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이전과 당시의 종교 철학사상

화와 동의 차이가 인상적이다.

황제, 전욱, 제곡 - 요, 순, 우, 탕, 직 - 문왕, 무왕

당시 사람들은 미신은 있었으나 지식은 없었고, 종교는 있었으나 철학은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믿은 내용은 바로 그리스 인이 믿었던 종교와 같고, 그들이 믿은 신들은 바로 그리스 인의 신들과 같았다. 하(夏), 상(商) 이후에는 "천(天: 하늘)"과 "제( : 하느님)"의 관념이 생겼고 일신론이 점차 세력을 얻는 듯했지만, 다신론이 결코 소멸하지는
않았다. - P49

신령과 인민을 병칭했은즉, 집정자의 최대 책무는 "백신을 편안하게 하고, 만민을 화평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지 못하면 "신령이 노하고 인민이 배반하여" 장구할 수 없었다. 주나라 양왕이 또 하느님(上帝)과 백신을 병칭했은즉, 하느님은 백신의하나가 아니었다. 내사 과는 신 지방에 강림했다는 어떤 신령을 단주의 신령으로 여겼은즉, 적어도 신령의 일부는 바로 인귀(人鬼)였다. - P52

고대인은 대체로 우주간 사물들을 인간사와 상호 영향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고대인은 이른바 술수(術數:OccultArts)의 법, 즉 각종 술법으로써 우주간에 사람의 주의를 끌 만한 현상들을 관찰하여, 인간의 화복을 예측했다. - P53

사조, 비조, 자신, 신수, 장홍, 사묵 등은 모두 자연현상 또는 그밖의 "하늘의 이치(天之道)"를 바탕으로 인간사(人事)를 예측했다. 그들이 사용한 술수는 명백히 "천문"인 것도 있고, "역보"와 "오행"이 뒤섞인 듯한 것도 있다. 요컨대 이른바 "천문", "역보", "오행" 등은 모두 "천인지제(天人之際 : 하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것으로서, "천도(天道)"와 인간사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후의 소위 음양오행가는 이런 사상읗 부여한 것으로서, 중국철학사상 심대한 세력을 떨쳤다. - P60

대체로 하느님은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권위자로서, 여러 관직을 설치해두고 있다. 여러 신령들은 그 지위나 권위가 하느님에 미치지 못하므로 복종했다. 이것은 곧 중국의 일반 평민의 종교적신앙인데, 옛날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 P61

춘추시대에 이르러 점차 각종 제도에 인본주의적(Humanistic) 해석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나타나, 각종 제도는 모두 인간이 설치한 것이며 또 인간을 위해서 설치되었다고 생각했다. - P65

무릇 화합(和)은 실제로 사물을 산생하지만, 같은 것(同)끼리라면 아무것도산생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에다 다른 것을 조합하는 것이 화합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풍성한 성장이 가능하며 만물이 산생합니다. 만일 같은 것에다 같은것을 보태는 경우라면 둘 다 못 쓰게 되고 맙니다. - P66

임금이 예악을 사용하는 이유는 "백관이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기율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 P70

예악과 형벌의 효용은 백성이 ‘혼란’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고, 기원은 바로 천지를 모방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 P72

제사의 기능은 "인민을 굳건히 단속하는" 데에 있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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