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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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이 책은 읽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도리스 레싱이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수많은 그녀의 책들 중에 런던스케치와 다섯째 아이를 두고 런던스케치를 먼저 클릭했더라면 이 책을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빽빽하게 인쇄된 작은 책은 내게 또 다른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행복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 걸까? 보여지는 외면의 행복이 아닌 내면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보여지는 모습만이라도 행복의 범주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자 많은 사람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까?  서로가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림처럼 살고 싶은 욕망 속에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게 되고 사랑의 결실이라는 아이를 낳게 된다. 부모에게 있어 아이는 자신의 분신임과 동시에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결혼과 동시에 주어지는 새로운 책임과 의무는 때로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가져오게 되고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인생과 직면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임에 분명하지만 지금 그 공동체 속에는 공동의식이라는 것은 얼마나 강하게 서로를 연결하고 있을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한 곳을 바라보며 그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했으며 그들의 삶의 목적 역시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는 것이었다. 준비되어진 행복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닌 실체는 어떠했을까?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여겼지만 모두가 타인을 의식한 행복이라는 허울이었을까? 인간의 내면에는 어떤 욕망이 있는 걸까? 커다란 집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부를 누리고 싶은 솔직한 욕망이 아니었을까. 스스로가 가꾸어 나가는 가정이 아니기에 알게 모르게 그 커다란 집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균열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계기는 네 명의 아이들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다섯째 아이의 출생과 함께 온다.

어쩜 평범한 가족의 한 형태 일수 있다. 친정엄마의 도움과 부를 가진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멋진 피크닉을 즐기고 자신들의 거대한 집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안에서 웃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 다섯째 아이는 한 가정을 파괴하는 괴물이었을까? 다섯째 아이와 함께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여겼기에 하나 하나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며 그 커다란 집을 떠나고 다섯째 아이 또한 그 나름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커다란 집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사회로 불리는 가정이라는 집단 속에서 혈연이라는 특수적인 집단의 구성원인 아이들과 부부를 통해서 나는 커다란 사회를 떠올린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해관계로 맺어지지 않으면 방관하고 싶어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다섯째 아이를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특별한 아이를 만날꺼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어려운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와 더불어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적 사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모습 인지 모른다)그대로 드러내는 인물들을 보면서 엄마인 해리엇의 내면을 만나면서 무기력해지는 그녀를 느끼면서 남편 데이비드를 통해 보여주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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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계단을 보라
윤대녕 지음 / 세계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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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작가,윤대녕. 최근작인 [제비를 기르다]에 호평을 들은지라 내심 그 책을 만나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나 언제나 그렇듯이 읽고 싶은 책은 계속 쏟아져 나오고 그 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우연히도 최근작이 아닌 그의 작품을 덜컥 사게 된 것은 8편의 소설 중에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이라는 단 하나의 단편 때문이었다. 목마름을 시험하려는 듯 목차도 맨 끝에 수록되어 있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그 사막까지 가는 도중 나는 또 다른 많은 사막들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윤대녕의 이 소설 집에는 끝없는 사막과 알 수 없는 공허감과 잡히지 않는 형체를 알 수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과 갈등하고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찾으려 헤메이는 길 잃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배암에 물린 자국 산책길에 아무런 준비없이 만난 뱀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뱀이 아님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뱀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다. 겨울 동면에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데 주인공은 아직도 그 뱀을 찾아다닌다. 이 소설 속에서 남겨진 것은 분명 자국일 것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 만든 자국임을 언젠가는 주인공도 알게 되리라. 어떤 것이든 지나가면 잊어버려야 함을 알지만 그 상흔 속에서 자꾸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기에 그런 것일까? 주인공이 찾는 단순한 뱀일까?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맥락의 소설은 표제작인 남쪽 계단을 보라 에서도 보여진다. 어느 순간 나의 시간이 나를 제외한 타인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느낌. 그들과 동떨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을 경험했다면 조금은 쉬운 소설이 되리라.  

무척 재미있게 만나지는 소설은 신라의 푸른 길과 자나가는 자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이  두 소설 속에도 발화하지 못하고 스스로 꺼져버리는 내면의 소리가 있다. 우연하게 경주를 향하는 버스에 동승한 남녀의 대화는 헌화가를 논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로가 헌화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더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속 욕망을 자제하는 글의 묘미가 탁월하다. 그에 반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나 가는 자의 초상 속의 인물들은 무척이다 답답하게만 보이지만 삶이란 아무리 낮게 엎드려 있어도 때로 조사관처럼 어떤 응답을 요구해 오게 마련인가 보다. 99쪽  이 문장 하나로 그 답이 될 듯하다. 

가족사진첩과 새무덤 또한 부재자의 강한 존재를 느낄 수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는 아들과 어머니,이제 그 자리에 아내가 함께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것도 두 소설에서는 아버지의 부재와 존재에 상관없이 그들과 화해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랑도 삶처럼 하나의 신성한 노동이란 걸 알게 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자신들과 화해하게 되겠지.109쪽 기억 속에 있는 기존의 아버지가 아닌 새로이 맞이하는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원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그 길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다다랐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라는 소설엔 메마른 도시가 있다. 그 안에 사막도 있다. 매일 매일 만나는 이 곳이 사막의 거리가 된다는 느낌이다. 미로같은 골목길을 지나 만나는 세상,그것이 사막일 것이다.그러나 그 안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은 사막을 만나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리라. 안개속을 걸어가는 듯한 모호함으로 그 길을 헤치니 이제 그 끝에 도착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만난 것이다. 사막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것인가? 자문하지만 그건 아니다. 사막의 선인장이 아닌 백합을 결합시킨 것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 황량한 사막에 피아노를 접목시킨 것이 나의 목마름의 가장 큰 원인이리라. 사막을 향해 가는 주인공은 어릴 적 사막을 꿈꾸던 친구를 기억한다. 시인이 되어 죽음을 앞 둔 그와 함께 사막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끝에서 그가 치던 피아노 연주를 울리게 하고 싶었던 걸까? 잃어버린 그 시절을 돌아보고 싶었던 건가?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옷을 한 겹 한 겹 조심스레 벗겨내는 숨막히는  작가의 시선이 있다. 그의 글속에 서성임이 느껴진다. 그 서성임을 과연 무엇일까? 너에게 가고 싶은 서성임이었을까? 사막으로 가로막힌 너에게로 향하고 싶은 소망이었을까?
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행하게 지속되어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수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로 서로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256쪽 
작가가 발생이라고 표현한 사막,나와의 많은 관계 속에서 어쩜 지금 어느 누군가와 사이에는 사막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러나 사막을 건너온 백합이 깊게 뿌리를 내려 새로이 꽃을 피울꺼 라는 소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무척이라 길게 그리고 어렵게 다다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만나고 나니 사막의 모래바람을 지나 오아시스처럼 자리잡은 나만의 백합을 만나고 싶은 바람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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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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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라는 소설로 이름만 들어본 천명관의 소설집이다. 전작을 읽지 못했기에 그의 글에 대한 극찬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거들지 못한 채 이 책을 일게 되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의 책 표지가 이 책의 내용과 딱 맞춤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 11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게는 유쾌한 하녀 마리사,세일링,자동자 없는 인생,비행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 마리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작가를 남편으로 둔 아내가 자신의 동생과 불륜을 일으킨 남편에서 보내는 편지로 쓰여진 단편이다. 편지에는 자신이 독을 든 와인을 마시고 자살을 할 꺼라고 쓰여있지만 정작 독이 든 와인을 마신 사람은 남편이다. 은근하게 통쾌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뒷 처리는 언제나 유쾌한 하녀 마리사 몫이다. 읽는 내내 그 뒷 내용이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세일링 : 단란해보이는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성묘 길은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다. 남편의 운전을 질타하는 아내의 평범해 보이는 한 마디가 공동묘지에서 시아버지 묘소에 놓은 꽃을  아무것이나 사라는 말로 이어진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자신에게 등을 돌린 남동생과 화해하고 싶은 나는 [행복해지길 원하기보다는 단지 불행해지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74쪽] 이제는 그 적절한 때를 찾을 수 없다. 아내와의 관계도 그러하고 세상으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러하다.  나는 어떤 나이에 속하는 것일까?
우리는 점점 불행해지는 게 두려운 나이를 경험하게 되는게 아닐까?

자동차 없는 인생 : 무언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물론 예정되어 있던 과정이었다 해도 그 허무함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남들처럼 결혼하고 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니 자신의 차도 자신의 저금통속 동전도 점점 사라진다. 잡힐 듯 하면서도 멀어지는 것들을 살다보면 많이 경험한다.

비행기 : 무척 재미있게 술술 읽혀졌다. 주인공인 드라마 작가와 그의 주변인물들에 관한 그저 평범한 일상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안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증오하고 소유 하려하고 배려하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사랑하지만 서로 이혼을 하게 되는 남과 여, 삶과 드라마 속에서 착각하기도 하는 사람. 가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처럼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생각에 즐거운 소설이었다.

[프랭크와 나,프랑스 혁멍사 - 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 더 멋진 인생을 위해 - 마티에게 ]라는 네 편의 소설에는 배경을 외국에 두고 있기도 해서 마치 한국작가가 아닌 외국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번뜩이는 재치와 기막힌 웃음이 있어 즐거운 소설들이었다.

[농장의 일요일, 13홀,숟가락아,구부러져라,二十歲]에는 모호함과 주가 되는 느낌이 있었다. 이거다 하고 고집에 줄 수 없는 느낌이 가득했다. 상대와의 소통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없는 혼잣말같은 소설이라고 할까?

사실,나는 이 책에 대해 기대를 무척 많이 했다. 그래서 일까? 실망도 많이 안겨다 준 책이었다. 작가는 무척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글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소설 속 소재에 등장하는 외국이름과 지명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그렇지만 아직 소설을 통해서 완전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려면 조금은 더 작가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작가가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많은 신인.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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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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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세상은 온통 전자공학과 이공계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문학이나 문과 계열은 사장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이과를 지원해야만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시간부터 취직이라는 커다란 관문이 나를 숨막히게 한 것은 엄마의 고집을 뒤로 하고 외지로 학교를 나왔기때문이다. 고교 2학년이 되어서 적성이 크게 반영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주저없이 이과를 택했다. 그것은 어쩜 불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그 후로 가끔 늘어놓게 된다. 나는 수학을 잘 못했다. 본격적인 수학을 배울때 수학의 정석을 껴안고 잠을 자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에는 졸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수학에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음에도 나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과는 수학과 뗄레야 뗄수 없는 학과가 되어버렸다. 그 부터 사람들은 나를 수학으로 연결하여 기억하기도 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사랑한 수식은 거창한 공식이 아닌 인수분해이다. 중학교 3학년에 배운 인수분해,수학선생님은 인수분해를 설명하시며 비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거라 했었다. 그 시간에 배운 수식은 무척 재미있었고 그 시간도 즐거운 시간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 비오는 날은 우산을 보면 인수분해가 생각난다. 그렇게 수는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이 기회에 다시 확인하게 된다.

수라는 소재를 드러내기 위해서인지는 모르나 책 속에는 유려한 문장들이 가득한다. 그러기에 이 책이 더 빛을 내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꾸미지 않았으나 문장 하나 하나의 매끄러운 곡선들이 하나의 춤으로 태어나고 그림으로 그려진다.더불어 투명하고 맑기까지한 감동을 전해주어서 책을 읽고 손에서 놓고나서도 책을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은 아니 주변의 누구라도 꼭 껴안아줘야만 할 것만 같다. 사고로 인해 1975년이라는 과거의 시간에 살고 있는 이와는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메모를 가장 중요시여기는 박사. 8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주변 사람에게 다시 누구냐고 처음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박사를 아무런 편견없이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삼을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일꺼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책을 읽었기에 그 사람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박사와 그 집에서 일하게 되는 파출부와 그의 아들은 안정적인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면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아들에게 모든 수를 안전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수학 기호 루트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반복되어지는 일상 속에서 박사가 안내하는 수의 세계는 황홀함 그 자체로 그녀와 아들에게 다가온다. [광활한 수의 세계에서 고생고생 끝에 만나 서로를 꼭 껴안고 우애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32쪽]이처럼 수를 소재로 하고 박사가 말하는 수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의 삶을 말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은 우애수 처럼 서로에게 꼭 필요한 끈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수학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박사에게서 배우는 수는 루트에게는 애정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성장하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이었다.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수의 세계 속에서 존재하고만 있던 박사에게도 그녀와 아들은 처음 떠오르는 별이었고 달빛이었으며 아침 햇살이었다. 세상은 박사와 그녀와 아들에게 이상한 노인이라는 것과 미혼모와 그의 아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그렇게 인정하고 신뢰하고 우정을 쌓아갔다.

특별하지 않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면 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신뢰의 방법이리라. 박사가 기억하는 1975년식의 야구를 기억해주고 루트가 좋아하는 글러브를 선물하고 함께 추억을 만들면 그뿐이다.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51쪽 ] 이 멋진 말처럼 우리가 갈구하는 삶의 진리는 요란하게 소리내지 않아도 어느 한 순간에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잘 보이는 곳에 보물을 숨겨두어 모두 즐거워하는 보물찾기처럼 우리의 삶의 진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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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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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책을 읽었다. 책에서 분홍빛 봄내가 났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어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 그녀의 책에서는 봄이 보였다. 겨울이 꾸는 꿈이라는 봄, 무언가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한 봄말이다.깨지고 쓰러지고 화내고 울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서 나를 보았다. 사랑이라는 것에 울고 살아가는 도중에 쓰러지고 내동댕이 쳤었던 나의 영혼을 보게 되었다.지나간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의 조각 조각들이 그 곳에 함께 있었다. 정미경이라는 작가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둔탁하지 않은 목소리로 조근 조근한 어투로 말하는 그녀는 어떻게 감춰진 삶의 단면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까? 그러기에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6편의 단편 모두 하나의 그림의 퍼즐 조각들이다. 그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 나와 당신과 우리일까?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의 속내들이 하나씩 하나씩 담겨져 있다.

[나릿빛 사진의 추억] 헤어진 애인의 흔적을 발견하며 행복했던 날들의 회상을 지나 단 한 번의 통화로 현재의 현실은 크나큰 지진을 겪어내기도 한다. 사진작가였던 성민이 찍었던 옛 애인의 사진은 지진의 근원지가 된다. 그로 인해 다시 찾은 일상은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가게 된다.(존재의 의미를 재는 내 속의 저울 눈금을 조정하고 나자 찾아온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11쪽) 나를 버리고 나를 낮추고 그저 세상에 속하려 하는데 세상은 때로 강한 바람으로 저버리려 한다. 우리도 그러했던가?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고 찢어버리고 싶은 필름을 발견하게 되면 그저 아름답다 라고 지나갈 수 있는 지점에 살고 있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호텔 유로,1203] 한때 잘 나가게 쇼핑을 즐기던 쇼핑중독자인 나는 이혼을 하고 수 많은 결제 고지서만이 날아오는 한 가운데 남았는데도 아직 이 현실을 직시하기 싫어한다. 자신이 작성한 원고를 읽어대는 젊고 예쁜 탤런트에게 말할 수 없는 묘한 질투에 느끼며 내적 치장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껍데기일 수 있는 명품에 눈을 맞춘다. 과거의 나는 잘 나갔는데, 그 때의 사랑은 참으로 빛나기까지 했었는데.(사랑 속에는 사람들이 흔희 기대하는 따스함,열정,몰입,기쁨,까닭 없이 터뜨리는 웃음소리 같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눈부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빙산의 아랫 부분처럼 거짓과 권태와 배신과 차가움과 환멸조차 사랑의 일부분이란 걸 사람들은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리거나 한다. 55쪽 ) 사랑이라고 느끼고 사랑에 속한 감정들을 정의하는 듯한 이 글을 보면서 그 많은 단어들로 나열된 감정중에 내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어느 것일까? 내게 사랑으로 남겨진 것들은 무엇일까? 어떤 것도 정답이라는 단어 아래로 떠오르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과거만을 보기도 한다. 과거에 내가 꿈꾸던 오늘은 이런 날들이 아니었기에 그럴까?

[나의 피투성이 연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은 주기만 하는 사랑.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배신이랄까? 작가인 남편이 죽고 나서 그의 유작을 출판하자는 제의에 아내는 남편의 컴퓨터를 켜게 된다. 그 안에서 발견하는 남편의 짧은 글에는 또 다른 사랑이 있는 듯한 암시를 주는 문구가 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도 사라지기 전에 이런 글을 접한 아내는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상처를 스스로 만들게 되고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차마 나만의 일기라 하더라도 우연하게 읽게 되는 이는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삶은 이렇게 차갑고 날카롭게,파도처럼 끊임없이 맨 살에 부딪쳐 올  모양이다. 84쪽)  아픔이 예상되는 곳에 겹겹이 두꺼운 천으로 싸맨다해도 파고드는 상처는 엉뚱하게도 맨살이 드러난 곳에서 낭자하게 피를 토하고 있기 마련이다.우리가 만나는 상처들은 거의 다 그렇게 오는거 같다.(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내는 게  인간이더라.136쪽) 돌아가는 룰렛 게임에서 내가 원하고자 하는 곳을 맞힐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견뎌내게끔 그렇게 신은 인간을 만들어 놓은 걸까?

[성스러운 봄] 정말로 봄이라는 어감만으로도 세상을 깨울꺼 같은 성스러운 봄이 오기 전에 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부부는 빚과 스스로의 질책으로 하루 하루를 열게 된다. 이 성스러운 봄이라는 소설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병원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던 아이의 모습을 통한 비유로 쓰여지고 있는데 특히나 이 문장 (질문이란,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어딘가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걸 말하겠지요.153쪽)은 정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아이의 생명연장의 결정을 묻는 의사가 하는 이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생에서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과 수 없이 만나왔음을 경험해왔다.그러다가 또 답이 없을 것 같은 질문의 답을 찾기도 할 것이다.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단내음을 가진 답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황홀할 것인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말해질 수 있는 건 고통이 아니야.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참을 수 있다는 거야.165 쪽) 나는 길지 않은 병동생활에서 이런한 문장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음을..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을 미리 알아버렸기에 내 고통은 아프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것을. 나 역시도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비소 여인] 이 소설 중에서 굳이 낮은 점수를 주고자 한다면 이 소설이다. 윤도 나도 최군도 모두 혼자이다.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느낌을 가진 세 사람. 없어서는 안 될 물,밥, 공기 속에 스며드는 비소라는 독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람을 죽게 만드는데 세상을 죽이고 싶었던 윤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시작으로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한다. 버려진 느낌을 내게 소중한 이들을 버림으로 보상받으려 했을까?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자신은 분명 속할 수 없는 세계라고 단정지으면 바라보는 세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과 독단일 뿐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번잡스럽고 항상 시끄러운 곳에 잠시 발을 담갔다가 빼면 된다고 했지만 정작 마음의 발을 빼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마음에 그어놓은 선은 자꾸만 나를 보여주고 사랑을 주는 누군가에 의해 어느새 지워지고 만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외면하면서 살기도 한다. 그들의 웃음소리.그들의 말투.그들의 삶이 나를 비춰주는 삶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나 역시도 그들을 비추고 있기 때문일까? (존재란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것.누군가의 시선 속에서,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그런거 같아요. 243쪽) 우리는 때때로 부정하고 싶은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어떤 때는 그 관계를 끊지 못하는 내가 싫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사는 것이다. 언제 빛을 내고 사라졌는지 기억할 수 없는 별의 반짝임을 보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은 그 언젠가 내게 베픈 친절한 사람의 손길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리워하는 것과 같을까?

상현달에서 보름이 되고 다시 기울어져 하현달이 되어 달은 사라진 듯 보인다. 태양이 빛나는 지금도 달은 우리를 비추고 있다.나를 둘러싼 수 많은 타인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듯이. 그들이 내게 보내는 관심으로 내가 살듯이.
이 단편들을 읽는 중간 중간 나는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또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너무 힘들다고 떼를 쓰고 싶기도 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두 팔을 가진 이 책을 어루만지면서 나는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두 팔이 나를 안아주는 걸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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