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상자인간’이란 상자 속에서 사는 사람을 뜻한다. 걸인이나, 부랑자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집이 아닌, 상자를 뒤집어 쓰고 밖을 볼 수 있는 시야만을 확보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을 주의 깊게 지켜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정말 상자인간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자발적으로 상자인간으로 살고자 한 사람이 있다. 소설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전직 카메라맨이었던 화자인 나가 왜 자청해서 상자인간이 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왜 『상자인간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인 아베 고보에게 묻는 것과 같다.   

 화자인 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속에서 생활하는 남자다. 상자 안에 그에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절대적인 물건들만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자이니, 다르게 말하자면 상자이외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상자인간은 상자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야 확보를 위한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해도 좋다. 

 상자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심 한 복판 속에서 사람들은 상자인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극단적이지만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어떤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엔 친절하게 상자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누구나 원하면 상자인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소설엔 다양한 시선이 등장한다. 진짜 상자인간, 가짜 상자인간, 상자인간이 탄생되기 전 누군가를 훔쳐보기 위한 관음증에 해당하는 경우까지 말이다. 그건 결국 하나의 시선이자, 작가의 시선이었다. 

 상자인간에게 상자를 사러 접근한 간호사, 그 여자에게 상자를 사오라고 요구한 의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상자를 버릴지 말지 갈등하는 나와 그 상자를 원하는 의사. 같은 공간임에도 상자 속과 밖의 엄연하게 구분된다. 그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관점이랄까.  
 
 나는 상자인간의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과연 이 남자가 상자를 벗고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상자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지 말이다. 1973년 발표된 소설,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했나 보다. 놀랍게도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상자인간이 자신의 상자 속에 남긴 낙서임을 고백하다. 그러니까 소설 처음에 말한대로 상자인간이 상자 속에서 상자인간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기이하고 기발하지만 어려운 소설이라 하겠다.  실은 커다란 상자안에서 나를 의식하지 않은 상대를 지켜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구체적으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무슨 기분일까 상상하게 된다.

 아베 고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상자라는 국한된 공간에서 소유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욕망이 부질없음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함으로 견뎌야 할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누구나 때로 익명의 상자인간을 꿈꾸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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