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매일 힘들다고 투덜대는 생에 빛나는 보석들이 숨겨져 있는지 알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걸까. 인생이 아름답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느닷없이 내린 소나기에 옷이 다 젖었지만, 그후에 떠오르는 무지개를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다가올 앞날을 계획하고 혹시나 하는 사고에 예방하며 살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 변수의 범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힘든 건 왜 내게라는 물음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모래알보다, 더 많은 사람들 중 그게 왜 나여야 하는지, 그 분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애쓰다 답과 마주했을 때 삶은 그에게만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1992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우리 생에 그런 비밀을 숨겨져 있음을 말해준다. 소설은 1985년 12월 인생의 허무함으로 힘들어 하는 에벌린은 시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만난 노부인을 통해 그녀의 시댁인 스레드굿가와 막내 시누이 이지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그러니까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1985년 에벌린과 스레드굿의 깊은 우정과 1920~1930년대를 시작으로 활달한 이지와 아름다운 루스를 중심으로 앨리배마 주 휘슬스톱 카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미국 남부 시골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겨운 일상을 말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시대, 열차사고가 빈번했고 전쟁이 일어났던 시대다. 그리하여 사회는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경제불황까지 몰려왔지만 앨리배마 휘슬스톱엔 언제나 따뜻함이 가득했다. 꼬집어 말하자면 그곳에 이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사려깊은 이지로 인해 마을은 생동감이 넘쳤다. 그녀는 사람들을 웃게 했고, 사람들은 감동시켰다.  그녀를 사랑하는 루스와 가족과 이웃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삶이었다. 

 가장 모범적으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사회생활만이 중요한 남편을 보며 우울한 에벌린에게 노부인이 들려주는 휘슬스톱 이야기는 누구나의 삶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한 쪽 팔을 잃은 아이를 바라보며 슬픔 대신 웃음을 짓는 모습, 전쟁터에 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기도, 자식이 좋은 짝을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소망,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슬픔이 함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에벌린은 시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엔 시간 때우기에 불과했지만 노부인과 만나면서 그녀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여든이 넘은 노부인의 눈에 이제 겨우 마흔을 넘긴 에벌린의 분노와 두려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과정일 뿐이었다. 이미 그 모든 감정을 지나온 노부인은 에벌린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노부인이 남긴 편지를 에벌린이 읽는 장면에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야기로 들었던 휘슬스톱 카페와 사람들이 떠나버린 마을을 돌아보며 과거를 상상하는 에벌린처럼 나도 그곳을 상상한다. 

 아름답디 아름다운 소설이다.  마치 내 어머니가 전해주지 못한 말들을 듣는 기분이랄까.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올리브 키터리지』나 『사우스 브로드』를 떠올린다. 아니, 그 소설들을 읽고 앨리바마의 휘슬스톱 카페의 이지를 떠올려야 맞다.  
 
 이지와 루스가 서로에게 열린 문이었듯이 우리의 곁에도 분명 그 문이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더 큰 문을 바라는 욕심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리라. 너무도 식상하고 진부한 경구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스레드굿 부인의 말을 옮겨둔다.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 두신답니다.’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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