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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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입춘과 우수가 지났다. 그러나 여전하게 봄의 문턱은 너무 멀리 있다. 유난히 눈이 잦았던 겨울, 내 입에선 눈이 지겹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게 지겨운 눈으로 기억될 이 겨울이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며, 마지막 겨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겨울이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신 계절인지,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작가 고 이석주의 마지막이 되버린 사진집,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글을 담았다. 그가 선택한 곳은 홋카이도를 택했다. 얼마 전에 같은 도시를 담은 책을 만났다. 그 책에서 홋카이도의 겨울을 만나는 일은 황홀했고 눈부셨다. 그리고 또 한 권으로 마주하는 홋카이도.  

 이 책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당신이 직접 읽지 못한다면, 그가 찍은 사진을 보지 못한다면 느끼지 못할 것이기에 주저한다. 슬픔이 자꾸 차올라서, 눈을 바라보는 내내, 눈이 시렸다.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그는 또  가슴으로 담은 풍경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소리 없는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을 말이다.     

 남겨진 사진과 함께한 글은 사진작가의 상실과 슬픔을 뜨겁게 안아준다. 실답고 고아한 사진들에 빛을 더한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잘 사진과 글은 서로에게 기댄다. 

 나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는 혀의 통역 
 숨겨두고 싶은 사랑을 드러내어 이야기했다 
 눈물이 비처럼 마구 쏟아질 때 
 말 못하는 혀 대신 
 심중을 털어놓은 것은 나의 눈동자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눈썹으로 말했던가 
 사랑하는 이에게 정열이 내키는 대로  
 서로 주고받는 눈길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소리 없는 말 얼마나 빠르고 실수 없는가 

 천일야화 13일째 밤 - 사랑 # 01   p.  83      

 정지한 사물들이 갑자기 소리를 내곤 했다 
 사물들의 영혼이 삐걱거리는 소리 
 다락으로 숨는 소리 

 가장 멀리 달아나고 싶어 
 가장 맑은 날에 
 가장 투명한 몸으로  
 나의 형식은 이토록 단정하고  
 나의 마음은 이토록 펄럭인다  

 오늘 밤이 아름다워, 세계는 고요하고 
 펄럭이는 영혼의 고백이 사랑스럽다 
 내 몸속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  너 혼자 올 수 있니 # 13  p. 238   

 당신이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던 것 
 당신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보여주지 못했던 것 
 당신이 껴안고 싶었는데 
 껴안지 못했던 것  

 그러나 나는 압니다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껴안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우리 영혼이 닿아 있어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그러니 걱정 말아요 - 자장가 # 18  p. 299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준 시인이 너무 고맙다. 시인은 그의 사진을 실은 책에 대해 일렇게 말한다. ‘나는 여기 실린 글과 사진의 대화를 상실의 고백이라 부르는 데 주저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책의 사진과 글을 만나서 이루는 결정체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눈들의 화술이라 불러주면 좋겠다.’ p.7 과연 그랬다. 그가 남긴 마지막은 진정 새로운 소망이었다. 너무도 슬픈 책이다. 그러나 고인이 된 사진작가는 누군가가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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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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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인간’이란 상자 속에서 사는 사람을 뜻한다. 걸인이나, 부랑자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집이 아닌, 상자를 뒤집어 쓰고 밖을 볼 수 있는 시야만을 확보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을 주의 깊게 지켜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정말 상자인간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자발적으로 상자인간으로 살고자 한 사람이 있다. 소설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전직 카메라맨이었던 화자인 나가 왜 자청해서 상자인간이 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왜 『상자인간』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인 아베 고보에게 묻는 것과 같다.   

 화자인 ‘나’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속에서 생활하는 남자다. 상자 안에 그에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절대적인 물건들만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자이니, 다르게 말하자면 상자이외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상자인간은 상자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야 확보를 위한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해도 좋다. 

 상자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심 한 복판 속에서 사람들은 상자인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극단적이지만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어떤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엔 친절하게 상자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누구나 원하면 상자인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소설엔 다양한 시선이 등장한다. 진짜 상자인간, 가짜 상자인간, 상자인간이 탄생되기 전 누군가를 훔쳐보기 위한 관음증에 해당하는 경우까지 말이다. 그건 결국 하나의 시선이자, 작가의 시선이었다. 

 상자인간에게 상자를 사러 접근한 간호사, 그 여자에게 상자를 사오라고 요구한 의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상자를 버릴지 말지 갈등하는 나와 그 상자를 원하는 의사. 같은 공간임에도 상자 속과 밖의 엄연하게 구분된다. 그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관점이랄까.  
 
 나는 상자인간의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과연 이 남자가 상자를 벗고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상자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지 말이다. 1973년 발표된 소설,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했나 보다. 놀랍게도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상자인간이 자신의 상자 속에 남긴 낙서임을 고백하다. 그러니까 소설 처음에 말한대로 상자인간이 상자 속에서 상자인간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기이하고 기발하지만 어려운 소설이라 하겠다.  실은 커다란 상자안에서 나를 의식하지 않은 상대를 지켜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구체적으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무슨 기분일까 상상하게 된다.

 아베 고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상자라는 국한된 공간에서 소유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욕망이 부질없음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함으로 견뎌야 할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누구나 때로 익명의 상자인간을 꿈꾸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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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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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로스의 책은 처음이다. 해서, 옮긴이가 이 소설에 대해 표현한 필립 로스식이라는 말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울분』을 통해 만난  필립 로스는 나쁘지 않았기에 그의 다른 소설을 만난다면 그때는 필립 로스식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튼 울분은 제목이 갖는 의미를 잘 살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소설은 1950년 대 초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마커스의 집안은 유대교로 정육점을 운영한다. 그는 부모님을 도와 정육점 일을 거들었으며 성실하고 바른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이 일탈을 시도할 소지가 없는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에 아들이 발을 내딛을 세상은 너무도 불안했고 위험이 가득했다. 그런 과도한 애정이 마커스를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었다는 걸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한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 p. 20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동적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아주 사소한 선택으로 인해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게 삶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건 옳았다. 때문에 아버지에게 마커스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같았다. 그런 부모의 기대를 알기에 모범적인 대학생활을 유지하려 했다. 클럽에 들어가 어울리지 않고, 여자친구도 사귀지 않으려 했고, 아르바이트와 강의만 열심히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전쟁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사촌들처럼 될 수도 있었고, 원하는 법 공부도 할 수 없고 아버지처럼 정육점 주인이 될 수도 있으므로 나름대로 자신을 다스리려 했다. 

 마커스에게 대학생활은 수많은 유혹(이를테면 사랑과 자유)를 뿌리쳐야 할 시험대같았다. 그러나 피끓는 청춘인 그에게 사랑은 다가왔고 마커스는 혼란스럽다. 올리비아, 그녀가 마커스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올리비아를 향한 열정을 감당할 수 없다. 그녀가 이혼한 부모를 두었고 자살을 기도했으며 방탕한 소문에 휩싸여있어도 상관없었다. 욕망과 욕정이 뒤범벅된 관계여도 좋았다. 올리비아의 문제를 시작으로 모든 것이 쓰나미처럼 마커스에게 달려든다. 무조건 채플을 참석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도 불만이었고, 시시콜콜 자신을 간섭하는 아버지도 싫었다. 그의 상태는 태풍의 눈과 같았다.  

 분명 마커스에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문제는 조언자가 너무 많았고 마커스가 흡수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애정들이었다는 점이다. 맹장수술로 입원하자 찾아온 어머니는 병실에서 올리비아와 만난다.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할지 마커스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 그녀와 헤어지겠다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건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마커스의 섣부른 오만이었다. 결국 스스로 울분을 다스지지 못한 마커스의 삶은 불행한 마감을 하게 된다.

 독립된 자아로 온전하게 설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의 조언대로 살았더라면, 채플로 인해 교수와 대립하지 않았다면 마커스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마커스는 완전을 위해 자신의 불완전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다.  청춘을 즐기는 일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내 생각을 고집하는 일이, 과연 그걸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다. 필립 로스는 거침없이 문장으로 마커스의 감정을 묘사했다. 그건 통쾌했고 알싸하고 짜릿하며 아름다웠다. 두려움 없이 써 내려간 느낌이랄까. 소설 속 시대와 60년이라 시간 차를 두고 있지만 경제상황이나 시대적 상황을 제외하곤 뜨거운 청춘의 몸부림은 그 시대나 지금이 같았다. 그들의 분노와 갈망을 안다고 해도 나는 마커스가 아닌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이니 어찌하랴. 그래도 간절하게 원하는 그 무언가에 다다르지 못해 분해하는 주인공 마커스의 모습이 내내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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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늑대 파랑
윤이형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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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이형의 소설은 두 번째다. 『셋을 위한 왈츠』은 놀라웠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만든 인물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 온 그런 인물처럼 여겨졌다. 『큰 늑대 파랑』 역시 독특했고, 그녀의 상상력을 따라가기에 나는 힘든 독자였다. 소설들은  SF 소설이나 게임의 한 장면에서 볼 듯한 공간 설정과 인물이 등장한다.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 그 먼 미래 사회의 이야기인 <스카이워커>의 사람들은 과거에 알려하지 않는다.  아니 현재만이 중요한 것이다. 주인공 지현은 트램펄린 선수다. 한 방향으로만 뛰어오를 수 있는 그녀에게 중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벽 너머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신의 삶을 뒤흔들어놓았다.  하나의 기준만을 보려 하기 때문에 지현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하나였다.  ‘다가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열어두지 않으면 이해받을 수 없다.’ p. 47  지현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말은 미래나, 현재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첫 단편은 나를 어지럽게 했다. 문장을 읽고 있었지만, 그 공간을 상상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질 외에 원하는 성격, 능력을 튜닝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완전한 항해>, 좀비가 등장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큰 늑대 파랑>,현실과 가상을 구별하기 힘든 <이스투아 공원에서의 점심>,자기의 본체와 분리체를 만들 수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결투>도 마찬가지다.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완전한 항해>가 특히 그러했다.  

 주인공 창연은 해마다 생일을 맞이해 자신을 투닝한다. 과거의 내가 미술에 관해 몰랐다면 그 방면에 유능한 누군가의 죽음을 이용해 창연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그는 창연이 되는 것이다.  50번 째 생일을 맞아 창연의 몸으로 튜닝을 할 대상은 인간의 형상을 지닌 1cm도 안되는 ‘루’족의 창이란 여자였다. 

 창은 가보지 못한 세상을 꿈꾸었다. 달 가까이 날아가고 싶었다. 인간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해가 바뀔수록 보여지는 창연은 완벽한 사람으로 변화했지만, 그를 창연이라 할 수 있을까. 여러 인물이 통합된 모습, 진짜 나를 설명할 수 없고 나를 구성하는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 삶이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에 비해 미세한 생물체에 불과한 창은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곧 죽음이 닥칠걸 알았지만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의 이비와 몽식,<맘>에서 엄마를 찾는 딸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 두 단편에서 작가 스스로의 이야기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아니, 대부분의 독자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미치도록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이비는 상대적으로 그런 글을 쓰는 친구 몽식이 부럽다. 부정적이고 더러운 상황 묘사를 하더라도 몽식의 글은 언제나 따뜻했고 아름다웠다. 

 그런 몽식이 이비에게 <로즈 가든 라이팅 머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 기계가 몽식의 문장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었다. 정말 이런 기계가 등장하는 날이 온다면, 기뻐해야 할까. 몽식은 자신의 글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고백하며 혼란스러워한다. 몽식에게 이비가 남긴 글은 모든 글쓰는 이에게 큰 위로를 준다. 창작의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작가들에게 말이다.  

 ‘여러자기로 힘들겠지만, 몽식아, 어쨌든간에 나는 네 글을 정말 좋아한다. 너는 가짜라고, 네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가짜를 진짜게 되게 하는 게 글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고, 따지고 보면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은 사실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또 뭔가를 하나 더 만들어 가만히 놓아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 266 

 <맘>은 특히 윤이형을 떠올리게 한다. 80일 동안 사라진 엄마를 찾는 과정을 담은 소설을 통해 엄마의 삶과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이 단편에도 50년 후의 미래를 경험하고 돌어오는 타임머신이라는 장치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엄마를 닮은 딸이지만, 정적 엄마가 살아온 삶과 그녀가 원하는 것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딸의 모습은 현실과 가장 가깝다. 먼 미래로 사라진 엄마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딸을 통해 어떤 상황이든 글을 써야 하는 작가의 숙명이 느껴진다.  

 『셋을 위한 왈츠』에서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만났다면 『큰 늑대 파랑』에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큰 늑대 파랑>이 더 좋다. 소설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중력을 지배하는 세상, 어쩌면 곧 현실이 될지 모르는 미래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세계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너무도 놀랍고 신기하여, 읽는 동안 3D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중요한 건 환상적인 환타지로 내세운 이미지 속에 이 시대의 자화상과 이 사회의 고민들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단절된 관계, 소통을 원하는 사회,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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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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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매일 힘들다고 투덜대는 생에 빛나는 보석들이 숨겨져 있는지 알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걸까. 인생이 아름답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느닷없이 내린 소나기에 옷이 다 젖었지만, 그후에 떠오르는 무지개를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다가올 앞날을 계획하고 혹시나 하는 사고에 예방하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 변수의 범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힘든 건 ‘왜 내게’라는 물음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모래알보다, 더 많은 사람들 중 그게 왜 나여야 하는지, 그 분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애쓰다 답과 마주했을 때 삶은 그에게만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1992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우리 생에 그런 비밀을 숨겨져 있음을 말해준다. 소설은 1985년 12월 인생의 허무함으로 힘들어 하는 에벌린은 시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만난 노부인을 통해 그녀의 시댁인 스레드굿가와 막내 시누이 이지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그러니까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1985년 에벌린과 스레드굿의 깊은 우정과 1920~1930년대를 시작으로 활달한 이지와 아름다운 루스를 중심으로 ‘앨리배마 주 휘슬스톱’ 카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미국 남부 시골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겨운 일상을 말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시대, 열차사고가 빈번했고 전쟁이 일어났던 시대다. 그리하여 사회는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경제불황까지 몰려왔지만 앨리배마 휘슬스톱엔 언제나 따뜻함이 가득했다. 꼬집어 말하자면 그곳에 이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사려깊은 이지로 인해 마을은 생동감이 넘쳤다. 그녀는 사람들을 웃게 했고, 사람들은 감동시켰다.  그녀를 사랑하는 루스와 가족과 이웃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삶이었다. 

 가장 모범적으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사회생활만이 중요한 남편을 보며 우울한 에벌린에게 노부인이 들려주는 휘슬스톱 이야기는 누구나의 삶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한 쪽 팔을 잃은 아이를 바라보며 슬픔 대신 웃음을 짓는 모습, 전쟁터에 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기도, 자식이 좋은 짝을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소망,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슬픔이 함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에벌린은 시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엔 시간 때우기에 불과했지만 노부인과 만나면서 그녀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여든이 넘은 노부인의 눈에 이제 겨우 마흔을 넘긴 에벌린의 분노와 두려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과정일 뿐이었다. 이미 그 모든 감정을 지나온 노부인은 에벌린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노부인이 남긴 편지를 에벌린이 읽는 장면에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야기로 들었던 휘슬스톱 카페와 사람들이 떠나버린 마을을 돌아보며 과거를 상상하는 에벌린처럼 나도 그곳을 상상한다. 

 아름답디 아름다운 소설이다.  마치 내 어머니가 전해주지 못한 말들을 듣는 기분이랄까.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올리브 키터리지』나 『사우스 브로드』를 떠올린다. 아니, 그 소설들을 읽고 앨리바마의 휘슬스톱 카페의 이지를 떠올려야 맞다.  
 
 이지와 루스가 서로에게 열린 문이었듯이 우리의 곁에도 분명 그 문이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더 큰 문을 바라는 욕심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리라. 너무도 식상하고 진부한 경구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스레드굿 부인의 말을 옮겨둔다.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 두신답니다.’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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