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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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이름에 앞서 많은 이들은 아마도『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기억할 것이다. 서른을 멀리 바라보았던 시절, 나는 그 시집을 서른에 가까이 있었던 큰 언니에게 선물했었다. 그리고 서른을 만났을 때도 서른이 지났을 때고 그 시집을 정독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하게 서른이라는 단어 어디에서든 시인, 최영미를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인은 대단한 시집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서른을 오래전에 지나왔고 마흔을 넘어 멀리 삶이라는 그곳을 향하는 우리네 모습과 닮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경험할 삶을 만나지 않을까 했다. 그랬기에 이 시(중년의 기쁨)를 만났을 때 반갑기도 했고 우울하기도 했다. 

화장실을 나오면 나는 웃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시작됐어!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
가까이 코를 갖다댄다

그렇게 학대했는데도
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p 17 <중년의 기쁨 전문>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를 살고 있는 내게 젊음이라는 단어는 때로 생경하다. 그러나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이름은 젊음이라는 말과 상통하기도 한다. 그네들에게 나는 젊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은 나이인 것.  나의 육체에 비해 나의 정신은 너무도 빨리 가고 있는게 아닌지. 이 시를 만나면서 젊다고 자위한다.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시가 많다. (언제 시를 쓰세요?/- 내가 시인임을 잊었을 때/어디서 시를 쓰세요?/-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 일부) 시인이기에 이런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이제 질문은 그만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시다. 하릴없이 집 안을 서성이는 시인을 그리게 하는 (수도꼭지를/ 올렸다/내리고/ 또 올렸다/ 내리고, - 온종일 집에서의 일부),시를 쓰는 딸을 둔 어머니에 대한 애정(아픈 아이들의 서툰 숟가락질을 시중들며/ 조각상처럼 꿋꿋하게 칠십 년/ 밥상을 지킨 당신. - 한여름, 부엌에서 일부) 시인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 자리 잡은 조카와의 일상을 담은(이모! 언제 우리집에 올 꺼야?/언제 가면 좋겠니?/ 수요일에 와, 알았지?/수요일 언제?/잠깐만, 그건 나중에 정해 - 행복 의 일부) 시를 읽으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밝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p 16 어느새 전문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감정도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그러워진다고 믿고 살았다. 그것은 부질없는 욕망을 줄일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느라 바빠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커녕 감정초자 돌아볼 여유가 내겐 없었다. 가만 돌아보면 미움만이 자리잡은게 아닐까 싶어 두렵기도 하다. 삶은 때때로 나의 영혼을 짓누를 때, 육체뿐아니라 몸까지 연약한 나는 그저 허탈감과 우울감에 허덕인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을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렵혀진 입술을 닦기 위해

젊은 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질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듣지 않는 컴푸터에 복수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으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p112~113 나는 시를 쓴다 전문

 시인은 내 가슴속에 남은 불씨들을 지펴, 혹은 서늘한 얼음덩이를 녹여 문자를 복원하며 나는 다시 시인이 되었다. 라고 말한다. 도착하지 않은 삶, 열심히 살아내야 할 삶을 위해 시인은 시를 쓰고 힘겨운 삶에 지친 우리는 그 시를 읽는다. 그리하여 삶에 위안을 얻고 그 어딘가 도착점을 향해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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