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기분 좋은 날들이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시간은 줄고 깨어 있게 된다. 선명하게 맑은 정신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파트 곳곳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사라지고 별빛처럼 물드는 가로등이 예쁜 날들이다. 이른 추석으로 마음은 괜히 심란하고 또 하나의 계절이 간다는 게 서럽기까지 하다. 계절의 흐름에 서럽다니, 주책이라 해도 할 수 없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종종 재방송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는 덜하다. 어제는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를 오가다 김 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을 선택했다. 여자(시어머니)의 침이 마르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인데 이전의 김 숨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아직 읽는 중이니 다 읽어봐야 알겠다.
아무래도 올해 나의 관심사는 상실과 부재인가 보다. 존 버거의 『아내의 빈방 : 죽음 후에』, 이 책을 어찌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기존의 존 버거의 책과 달리 양장본에 40쪽의 아주 얇은 책이지만 내게는 커다란 울림을 줄 것 만 같다. 에쿠니 가오리를 매우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등 뒤의 기억』은 읽고 싶다. 짐작했지만 제목 때문이다. 로랑 고데의 『세상의 마지막 밤』도 마찬가지. 책장에서 잠자는 김유진의 『숨은 밤』도 이 계절에 읽으면 좋겠다.







깨어 있기 좋은 밤을 위한 리스트는 길어진다. 에쿠니 가오리보다 애정의 크기가 큰 필립 로스의 단편집 『굿바이, 콜럼버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작가 매튜 퀵의 장편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도 기대가 된다. 시집도 고른다. 임선기, 김행숙, 김경미의 시집과 사랑하기 좋은 날들을 위한 다소 과한 마케팅이라 여겨지는 에로틱한 표지 김종관의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이 책들을 다 곁에 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몇 권의 책을 다시 추리고, 추린다. 존 버거의 책과 함께 몇 권만 사야 한다. 정말, 몇 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