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세상은 온통 전자공학과 이공계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인문학이나 문과 계열은 사장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이과를 지원해야만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시간부터 취직이라는 커다란 관문이 나를 숨막히게 한 것은 엄마의 고집을 뒤로 하고 외지로 학교를 나왔기때문이다. 고교 2학년이 되어서 적성이 크게 반영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주저없이 이과를 택했다. 그것은 어쩜 불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그 후로 가끔 늘어놓게 된다. 나는 수학을 잘 못했다. 본격적인 수학을 배울때 수학의 정석을 껴안고 잠을 자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에는 졸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수학에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음에도 나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과는 수학과 뗄레야 뗄수 없는 학과가 되어버렸다. 그 부터 사람들은 나를 수학으로 연결하여 기억하기도 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사랑한 수식은 거창한 공식이 아닌 인수분해이다. 중학교 3학년에 배운 인수분해,수학선생님은 인수분해를 설명하시며 비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거라 했었다. 그 시간에 배운 수식은 무척 재미있었고 그 시간도 즐거운 시간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 비오는 날은 우산을 보면 인수분해가 생각난다. 그렇게 수는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이 기회에 다시 확인하게 된다.

수라는 소재를 드러내기 위해서인지는 모르나 책 속에는 유려한 문장들이 가득한다. 그러기에 이 책이 더 빛을 내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꾸미지 않았으나 문장 하나 하나의 매끄러운 곡선들이 하나의 춤으로 태어나고 그림으로 그려진다.더불어 투명하고 맑기까지한 감동을 전해주어서 책을 읽고 손에서 놓고나서도 책을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은 아니 주변의 누구라도 꼭 껴안아줘야만 할 것만 같다. 사고로 인해 1975년이라는 과거의 시간에 살고 있는 이와는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메모를 가장 중요시여기는 박사. 8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주변 사람에게 다시 누구냐고 처음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박사를 아무런 편견없이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삼을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일꺼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책을 읽었기에 그 사람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박사와 그 집에서 일하게 되는 파출부와 그의 아들은 안정적인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면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아들에게 모든 수를 안전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수학 기호 루트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반복되어지는 일상 속에서 박사가 안내하는 수의 세계는 황홀함 그 자체로 그녀와 아들에게 다가온다. [광활한 수의 세계에서 고생고생 끝에 만나 서로를 꼭 껴안고 우애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32쪽]이처럼 수를 소재로 하고 박사가 말하는 수를 통해서 작가는 우리의 삶을 말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은 우애수 처럼 서로에게 꼭 필요한 끈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수학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박사에게서 배우는 수는 루트에게는 애정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성장하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이었다.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수의 세계 속에서 존재하고만 있던 박사에게도 그녀와 아들은 처음 떠오르는 별이었고 달빛이었으며 아침 햇살이었다. 세상은 박사와 그녀와 아들에게 이상한 노인이라는 것과 미혼모와 그의 아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그렇게 인정하고 신뢰하고 우정을 쌓아갔다.

특별하지 않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면 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신뢰의 방법이리라. 박사가 기억하는 1975년식의 야구를 기억해주고 루트가 좋아하는 글러브를 선물하고 함께 추억을 만들면 그뿐이다.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51쪽 ] 이 멋진 말처럼 우리가 갈구하는 삶의 진리는 요란하게 소리내지 않아도 어느 한 순간에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잘 보이는 곳에 보물을 숨겨두어 모두 즐거워하는 보물찾기처럼 우리의 삶의 진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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