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없다. 누군가는 내가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뜻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일을 위해 온 것도 아니고 유람은 더더욱 아닌. 그저 잠시 집을 떠난 상태가 되버렸다. 지금 있는 곳은 직장 다닐 때 신세를 졌던 고모댁. 모두 나가고 혼자, 아니 여기 할머님도 계시다. 할머님은 방에 계시고, 금동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있다. 몇 일을 계속 자고, 차려주는 밥 먹고, 세수도 안하고 뒹굴 거리고 있다. 딱히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묻는다면 그저 내가 속한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는 것.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몇 통의 전화로 안부를 묻고 택배 아저씨는 택배를 잘 넣어두었다고 감사하게 연락을 주셨다. 몇 일,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들,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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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8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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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재적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숨기고 있는 추악함의 끝은 어디일까? 약간의 위선과 가식, 남을 해했을 때 갖는 양심의 가책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도의 분노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실제에서 보다는 소설에서나 영화에도 만나게 된다. 이런 파격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 다시 화제다. 박찬욱 감독이 최고의 영화라고 자신하는 <박쥐>의 모티브를 얻은 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에밀 졸라는 150여년 전에 이 소설을 썼다. 당시에도 논란의 대상이었겠지만 지금도 불편함을 주는 소설이 분명하다. 제목으로 쓰인 테레즈 라캥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유약한 아들 카미유를 언제나 보호해야만 했던 라캥은 자신에게 맡겨진 조카 테레즈를 며느리로 삼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촌과 결혼을 한 테레즈는 파리 뒷골목 잡화상에서 무기력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의 친구 로랑은 욕정이 싹튼다. 마음을 확인한 둘의 은밀한 욕망은불타오르고 완전한 사랑을 얻기 위해 카미유를 살인하기에 이른다. 카미유의 시체를 확인하는 로랑의 완벽함에 소름이 돋는다.
 
 테레즈는 슬픔에 빠진 미망인으로, 아들을 잃은 라캥을 위로하는 로랑의 연기는 놀라웠다. 자연스럽게 둘의 결혼을 이끌어 내고 드디어 맞이하는 첫 날밤. 욕망은 사라지고 사랑을 나눴던 자리에서 카미유의 영혼을 느낀다. 두렵고도 끔찍한 밤, 사랑도 욕망도 사라진 공포와 불면의 날들이 이어진다.  집 안 어디서나 카미유을 보게 되고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모두에게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연극하는 그들은  점점 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와 진다. 사랑했기에 완전한 행복을 원했기에 살인까지 감행한 그들에게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에밀 졸라는 테레즈와 로랑의 피폐해지는 서로의 육체와 영혼이 파괴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끔찍하게 서술한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육체적 고통을 가하면서까지 죄책감을 벗어내려 하는 그들. 삶은 이미 사라졌고 서로를 죽이려 결심하고 결국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사이좋게 독을 나눠마신다. 광기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죽음뿐인가?  인간이 가진 양면성. 테레즈의 삶을 내가 산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인간은 누구나 거짓된 가면을 하나씩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기를 모면하게 위해, 풍족된 삶을 위해,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 상대의 가면 속 진실을 파헤지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며 살아가는 인간들. 에밀 졸라는 테레즈와 로랑을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동물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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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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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이름에 앞서 많은 이들은 아마도『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기억할 것이다. 서른을 멀리 바라보았던 시절, 나는 그 시집을 서른에 가까이 있었던 큰 언니에게 선물했었다. 그리고 서른을 만났을 때도 서른이 지났을 때고 그 시집을 정독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하게 서른이라는 단어 어디에서든 시인, 최영미를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인은 대단한 시집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서른을 오래전에 지나왔고 마흔을 넘어 멀리 삶이라는 그곳을 향하는 우리네 모습과 닮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경험할 삶을 만나지 않을까 했다. 그랬기에 이 시(중년의 기쁨)를 만났을 때 반갑기도 했고 우울하기도 했다. 

화장실을 나오면 나는 웃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시작됐어!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
가까이 코를 갖다댄다

그렇게 학대했는데도
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p 17 <중년의 기쁨 전문>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를 살고 있는 내게 젊음이라는 단어는 때로 생경하다. 그러나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이름은 젊음이라는 말과 상통하기도 한다. 그네들에게 나는 젊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은 나이인 것.  나의 육체에 비해 나의 정신은 너무도 빨리 가고 있는게 아닌지. 이 시를 만나면서 젊다고 자위한다.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시가 많다. (언제 시를 쓰세요?/- 내가 시인임을 잊었을 때/어디서 시를 쓰세요?/-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 일부) 시인이기에 이런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이제 질문은 그만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시다. 하릴없이 집 안을 서성이는 시인을 그리게 하는 (수도꼭지를/ 올렸다/내리고/ 또 올렸다/ 내리고, - 온종일 집에서의 일부),시를 쓰는 딸을 둔 어머니에 대한 애정(아픈 아이들의 서툰 숟가락질을 시중들며/ 조각상처럼 꿋꿋하게 칠십 년/ 밥상을 지킨 당신. - 한여름, 부엌에서 일부) 시인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 자리 잡은 조카와의 일상을 담은(이모! 언제 우리집에 올 꺼야?/언제 가면 좋겠니?/ 수요일에 와, 알았지?/수요일 언제?/잠깐만, 그건 나중에 정해 - 행복 의 일부) 시를 읽으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밝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p 16 어느새 전문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감정도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그러워진다고 믿고 살았다. 그것은 부질없는 욕망을 줄일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느라 바빠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커녕 감정초자 돌아볼 여유가 내겐 없었다. 가만 돌아보면 미움만이 자리잡은게 아닐까 싶어 두렵기도 하다. 삶은 때때로 나의 영혼을 짓누를 때, 육체뿐아니라 몸까지 연약한 나는 그저 허탈감과 우울감에 허덕인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을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렵혀진 입술을 닦기 위해

젊은 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질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듣지 않는 컴푸터에 복수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으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p112~113 나는 시를 쓴다 전문

 시인은 내 가슴속에 남은 불씨들을 지펴, 혹은 서늘한 얼음덩이를 녹여 문자를 복원하며 나는 다시 시인이 되었다. 라고 말한다. 도착하지 않은 삶, 열심히 살아내야 할 삶을 위해 시인은 시를 쓰고 힘겨운 삶에 지친 우리는 그 시를 읽는다. 그리하여 삶에 위안을 얻고 그 어딘가 도착점을 향해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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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문장
김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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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진의 소설은 섬뜩했다. 몇 번의 멈춤을 갖게 했고 숨을 고르게 했다. 그러나 신선했다. 어디서 이런 놀랍고도 실험적인 소재를 얻었을까 궁금했다. 첫번째 희생자는 세 명의 여자아이였다.  단편 늑대의 문장의 시작이며 이 소설집을 시작하는 문장은 이 소설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편혜영의 『사육장쪽으로』,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를 떠올렸다. 조금은 엽기적이며 조금은 끔찍한 일상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김유진은 조금 강한 바람이 아닌 폭풍 그 자체였다. 맞다, 폭풍이었다.

 표제작 「늑대의 문장」은 이유도 없이 폭사(爆死)가 발생한 작은 섬 마을의 이야기다. 소녀는 사방에 둘러싼 죽음을 마주하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존재감 없는 이모와 극악스런 엄마. 전염병처럼 번지는 죽음. 무엇으로 인해 폭발이 시작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이 가득한 섬은 자연스레 고립되고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폭사의 원인을 들개에게로 돌렸다. 자신들이 돌보았던 개들이 생명을 위험하는 늑대로 전락되고 말았다.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엄마는 극도로 난폭해졌고 개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말리는 이모는 폭발했지만 죽지 않았다. 섬은 늑대와의 전생을 선포한 듯 하다. 잔인하고 엽기적인 단어가 갖는 그 이상으로 끔찍스러운 소설이다. 폭사로 난자당한 시체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 안에서 김유진은 놀랍도록 조용하고 차분한 이모를 그려냈다. 

 <이모의 방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사면에 커튼이 쳐져 있는 방 안에는 가기 다른 천들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미로 같은 천들을 다 걷어내고 나면 한쪽 구석에 바느질을 위한 작은 공간이 나왔다. 바느질은 전적으로 이모의 손으로 이뤄졌다. 재봉틀도 없었다. 수많은 바늘들, 두껍고 얇고 밝고 어두운 천들이 방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모는 그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실을 뽑아내었다. >p 19

 이제 「마녀」를 볼까. 엄마의 발목이 돌아왔다. 로 시작된다. 발목이 돌아오다니 이 소설은 또 얼마나 괴기스러울까. 나무를 돌보고 버섯을 타며 산다. 돌풍이 작은 마을에 온전한 집은 화자의 집뿐이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집을 지탱해주는 이유로 나와 아버지를 나무를 돌본다.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지만 외로워하던 엄마는 자살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엄마를 닮고 싶었지만 화자인 나는 짧은 목과 넓은 어깨를 가졌다. 몸 대신 검은 곱슬머리만 자라는 동생은 엄마의 아름다움과 우울함까지 닮았다. 나는 끊임없이 악몽을 꾸고 매일 기록한다. 환상처럼 사라진 것들을 보는 동생은 돌풍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발목으로 돌아온 엄마, 풍파에 찌든 노인같은 모습의 나, 긴 머리의 허약한 동생 중 진짜 마녀는 누구일까?

「목소리」는 지극히 몽환적이다. 늑대의 문장처럼 여기에도 죽음이 있다. 늑대 대신 이번엔 물이다. 마을과는 격리된 삶을 사는 듯한 소녀와 언니. 오래된 간장과 밥을 먹고 산다.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본 이야기를, 백발은 가진 언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짜 그들은 마녀, 마귀같다.  ‘등’을 만드는 남자가 저수지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별로 간 것이라고 믿는 언니는 서서히 입덧을 한다. 어느 날 폭우가 내리고 집들은 물 속으로 잠기지만 언니와 나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단편 마녀에서와 마찬가지로.

  세 편외에 다른 소설들, 지진이 나던 날 태어난 괴기한 형상( 붉은 한 팔을 가졌고, 겨드랑이와 팔 안쪽에 수포가 퍼진)아이의 이야기 「움」, 길을 잃고 골목을 헤매다 잔반 수거를 하며 사는 노인과 아들과 함께 살게 된 아이의 눈에 비친 골목을 그린 「골목의 아이」 등 나머지 소설도 모두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정도를 너머 고통스럽고 낯설다.

 소설책이 나온다고 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작가 김유진의 미소는 아마도 책날개의 그것보다 더 밝았을 것이다. 이처럼 유쾌한 미소를 가진 작가가 어쩜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가득한 소설을 섰을까? 그 답을 다음 소설집에서 만날 수 있을 꺼란 기대를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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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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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엔 규격된 형식이 없다. 작가만이 갖는 고유한 작업 형태로 이뤄진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대부분 비슷한 구조이기에 익숙치 않은 형식의 소설에 독자가 당혹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용문구를 사용하지 않고 쉼표와 마침표가 주를 이루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 읽어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럼에도 몇 번의 경험은 그것이 그만의 형식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여기 또 난해한 작가를 만났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에 대해 독특하고 놀라운 글을 쓰는 작가라고 접했지만 직접 만나보니 실험정신이 정말 대단하다.

 저자는 주인공을 자신의 이름과 동명인 조너선으로 내세운다. 작가가 할아버지를 학살에서 구해준 여인을 찾으러 우크라이나로 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조너선이 찾으려는 사람은 트라킴브로드라는 마을에 살았던 오거스틴. 그의 가이드는 알렉스와 알렉스 할아버지가 맡았다. 소설은 그저 평범한 여행기처럼 보이지만 대단한 비밀이 숨겨졌다. 소설은 독특하게 전개 된다. 주인공 조너선을 가이드한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 알렉스가 재구성한 이야기, 할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한다. 거대한 역사 속 전쟁을 만나기도 하고, 미국을 꿈꾸는 청년 알렉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기도 한다.

 제 2차 세계 대전시 잔혹하게 유대인을 학살했던 트라킴브로드. 그러나 아무도 그곳을 알지 못한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고통으로 존재한다. 이미 전쟁은 끝이 났다고 말하지만 역사 속 전쟁은 여전하게 살아있다. 조너선를 존재하게 한 할아버지를 통해 이어지고, 왜곡된 역사적 기록과 폭력성은 때로 문학을 통해 진실이 된다. 

 저자는 타임머신을 탄 듯 독자를 시간 여행으로 이끈다. 트라킴브로드라는 마을이 탄생된 1790년대를 시작으로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환상적이고 기막힌 역사 탐험. 유대인인 조너선과 우크라이나인인 알렉스는 역사 속 한 지점을 향해 떠나는 여행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그들이 향한 그 곳은 아픔을 간직한 곳이었다. 결국 그 곳에서 만나는 진실은 살아남기 위해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친구를 고발했다는 것이다. 

 “항상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 “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p406, p 407

 알렉스 할아버지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알렉스에게 한 말. 과연 역사속에서 진실을 말한 이는 얼마나 되며, 또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 소설은 때론 지극히 유머러스했고 때론 지극히 슬펐으며 때론 정말 난해했다. 이토록 어지러운 소설을 쓴 작가는 전쟁이 남긴 치명적인 상처를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운명이며 운명의 연속은 역사일까.

 오래된 낡은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나는 왜 소설가 김연수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김연수의 두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속에 전쟁과 역사라는 공통 주제가 있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소설을 통해 무엇을 봐야 할지. 역사와 진실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제목처럼 모든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석역치 않은 마음은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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