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언론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영화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개인 블로그를 선택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통로로 세상을 읽고 말한다. 누군가는 통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 말한다. 통로를 통해 접하는 것들이 하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크고 넓은 통로는 책이다. 책을 통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나의 감정을 진단한다. 알지 못했던 진실과 방관하고 싶었던 이슈를 향해 마음이 이동한다. 문소영의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닫혔던 통로를 열게 만들고 더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사실 예술, 문화, 사회에 대해 자신의 일상과 사유를 접목시키는 글은 많다. 문소영의 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의 바탕이 되는 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 영리함이라고 할까.

 

저자는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 6개의 주제로 나누어 42개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주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어쩌면 6개의 키워드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느리고 천천히 나를 발견한 예술가(윤석남, 박완서, 에드워드 호퍼, 세잔)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서글프면서도 용기를 불러온다. 내 안의 뭔가를 깨워도 괜찮다는 생각, 게으르면 어때?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기까지 하니 나는 부지런보다는 게으름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잖아. 그런 의미에서 불편하게나 엉뚱하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에 분노한다. 그러나 뉴스와 기사를 클릭할 뿐 댓글을 다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불편함에서 멀어지려 한다. 저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아이가 끔찍한 불행 속에 살아야 하는 이야기, 어슐러 르 권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투영한다. 조직과 나라의 위상을 위해 누군가(피해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정말 사라져야 할 일이다. 불편함을 바로잡기 위해 불편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 변화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틀안에 갇힌 것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유연하면서도 완고하다. 최근 심각하게 증가하는 청소년 문제와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왕따를 영화로 접목시켜 들려주는데 뜨겁게 다가온다. 범죄자의 엄마로서 그 책임을 다하면서도 맹목적이 사랑을 전하지는 않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모성의 다양성을 언급한다. 일방적인 사랑을 무조건 아름답다 여겼던 과거에서 벗어나 그것이 주는 비뚤어진 욕망을 「돈키호테」속 에피소드로 연결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통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현실에서 체감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다. 설령 미래에 결혼제도가 사라진다 해도 존속될 것이다. 그래서 모성의 진화와 그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117쪽)

 

그러니 하나의 기준만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고 시선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는 게 보편적인 인생이라 여기고 강요하지 말라는 거다. 언제 강요했냐고 따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옆집 누구, 엄마 친구 누구, 친척 누구로 시작해서 명절이면 어른이라는 쓸데없는 귄위를 내세워 강요를 쌓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라고 말하는 말은 그동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냥 다 같이 나대고 다 같이 잘난 척하면 안 될까? 서로의 나댐, 서로의 잘난 척을 관용하면서 ‘나도 잘나고 너도 잘났어.’. ‘아, 나 특이해. 어, 너도 특이해.’의 마인드로 산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166쪽)

 

우리는 한 번씩 쉽게 내뱉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진로를 결정하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격려라는 말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말들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운 멍에로 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좋은 의도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사회 곳곳의 고민과 어려움을 자상하게 들여다보는 저자의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다. 그 시선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산다는 건 불편하고 힘든 일 투성이며 자주 무너진다는 걸 알면서도 힘을 내자는 거다. 진심으로 사랑하며 지켜봐 주고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처럼.

 

기억되는 것, 그건 결국 사심 없는 사랑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275쪽)

 

나의 시선은 책을 읽기 전과 달라졌을까? 당당하게 답할 수 없지만 조금은 그렇다 말하겠다. 그리고 상상한다. 세상을 향한 통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을 향했으니 세상이겠지만 그 길에는 다채로운 삶이 가득하다. 다양한 삶이 어우러져 만드는 다채로운 삶을 그린다. 나의 시선이 닿는 그곳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어떤 문장을 읽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글쓴이와 일면식도 없는데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아는 사이가 된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비슷한 세대라서 글에서 나온 일상이 내가 겪은 그것과 같을 때, 같은 장소나 같은 물건에 애정을 드러냈을 때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글쓴이에 대한 애정이 과한 경우다. 그러니까 김애란 작가가 쌍둥이라는 걸 알았을 때 쌍둥이 조카를 생각하며 흐뭇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잊기 쉬운 이름』을 읽으면서 반가운 마음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닌 소설이 아닌 그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작가 김애란이 아닌 보통의 김애란의 글이 궁금했다고 할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미 김애란은 유명한 소설가이기에 우리에게 김애란의 글을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산문집에서 김애란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만나는 일은 좋았고 소설가 뒷면에 가려진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상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서 혼자 상상했던 이미지를 실체를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은 나만 느낀 건 아닐 거다. 초기 단편집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델이 그녀의 부모라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 그녀의 수상 소식을 동네에서 전부 알고 함께 내일처럼 기뻐했다는 게 친근했다. 어머니가 운영한 칼국수집 ‘맛나당’의 구조를 알 것 같았고 바쁘게 칼질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묻어 있는 흥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장에서 전해지는 체온이랄까. 하루하루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마시는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작가처럼 글을 쓸 수는 없지만 같은 표정을 짓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13쪽)

한때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던 거실에는 어둠과 침묵이 짙게 깔리고 이제는 미움도 사랑도 희석된 채 이따금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만이 오도카니 남았다. (111쪽)

지나온 시절에 대한 과대 포장이 아닌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표현이 그리움을 잘 드러내는 법이다. 노년의 부모가 특별한 놀이가 없는 저녁에 화투를 치는 일상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추억인데 어느 순간 그 추억의 주인이 나로 바뀌는 걸 느낀다. 어디에서나 삶은 비슷하게 닮아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고백엔 맞장구를 치고 만다. 아마도 한 번은 부사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부사의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부사는 왜 이런 대우를 받는 존재가 되었을까, 혼자 부사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면서 좋을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부사에 대한 압박(?)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하는 것이다. 작가와 부사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부사를 적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고 그냥 읽는 독자라서 다행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부사가 걸린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87쪽)

특정한 장소, 좋아하는 책, 친하게 지내는 동료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산문집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맛이다.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박완서를 향한 글에서 친밀감이 전해진다. 사적인 관계이며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친목과 만남이 궁금한 건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니까. 반대로 우리 사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글에서는 작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의 글을 읽고 공감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이들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아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141쪽)

 

읽으면서 설레고 감탄했던 문장은 많다. 하지만 그 여운이 오래가는 문장은 많지 않다. 발랄하면서도 달콤했던 문장은 김애란의 것이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도 이름이 있다면 김애란의 문장이겠다. 지나친 감상이라도 지금 이 순간엔 괜찮다. 여름을 말하는 게 아닌데도 여름이면 생각나는 문장, 여름을 닮은 싱그러움을 읽는다. 여름이니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것은 나무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고 가지로 손을 흔들면 안도하고 계절이 뒤따라온다. 봄이 되고 싶은 봄. 여름이 하고 싶은 여름. 가을 혹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봄’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머지는 나무가 알아서 한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문제지를 받고, 정답을 모르면서 정답을 쓴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두근두근 내 인생』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열네 살 린다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그 나이의 감각을 잊어버렸다. 소녀였던 시절, 빨리 어른이 되면 좋을 것 같았고,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사랑을 기대했고 사랑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랑을 원하는 마음, 그 하나는 닮았을지도 모른다. 열네 살에서 열다섯이 되는 시기는 돌봄이 필요하다. 동시에 누군가를 돌보기에 충분한 나이다. 에밀리 프리들런드의 『늑대의 역사』에서 린다가 원한 건 돌봄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마음의 돌봄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춥고 어두운 숲의 오두막에서 린다는 부모와 함께 산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 주변의 호수에서 카누를 타거나 네 마리의 개와 달리기를 한다. 린다는 어렸을 때 모여서 생활했던 공동체를 기억한다. 어떤 계기로 그것이 실패를 돌아가고 이렇게 오두막에서 살게 되었는지 린다의 부모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골의 한적한 변두리에서 사춘기 소녀 린다에게 세상은 고요하고 시시했을 것 같다. 그래서 새로 부임한 그리어슨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꼈고 호수 반대편 근사한 통나무집에 이사를 온 가족을 몰래 지켜봤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거다. 그리어슨 선생님이 릴리 대신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릴리는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아이였고 린다는 그런 릴리가 부러우면서도 질투를 느꼈다. 결국은 스캔들로 그리어슨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우리 셋 사이에는 열한 살의 나이차가 있었다. 우리는 네 살, 열다섯 살, 스물여섯 살이었다. (…) 항상 출타 중인 천문학자 남편이 서른일곱 살이라는 사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자 이제는 겁이 날 지경이었다. (116쪽)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린다에게 패트라와 폴 모자와의 만남은 즐거운 변화였다. 학교가 끝나고 네 살짜리 아이와 놀아주면서 용돈을 벌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우주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인 남편 레오는 집에 없었고 아내 패트라는 남편의 원고를 수정하느라 바빴다. 폴과 린다는 제법 잘 통했고 서로를 좋아했다. 하루하루 폴과의 놀이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리어슨 선생님에 대한 관심과 릴리를 향한 묘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린다의 인생을 흔드는 일,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폴의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떠났다. 마음은 들떴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행복했다. 폴이 기운이 없었던 것만 빼면 말이다.

 

린다가 다시 폴의 가족을 찾았을 때 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린다는 그 사실을 몰랐다. 레오와 패트라가 자신만의 종교적인 이유로 폴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재판에서 알았다. 폴의 죽음에 대한 재판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가족이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린다를 향한 질문은 너무 난해했다. 폴을 대하는 젊은 부부 패트라와 레오의 행동이 어떻게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추구했던 삶이 무엇인지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린다의 이야기는 한 번씩 소설의 첫 문장(폴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을 불러온다. 린다는 숲의 오두막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이제는 십대가 아닌 어른이다. 짝사랑 대신 원하는 상대와 사랑하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들의 행적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폴의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지울 수 없다.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명제로 말하기엔 가혹한 일이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숲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서른일곱의 린다의 마음도 알 수 없다. 비밀로 가득한 공동체 생활이나 모호하게 설명하는 패트라와 레오 부부의 신념처럼. 어른이 되면 다 알 것 같고 모든 게 선명할 것 같았던 기대는 사라졌다. 세상은 모르는 일 투성이다. 모든 성장소설이 아름다운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몸이 아픈 상태를 “맘이 좋지 않아.”라고 말한 폴을 생각하면 싱글맘과 아홉 살 아들 욘의 외롭고 쓸쓸한 일상을 그린 『아들의 밤』과 겹쳐진다. 엄마를 기다리다 겨울밤을 혼자 걷고 걷는 욘의 차가운 손을 생각한다.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아이, 스스로 자신을 달래며 무서움을 이겨내고 믿음을 키울 수밖에 없던 소설 속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들의 밤』은 성장소설로 볼 수는 없지만 욘의 느꼈을 감정은 린다의 그것과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늑대의 역사』는 누군가 필요할 때 힘든 마음과 상처를 달래줄 이가 등장하는 성장소설과 달라서 더 강한 울림을 안겨준다. 거기다 소설은 무척 아름답다. 숲이이라는 배경과 계절의 바뀌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런 문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항상 뭔가 잘못되었다. 어디를 보나 허공에 빽빽한 벌레들, 나무를 샅샅이 뒤지는 새들, 가지를 축 늘어지게 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나뭇잎들뿐이다. 여름을 억누르고, 망가뜨리고, 다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오후는 참으로 넓고도 길다. 무슨 일을 하건 그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 (180쪽)

​이 또한 『아들의 밤』에서도 만날 수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눈이라는 소재를 차갑고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소년의 움직임은 슬프고 애처롭다.

불빛을 받는 눈은 황색과 청동색을 띠고 있었고 움푹 패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숲은 고요했다. 욘은 야간 조명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동안 자신이 두려워해온 일을 극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225쪽)

 

우울과 슬픔으로 채워진 성장소설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정희의 『새』다. 소설에는 우미와 우일 어린 남매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보호한다. 외할머니, 외삼촌, 큰집, 아버지까지 어른이 있었지만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데리고 온 여자가 떠나고 아버지마저 돌아오지 않는 셋 방에서 남매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좀 더 나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내일을 바랐을 아이들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새처럼 날 수 있다고 믿은 우일의 소망이 이뤄졌기를 바란다. 죽음을 통해 새가 되었다 하더라도. 성장한다는 건 아픔을 동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이 아팠겠다고 어루만지는 다정한 손길, 든든한 어른이 없는 지독한 성장은 고통스럽다. 설령 그것이 소설일지라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19-07-16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눈을 홀리네요.

자목련 2019-07-16 18:24   좋아요 1 | URL
네, 독특한 표지에요. 내용도 그러하고요^^
 

 

주말에 갑자기 보일러가 가동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설정을 바꿔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갔다. 내가 뭔가를 잘못 만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관리사무소에 문의를 했더니 친절하게도 직원분이 방문을 해주셨다. 예약이 걸려 있다면서 그것을 다 해제시켰다고 하셨다. 별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든 새벽에 어떤 소리에 깨었다. 갑자기 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보일러가 일을 하는 것이다. 조절기를 꺼버리고 잠을 잤다. 월요일에 서비스센터에 방문 신청 접수를 하니 담당기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러면서 보일러의 문제점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했다. 나는 기사님의 질문에 의도를 파악했으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 방문한 기사님은 점검을 하셨고 내가 궁금한 것에 답을 해주셨는데 결론은 오래된 보일러라서 그렇단다. 덧붙여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리고 여름이니 중앙조절기만 켜두고 다른 방은 꺼두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일러가 제멋대로 일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고 오래되었으니 부품은 없고 새로운 보일러를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꽤 큰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 말이다.

 

오랜 시간 제 할 일을 다 했으니 수고했다고 멋지게 이별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고 시스템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해도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모든 일이 갑자기 일어난다는 걸 잘 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다는 걸 알고 불안한 마음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당황스럽고 속상하다. 이런 나를 위로하는 건 매콤한 비빔면과 몇 권의 책뿐이다. 최근에 돋보이는 활약의 소설가는 장류진이 아닐까 싶은데 테마소설집의 참여로 더욱 확실하게 인정한다. 시인 김현의 소설도 있어 흥미롭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과 김진영과 아니 에르노의 산문집도 평이 좋아서 기대가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상승한다. 바람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여름이 성장하는 날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최은영의 단편 「쇼코의 미소」에 나오는 글이다. 김세희의 첫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을 읽고 나는 저 문장이 생각났다. 뭐라 설명할 수 없고 확정 짓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 그건 사랑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 감정을 가만히 떠올려봐도 그 순간 그 느낌은 단 한 사람을 향하는 사랑하는 감정이었을 게 맞다. 학창시절 우리에겐 어디든 함께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괜히 화가 났다. 왜 그랬을까?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낼 수도 있었는데 꼭 나만을 위한 친구가 있기를 바랐다. 그 바람의 바탕에 존재하는 감정을 당시에는 잘 몰랐다. 돌아보니 사랑이었다. 동성 간의 우정, 사랑, 그리고 고백하지 못한 그 마음, 모두 사랑이었다.

하루 종일 같은 교실에서 생활했는데도 헤어짐이 아쉬웠고, 나중에 같은 대학에 가고 같이 살자고 약속했다. 수업이 지겨울 때면 쪽지를 써서 건넸고 좋아하는 남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로맨스 소설을 돌려보고 남학생 교실을 지나 음악실로 향할 때는 괜히 더 걸음걸이에 신경이 쓰였다. ​이런 모든 일상이 이 소설에 있었다. 목포라는 항구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화자 ‘나’가 들려주는 그 시절에는 분명 내가 있었고, 그리운 이들이 이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쉽게 몰입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다.

반에는 그런 아이가 있었다. 언니나 오빠가 같은 아이, ​너무 예뻐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아이, 학교생활엔 관심이 없고 연예인에 빠져 선생님에게 찍힌 아이. 내가 기억하는 교실에도 소설 속 ‘인희’나 ‘민선 선배’가 있었다. 현재의 10대의 교실에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시절에만 발생하는 감정이 있고 김세희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와 정교하게 보여준다. 소설에서 연극부 동아리에서 만난 ‘민선 선배’와 ‘나’의 관계는 특별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기에 한순간도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둘을 보는 친구 규인의 시선은 달랐다. 선배와 나 사이를 인정받고 싶었지만 규인과의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다. 영원할 거라 믿었던 민선과의 관계는 끝났고 그 시절의 사랑은 서툰 감정이나 미완의 사랑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나는 내가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미래에 그녀를 잊고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었다. (98쪽)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103쪽)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일상은 지난 시절과의 이별을 원했다. ‘나’에겐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 시절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일은 비밀로 남아야 했다. 그래서 자꾸 연락을 하고 학교 앞으로 찾아온 인희가 반갑지 않았다. 인희의 변하지 않은 옷차림과 태도가 불편할 뿐이다. ‘나’는 왜 있는 그대로의 인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 비난이나 책망을 받아야 할 일이 아닌데 말이다.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은 누군가에겐 한 번도 꺼내지 못한 비밀이나 고백에 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저 사랑일 뿐인데, 여전히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이들과 동성 연인을 친구라 말하며 아파하는 이들에게 그 마음이 온전히 닿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