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사이코 테라피스트의 심리여행
권문수 지음 / 글항아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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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는 분들마다 내가 웃는 상이라고 해줬다. 하지만 그건 날 몰라서 하는 소리다. 위장된 가면일 뿐, 속은 울상이다. 겉으론 걱정 따윈 내 알바 아니라는 듯 헤프게 웃고 있지만 속사정은 나도 헤아려 주기가 버겁다. 여럿이 있을 땐 코빼기도 비추지 않지만 혼자 있을 땐 숭한 것들이 마구 뛰쳐나온다. 무의식의 속된 것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할 때, 많이 무서워했다. 옛날에는 괴리감에 죄책감, 우울증까지 찾아왔었다. 속된 것들은 지금도 기회만 닿으면 뛰쳐나온다. 하지만 이젠 그것을 보듬는 방법을 알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실수하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하면 그는 분열성 성격자임을 의심해 봐야 된다. 희노애락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 순환 같은 거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노련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됐을 뿐, 희노애락은 죽을 때까지 순환한다. 그리고 평생을 외로워하게끔 되어있다. 절대자도 극복하지 못할 외로움을 인간이 극복할리 만무하다.

이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들춰봤는지 모른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정신과 전문의 수가 현장에서 만난 정신과 전문의보다 많다. 심리학자가 저술한 책까지 포함하면 참으로 많이 읽었다. 범죄 심리에서부터 심리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쓴 그저 그런 책까지 읽었었다. 종교가 없는 통에 위로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책이었다. 위로를 받던가, 억지 합리화가 필요 할 때도 책을 잡았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의 안젤라가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듯이 말이다.

최근에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 읽었다. 책을 덮자마자 좋은 책이라고 침 튀기고 다녔다. 저자는 임상심리학자 대니얼 고틀립이었다. 책의 추천사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이런 글을 써줬었다. “외과의사의 치료도구가 수술용 메스라면 정신과의사의 치료도구는 자기 인격이다.”라고. 오늘 좋은 인격자한 분을 뵈었다. 의사는 아니지만 확실한 치료도구를 가지고 있던 분, 정신건강 테라피스트 권문수씨다. 이 책을 극찬하기에 앞서 미국이 테라피스트에 대해 소개 좀 해야겠다. 미국은 정신과 치료에 있어, 정신과 의사와 테라피스트가 따로 있다. 이들 간에 업무분담은 철저히 다르고 영화에서 보게 되는 정신과 전문의의 긴 상담은 테라피스트 역이란다. 의사는 약 처방만 해도 바쁘단다. 고로 자신이 환자와 직접 대면을 하는데 이 것이 책 내용의 주다. 끝나는 장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가설명이 있는데, 이해가 잘 되도록 쉽게 씌어 있다.

책에는 온통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뿐이었는데 들으면서 많이 위로 받았다. 저자가 자신의 실수도 고백하고, 환자들을 위해 힘쓰고 속상해 했던 이야기를 글로 잘 썼다. 다 읽고 나니, 테라피스트란 직업이 어렵지만 보람도 크겠구나 싶었다. 나도 그 바닥으로 옮겨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그러나 현실은 마뜩치가 않다. 이러니 또다시 책을 펼칠 수밖에.

책에선 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으로 바꿔놓는 것을 정신분석학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환자의 트라우마를 직면시키고, 행동안정을 위해서 많은 것을 한다. 첫째는 경청이고, 둘째는 전공을 통해 배운 진단과 행동수정 도구였고, 마지막은 저자의 넉넉하고 겸손한 자세였다. 권문수씨는 상대의 마음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 책이 기대된다. 웃을 일도 없는데 웃고는 있는 웃기는 애독자는 오늘도 기다린다.


ps. 정신과 전문의인 프랑수아 를로르의 <정신과 의사의 콩트>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을 듯 하다. <정신과 의사의 콩트>는 임상적 내용이 많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는 성격장애 쪽의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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