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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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로스의 책은 처음이다. 해서, 옮긴이가 이 소설에 대해 표현한 필립 로스식이라는 말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울분』을 통해 만난  필립 로스는 나쁘지 않았기에 그의 다른 소설을 만난다면 그때는 필립 로스식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튼 울분은 제목이 갖는 의미를 잘 살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소설은 1950년 대 초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마커스의 집안은 유대교로 정육점을 운영한다. 그는 부모님을 도와 정육점 일을 거들었으며 성실하고 바른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이 일탈을 시도할 소지가 없는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에 아들이 발을 내딛을 세상은 너무도 불안했고 위험이 가득했다. 그런 과도한 애정이 마커스를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었다는 걸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한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 p. 20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동적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아주 사소한 선택으로 인해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게 삶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건 옳았다. 때문에 아버지에게 마커스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같았다. 그런 부모의 기대를 알기에 모범적인 대학생활을 유지하려 했다. 클럽에 들어가 어울리지 않고, 여자친구도 사귀지 않으려 했고, 아르바이트와 강의만 열심히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전쟁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사촌들처럼 될 수도 있었고, 원하는 법 공부도 할 수 없고 아버지처럼 정육점 주인이 될 수도 있으므로 나름대로 자신을 다스리려 했다. 

 마커스에게 대학생활은 수많은 유혹(이를테면 사랑과 자유)를 뿌리쳐야 할 시험대같았다. 그러나 피끓는 청춘인 그에게 사랑은 다가왔고 마커스는 혼란스럽다. 올리비아, 그녀가 마커스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올리비아를 향한 열정을 감당할 수 없다. 그녀가 이혼한 부모를 두었고 자살을 기도했으며 방탕한 소문에 휩싸여있어도 상관없었다. 욕망과 욕정이 뒤범벅된 관계여도 좋았다. 올리비아의 문제를 시작으로 모든 것이 쓰나미처럼 마커스에게 달려든다. 무조건 채플을 참석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도 불만이었고, 시시콜콜 자신을 간섭하는 아버지도 싫었다. 그의 상태는 태풍의 눈과 같았다.  

 분명 마커스에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문제는 조언자가 너무 많았고 마커스가 흡수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애정들이었다는 점이다. 맹장수술로 입원하자 찾아온 어머니는 병실에서 올리비아와 만난다.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할지 마커스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 그녀와 헤어지겠다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건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마커스의 섣부른 오만이었다. 결국 스스로 울분을 다스지지 못한 마커스의 삶은 불행한 마감을 하게 된다.

 독립된 자아로 온전하게 설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의 조언대로 살았더라면, 채플로 인해 교수와 대립하지 않았다면 마커스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마커스는 완전을 위해 자신의 불완전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다.  청춘을 즐기는 일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내 생각을 고집하는 일이, 과연 그걸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다. 필립 로스는 거침없이 문장으로 마커스의 감정을 묘사했다. 그건 통쾌했고 알싸하고 짜릿하며 아름다웠다. 두려움 없이 써 내려간 느낌이랄까. 소설 속 시대와 60년이라 시간 차를 두고 있지만 경제상황이나 시대적 상황을 제외하곤 뜨거운 청춘의 몸부림은 그 시대나 지금이 같았다. 그들의 분노와 갈망을 안다고 해도 나는 마커스가 아닌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이니 어찌하랴. 그래도 간절하게 원하는 그 무언가에 다다르지 못해 분해하는 주인공 마커스의 모습이 내내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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