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은 민중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았다면 ‘33인 사건‘에 그쳤을 것이다. ‘부화뇌동‘ 이란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으로, 당시 식민권력이 만세 부른 민중과 삼일운동을 깎아내리기위해 종종 썼던 말이다. 뒤집어 보면 부화뇌동‘은 공감하고 연대할 줄아는 민중의 능력을 의미하며,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삼일운동은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감하고 연대했던 민중이 주인공인 삼일운동의 역사를 써보자, 애초 이 책의 의도였다.‘ - P6

삼일운동의 주인공으로 볼 때 이런 질문이 살아난다. 민중이 ‘독립‘을 통해 바라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저항 엘리트는 그 바람을 ‘민족‘이나 ‘혁명‘에 담고자 했으며, 어느 쪽이든 그 그릇은 공화정이었다. 매년 3월 1일이 돌아오면 우리는 공화정이 오래되었음을 자랑한다. 그런데 공화정은 민중의 바람을 제대로 담아냈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어디까지나 엘리트 편향을 넘어서자는 것이지 반反엘리트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엘리트가 자기 이해관계에 갇히면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이 점은 조선왕조의 말로가 잘 보여준다. 엘리트야말로 엘리트 편향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바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욱이민중은 자주 엘리트를 매개로 능동성을 발휘하니, 엘리트는 중요하다. - P8

최재형의 갈등과 선택을 곱씹어볼 때마다 이주사 전문가 디르크 회르,
더(Dirk Hoerder)의 글이 생각난다. "도착지의 이주민들도 언어, 음식, 습관 그 밖의 일상적인 행위는 태생지 관례를 따랐지만, 황제 숭배, 계급적 위계, 그리고 여성일 경우에는 성별 위계에 대한 태생지 관례는 폐기처분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문화적 친근감을 드러내고, 용납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냈다. 그들이 태생지에서 가져온 것은 국가 정체성이 아닌 문화적 경험과 ‘본국’에서는 실현 불가능했던 인생의 목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후 활동을 보건대 최재형에겐 회르더가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 정체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국가가 여전히 신분제가 작동하는 나라는 아니었다. - P18

이주는 근대국가를 만들기도 하지만 의심하게도 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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