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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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라는 무대에서 민중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때로 전쟁이며, 쿠데타며, 학살이다. 그들의 역할이 분명한 단역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특히 1980년대가 그러하다. 그 시절은 누구에게나 잔혹한 이미지로 남는다. 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통증은 지속된다. 직접적으로 개입된 적 없는, 방관자 같았던 관객에게도 말이다.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는 그 시절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복만은 고아원 출신으로 원주에서 택시기사로 일한다. 애인 김순희와 동거하며 결혼을 꿈꾸는 소박한 청년이다. 그런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과 형사의 감시 대상이 된다. 과연 나복만은 그럴만한 사람인가? 택시 운전 중 사소한 사고를 내자 자진하여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시민일 뿐이다. 교통과가 아닌 정보과를 찾은 게 잘못이었다. 나복만은 글을 몰랐다. 당시 원주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범이 도피처로 선택한 곳이었다. 물론 그들은 원동 성당 최기식 신부의 권유로 모두 자수하였다. 이쯤에서 그 사건은 마무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군사 정권을 향한 과잉된 충성이 나복만의 삶을 뒤흔들었다. 정보과 형사들은 나복만을 그 사건과 결부시켰다.

 

 ‘그는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죄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것은 분명 ‘아는 ’죄와는 다른 것이었다. 하나의 걱정이, 모든 것의 걱정으로 변화되고, 하나의 두려움이, 수십 가지의 두려움으로 연결되어 버리는 마법.’(60쪽)

 

 나복만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문에 이름이 실린 것도 몰랐다.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질 일이 얼마나 심각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직장 동료에게 경찰서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털어놓을 뿐이다. 경찰과 정보과 직원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걸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은 적 없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왔으며, 자신이 원동 성당의 신부들의 지시를 받는다는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몰랐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179쪽)

 

 1980년대 안기부에선 모든 게 가능했다. 협박과 회유로 시작하여 끝내는 고문으로 모든 걸 인정하게 만들었다. 진실을 알리려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랬다. 우리의 나복만은 아주 쉬운 상대였다. 부모 형제 없는 고아였고 글을 모르니 없는 죄를 만들기에 적절했다. 안기부 직원이 써 준 글을 그대로 옮겨 써야 했다. 나복만은 모든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안기부 직원을 태우고 택시를 몰던 그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사라진 건 가장 잘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생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다 포기하고 나니까 막 화가 났습니다. 제가 도로교통법 말고 또 뭐가 걸릴 게 있다고…….’ (302쪽)

 

 이기호는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유쾌한 톤으로 비통한 마음을 감춘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 이것을 다시 왼쪽으로 모로누운 채, 한번 들어 보아라. 자, 다들 인상 펴고 이것을 계속 들어 보아라. 자, 이것을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를 떠올려 보며 들어 보아라.’소설을 통해 그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이 소설은 소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누군가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절대로 그런 삶이 존재하는 세상은 없어야 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 시절 얼마나 많은 나복만이 존재했을까. 어떻게 삶은 견디며 살아왔을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혹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복만이 존재하면 어쩌나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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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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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의미에서 서재는 책장을 갖는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책장이 있으면 책을 꽂아주고 싶다는 소유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60쪽)

 

 책장을 들였을 때 책을 꽂으면서 정말 즐거웠다. 가지런히 놓인 책들, 알록달록 책등은 어떤 소품보다 훌륭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책등은 사라지고 앞 뒤로 책이 쌓인다. 찾으려는 책을 찾지 못해 다시 구매하기에 이른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경험한 일상이다. 모든 공간의 주인이 책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정리보다는 책 구매가 먼저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제목과 표지를 통해 책이 지배한 삶을 짐작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에 미친 사람들의 책 정리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수 만권의 책을 소장한 장서가다. 저자는 자신처럼 책을 많이 소장한 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양한 직업과 세 대의 애서가들이 어떻게 책을 모으고 어떤 방법으로 책을 관리하는지, 어떻게 장서의 괴로움에서 벗어났는지 말이다. 책을 주제로 한 책이지만 책 때문에 괴로운 이야기를 듣는 건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동시에 살짝 두렵기도 하다. 책을 위한 집을 짓고, 책이 많아 집이 무너지고, 책 때문에 세 든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하고, 화재로 책이 타버리는 안타까운 이야기 때문이다. 물론 책 속의 사례는 모두 일본 주택의 경우지만 말이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말하는 건 보관과 정리의 기술이자 책을 대하는 태도다. 무조건 책을 모으기만 한다면 애서가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주변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장의 책들이 정말 소장의 가치가 있는 책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저자가 언급한 문학연구가 시노다 하지메의 말처럼 자신의 독서 습관을 돌아봐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150쪽)

 

 이제 집 곳곳에 쌓인 책과 책장의 순환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했다면 실천해야 한다. 책은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 아니, 과감하게 책을 처분하고 정리할 수 있을까? 천 권 이상의 책을 소장했다면 책에서 말한 적당한 장서량의 기준인 5백 권을 맞춰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일본 각지의 다양한 헌책방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책으로 맺은 인연, 한 권의 책에 담긴 사연은 언제 들어도 지겹지 않다. 

 

 책으로 둘러싸인 삶을 사는 이들에겐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책이다. 책을 수집하지 않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책장을 정리하는 대신 이 책을 통해 소개된 다른 책을 구매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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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온도 - 청소년 테마 소설 ㅣ 문학동네 청소년 22
김리리 외 지음, 유영진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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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는 어렵다. 그러나 중요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친구, 연인, 가족, 이웃, 모두가 관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친한 관계가 있는 반면 아주 불편한 관계도 있다. 어디서 맺은 관계든 마찬가지다. 가족이라 해도 잘 지내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관계의 온도>는 일곱 명의 작가가 청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금이의 「1705호」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1705호로 이사 온 미숙 씨 가족 앞에 나타난 십 대 소년에 대해 들려준다. 식구들이 저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교복 차림의 아이와 마주한다. 불량 학생이 아닐까 단속하라고 말하며 관리소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 왜 남의 집 앞을 서성이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아이는 손을 내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일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김민령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는 가장 보편적인 청소년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정은 매일 함께 등교하던 나나가 맹장염으로 입원한 소식을 듣는다. 이정은 고등학교에 입학 후 나나와  다녔지만 단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병문안을 가려 했지만 나나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나나가 어디 사는지, 형제는 있는지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이름을 바꿨다는 사실도 반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된다. 항상 곁에 있어서 나나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학창시절의 친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이정은 알게 될까?

 

 ‘나나가 없을 때 나는 누구하고 점심을 먹었을까, 쉬는 시간에는 멍청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거나 문제집만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걸까. 음악실이나 체육관으로 이동할 때 나는 혼자였을까. 나나 없이 학교로 가는 언덕길은 텅 비어 있었다. 눈앞에 아이들 없이 햇살만 가득한 교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나도 없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60~61쪽)

 

 은이정의 「철용」은 중 3의 평범한 아이 철용에 관한 이야기다. 철용은 조용한 남학생이다. 까불거나, 장난을 치지 않고 조용히 뜨개질만 한다. 뜨개질로 만든 휴대전화 고리와 모자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선물 받은 여자아이는 철용이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아이는 거절하기도 한다. 철용이를 놀리는 남자아이도 있지만 철용을 따라 뜨개질을 하는 아이는 점차 늘어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왕따나 학교 폭력으로 물든 교실의 이미지가 아닌 따뜻한 교실을 상상하게 된다.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기운이 교실 바닥에서부터 아이들 머리 위까지 골고루 퍼져 있었다. 아이들은 그 기운 속에서 평온을 누렸다. 그 평온의 중심에서 철용은 돌부처처럼 앉아 뜨개질을 했다. 파란색 실을 손가락에 걸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손을 늘리는 철용은 세상에서 두어 걸음 벗어난 듯 보였다.’ (철용 중에서, 88쪽)

 

 과한 관심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진호와 여전히 어색한 새아빠와 힘들어하는 빈의 고민을 다룬 김이윤의 「축지법은 있다」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 친근하다. 초등학교 시절 화상 흉터로 프랑켄슈타인이라 불리던 수를 몇 년 후에 다시 만나 과거를 반성하는 김리리의 「수」, 미래의 남편을 만날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통해 현재의 관계를 돌아보는 이제미의 「미래의 남편」를 통해 관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친구나 부모와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현재 맺어진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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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식사를 하는 사람이 늘어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늘어난 사람에 따라 각자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정해진 자리는, 누가 정하는가? 아이의 경우는 어른이 정할 것이고, 손님의 경우는 주인이 정하게 된다. 어른의 경우는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정하게 된다. 그러나 혼자 식탁을 차지할 경우에도 같은 자리에 앉게 된다. 습관 때문이다. 사물의 위치도 다르지 않다. 종종 사용하는 그릇과 컵을 바꾼다. 가구를 옮기기도 한다. 화분이나 책의 위치는 바뀔 뿐 사라지지 않는다. 꽃은 다시 피고, 땅 속의 씨앗은 다시 싹을 틔운다. 사라지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당신의 공간은 남았는데 당신은 없다.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가 쓰고 그린 『아내의 빈방 : 죽은 후에』는 아내와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간의 기록이다. 사진으로,그림으로, 편지로, 일기로 이어진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들은 여전히 함께 한다.

 

 당신이 집 앞에 심어 놓거나 화분에 담아 발코니에 올려놓은 식물들에 물을 즐 때면, 나는 기도와 이어진 어떤 것, 그리고 기도와 사랑 사이에 어떤 연관을 보곤 했다오. 물이 온도는 날씨에 따라, 양동이가 햇빛 아래 얼마나 있었는지에 따라 달랐지. 어떤 때는 체온보다 따뜻했고, 어떤 때는 시릴 정도로 차갑더군. 하지만 그런 차이 때문에 그 행동에 담긴 사랑스러움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었고, 작업모를 쓰고 물을 주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도 달라지지 않았소. (12쪽)

 

 좋은 날에는 엄마를 느낄 수 있어요. 보통은 제 머리 위에서―우리 머리 위에서요. 퍼져 가는 존재감. 마치 엄마가 미소를 띠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엄마도 동의해 주시는 거라고 믿고 싶지만, 제 생각에 동의라는 것도 다른 판단과 마찬가지로, 지금 엄마가 계신 곳과는 관계가 없겠죠. 그건 여기 지상에 있는 우리의 일이에요. (34쪽)

 

 햇살이 좋은 오후, 나도 엄마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브 버거처럼 말이다. 엄마의 공간, 엄마의 자리, 엄마의 영역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엄마에겐 화장대라 불릴 공간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손거울도 없었다. 엄마만을 위한 공간은 죽음 후에야 생겨났다.

 

 

 김 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도 자리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영역에 대한 것이었다. 소설에서 며느리는 직장을 다녀야 하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육아를 부탁한다. 아들네 집으로 들어온 시어머니는 육아와 살림을 도맡는다. 그 후로 집은 시어머니가 가꾸는 화분과 같았다. 집 안의 모든 사물과 동선은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원래는 저기가 아니잖아요.”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하려 애썼다. “전화기가 놓여 있던 자리가 말이에요.”

 “아니…… 저기다…… 저기…….”

 갈라지고 흐릿했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사실 전화기가 텔레비전 왼편에 있든, 오른편에 있든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전화를 걸고 받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고작 전화기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를, 그것도 제자리를 두고 따지려니 우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136~137쪽)

 

 

 공간을 점유한 만큼 존재의 크기도 커진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살아계셨을 때 안방은 할머니가 사용하셨다. 그러니까 가장 큰 공간을 할머니 혼자 쓰셨다. 손주가 태어남에 따라 함께 사용했지만 언제나 그 방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권력이 가장 컸던 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꿈꿨던 시절을 지났고 모두의 공간이 그립다. 명절 때마다 모여드는 식구들로 가로, 세로, 아무렇게나 잠들었던 밤은 다시 경험할 수 없다. 당신이 만든 음식들, 친척집을 돌며 성묘를 다니던 시절, 마을 어구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이 신기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 마음이 심란한 걸 보니 정말 추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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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4-09-0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도 항상 많은 활동 하고 계시네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자목련 2014-09-06 08:18   좋아요 0 | URL
앗, 초코머핀 님. 덧글 고맙습니다. 명절 평온하게 보내세요^^
 

 

 밤이 기분 좋은 날들이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시간은 줄고 깨어 있게 된다. 선명하게 맑은 정신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파트 곳곳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사라지고 별빛처럼 물드는 가로등이 예쁜 날들이다. 이른 추석으로 마음은 괜히 심란하고 또 하나의 계절이 간다는 게 서럽기까지 하다. 계절의 흐름에 서럽다니, 주책이라 해도 할 수 없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종종 재방송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는 덜하다. 어제는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를 오가다 김 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을 선택했다. 여자(시어머니)의 침이 마르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인데 이전의 김 숨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아직 읽는 중이니 다 읽어봐야 알겠다.

 

 아무래도 올해 나의 관심사는 상실과 부재인가 보다. 존 버거의 『아내의 빈방 : 죽음 후에』, 이 책을 어찌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기존의 존 버거의 책과 달리 양장본에 40쪽의 아주 얇은 책이지만 내게는 커다란 울림을 줄 것 만 같다. 에쿠니 가오리를 매우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등 뒤의 기억』은 읽고 싶다. 짐작했지만 제목 때문이다. 로랑 고데의 『세상의 마지막 밤』도 마찬가지. 책장에서 잠자는 김유진의 『숨은 밤』도 이 계절에 읽으면 좋겠다.

 

 

 

 

 

 

 

 

 

 

 

 

 

 

 

 

 

 

 

 깨어 있기 좋은 밤을 위한 리스트는 길어진다. 에쿠니 가오리보다 애정의 크기가 큰 필립 로스의 단편집 『굿바이, 콜럼버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작가 매튜 퀵의 장편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도 기대가 된다. 시집도 고른다. 임선기, 김행숙, 김경미의 시집과 사랑하기 좋은 날들을 위한 다소 과한 마케팅이라 여겨지는 에로틱한 표지 김종관의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이 책들을 다 곁에 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몇 권의 책을 다시 추리고, 추린다. 존 버거의 책과 함께 몇 권만 사야 한다. 정말, 몇 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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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8-2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침 바르고싶은 책이 많아요. 무얼까 궁금하시죠 ^^

자목련 2014-09-01 10:22   좋아요 0 | URL
필립 로스와 존 버거가 아닐까 싶어요.
수줍은 붉은 사과가 식탁에 놓이는 9월이에요!

라로 2014-08-30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딱 하나만 고를게요~~~~. 근데 자목련님도 당근 아실 듯,,,네, [아내의 빈방]입니다.
요즘 날씨가 좋은가 봐요? 하긴 여기도 밤 날씨는 선선하니 좋네요.
벌써 추석이 다가오는 군요.
여기는 담주 월요일이 공휴일이에요.
노동절이죠. 애들데리고 놀러가고 싶은데 다들 시큰둥해 하네요,,,ㅠㅠ
잘 지내세요, 아니 우리 잘 지내요.^^

자목련 2014-09-01 10:24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금세 자라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요.
가끔 꼭 닫은 문을 바라보며 나도 저랬나 싶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