말며 반드시 뭇 변동 속에서 정지를 구해야 한다. 반드시 뭇 변동 속에서정지를 구하므로 변동해도 영원히 정지하며, 변동을 떠나 정지를 구하지 않으므로정지해도 변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尋夫不動之作, 豈釋動以求靜, 必求靜於諸動,
必求靜於諸動, 故錐動而常靜, 不釋動以求靜, 故維靜而不離動)." 그러므로 이른바동·정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제법의 실상은 그것이 변동도 정지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변동하기도 하고 정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중도의 논리로 표현하면, "변동이나 정지가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양극단의 하나에 떨어지나, 변동도 정지도 없다고 말하면 중도에 맞게 된다." - P261

가령 황금보물을 저장한 창고 안에서, 항상 황금의 본체만 관조하고 각종형상은 보지 않으며, 각종 형상을 보더라도 역시 하나의 황금임을 안다고 하면, 이미 형상에 의해서 미혹되지 않으니 곧 분별을 벗어나고, 항상 황금의본체만 관조하니 허망한 그릇됨이 없어지는데 바로 진인(眞人)의 경우가 그와 같다. 항상 "진일(眞一)"만 관조하고 각종 형상은 보지 않으며, 각종 형상을 보더라도 역시 "진일 "임을 알아서 망상(妄想)을 벗어나 전도된 편견을가지지 않고 진실의 경지에만 머물면 그가 바로 성인(聖人)이다. - P263

반야는 비어 있어도 통찰하고, 진제는 없는듯해도 지혜를 발하고, 온갖 변화 속에서 고요할 수 있고, 성인은 도모하지않고 응해도 일을 성취한다. 이것이 곧 알지 않아도 저절로 알고, 도모하지않아도 저절로 성취하는 것이니, 다시 무엇을 인식하며 다시 무엇을 도모하랴? - P268

무심(無心)하게 사물에 감응한다면 행위를 하더라도 감정에 의해 초래될 내용이 없으므로 윤회를 벗어나고 업보를 받지 않게 된다. - P273

배움은 번뇌를 잠복시킬 뿐이지만 깨달음은 번뇌를 소멸시킨다.
"잠복된 번뇌가 오래되면 소멸된 번뇌에 이른다. 번뇌의 소멸은 번뇌가 잠복된 이후에 일어나니", 이른바 "깨달음의 경지는 유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나 배움에 의탁하여 도달한다"는 말이다. - P280

정신과 육체가 하나라면(一)"미세한 것과 조잡한 것은 동일한기이니", 육체가 있으면 정신이 있고 육체가 없으면 정신도 없다. 또 정신과 육체가 본래 별개라고(異) 해도 "정신이 육체에 거함"은마치 "불이 나무에 있는 경우"와 같아서, 나무가 없으면 불은 의탁할 곳이 없고 육체가 없으면 정신은 깃들 곳이 없다. 정신과 육체가하나인지 별개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더라도 "유·무의 논리는 반드시 취산에 근거하니" 기가 모이면 "유"이고 기가 흩어지면 "무"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는 단지 한 생에 한정되니 생이 다하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즉 "이치는 한 생에 한정되고 생이 다하면 더 이상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 P287

육체는 정신의 바탕(質 : 형질)이고, 정신은 육체의 작용(用)이다.…………정신과 형질의 관계는 마치 예리함(利 : 잘 베는 능력)과 칼날(刀)의 관계와 같다.
육체와 정신의) 작용의 관계는 마치 칼날과 예리함의 관계와 같다. 예리함이 곧 칼날은 아니고 칼날이 곧 예리함은 아니지만 예리함을 떠나 칼날은 존재하지 않고 칼날을 떠나 예리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칼날이 없는데 예리함이 존재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거늘, 어찌 육체가 소멸했는데 정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용납하겠는가?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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