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열네 살 린다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그 나이의 감각을 잊어버렸다. 소녀였던 시절, 빨리 어른이 되면 좋을 것 같았고,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사랑을 기대했고 사랑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랑을 원하는 마음, 그 하나는 닮았을지도 모른다. 열네 살에서 열다섯이 되는 시기는 돌봄이 필요하다. 동시에 누군가를 돌보기에 충분한 나이다. 에밀리 프리들런드의 『늑대의 역사』에서 린다가 원한 건 돌봄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마음의 돌봄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춥고 어두운 숲의 오두막에서 린다는 부모와 함께 산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 주변의 호수에서 카누를 타거나 네 마리의 개와 달리기를 한다. 린다는 어렸을 때 모여서 생활했던 공동체를 기억한다. 어떤 계기로 그것이 실패를 돌아가고 이렇게 오두막에서 살게 되었는지 린다의 부모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골의 한적한 변두리에서 사춘기 소녀 린다에게 세상은 고요하고 시시했을 것 같다. 그래서 새로 부임한 그리어슨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꼈고 호수 반대편 근사한 통나무집에 이사를 온 가족을 몰래 지켜봤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거다. 그리어슨 선생님이 릴리 대신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릴리는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아이였고 린다는 그런 릴리가 부러우면서도 질투를 느꼈다. 결국은 스캔들로 그리어슨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

 

우리 셋 사이에는 열한 살의 나이차가 있었다. 우리는 네 살, 열다섯 살, 스물여섯 살이었다. (…) 항상 출타 중인 천문학자 남편이 서른일곱 살이라는 사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자 이제는 겁이 날 지경이었다. (116쪽)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린다에게 패트라와 폴 모자와의 만남은 즐거운 변화였다. 학교가 끝나고 네 살짜리 아이와 놀아주면서 용돈을 벌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우주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인 남편 레오는 집에 없었고 아내 패트라는 남편의 원고를 수정하느라 바빴다. 폴과 린다는 제법 잘 통했고 서로를 좋아했다. 하루하루 폴과의 놀이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리어슨 선생님에 대한 관심과 릴리를 향한 묘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린다의 인생을 흔드는 일,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폴의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떠났다. 마음은 들떴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행복했다. 폴이 기운이 없었던 것만 빼면 말이다.

 

린다가 다시 폴의 가족을 찾았을 때 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린다는 그 사실을 몰랐다. 레오와 패트라가 자신만의 종교적인 이유로 폴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재판에서 알았다. 폴의 죽음에 대한 재판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가족이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린다를 향한 질문은 너무 난해했다. 폴을 대하는 젊은 부부 패트라와 레오의 행동이 어떻게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추구했던 삶이 무엇인지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린다의 이야기는 한 번씩 소설의 첫 문장(폴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을 불러온다. 린다는 숲의 오두막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이제는 십대가 아닌 어른이다. 짝사랑 대신 원하는 상대와 사랑하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들의 행적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폴의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지울 수 없다.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명제로 말하기엔 가혹한 일이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숲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서른일곱의 린다의 마음도 알 수 없다. 비밀로 가득한 공동체 생활이나 모호하게 설명하는 패트라와 레오 부부의 신념처럼. 어른이 되면 다 알 것 같고 모든 게 선명할 것 같았던 기대는 사라졌다. 세상은 모르는 일 투성이다. 모든 성장소설이 아름다운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몸이 아픈 상태를 “맘이 좋지 않아.”라고 말한 폴을 생각하면 싱글맘과 아홉 살 아들 욘의 외롭고 쓸쓸한 일상을 그린 『아들의 밤』과 겹쳐진다. 엄마를 기다리다 겨울밤을 혼자 걷고 걷는 욘의 차가운 손을 생각한다.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아이, 스스로 자신을 달래며 무서움을 이겨내고 믿음을 키울 수밖에 없던 소설 속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들의 밤』은 성장소설로 볼 수는 없지만 욘의 느꼈을 감정은 린다의 그것과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늑대의 역사』는 누군가 필요할 때 힘든 마음과 상처를 달래줄 이가 등장하는 성장소설과 달라서 더 강한 울림을 안겨준다. 거기다 소설은 무척 아름답다. 숲이이라는 배경과 계절의 바뀌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런 문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항상 뭔가 잘못되었다. 어디를 보나 허공에 빽빽한 벌레들, 나무를 샅샅이 뒤지는 새들, 가지를 축 늘어지게 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나뭇잎들뿐이다. 여름을 억누르고, 망가뜨리고, 다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오후는 참으로 넓고도 길다. 무슨 일을 하건 그게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 (180쪽)

​이 또한 『아들의 밤』에서도 만날 수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눈이라는 소재를 차갑고도 따뜻하게 묘사한다.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소년의 움직임은 슬프고 애처롭다.

불빛을 받는 눈은 황색과 청동색을 띠고 있었고 움푹 패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숲은 고요했다. 욘은 야간 조명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동안 자신이 두려워해온 일을 극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225쪽)

 

우울과 슬픔으로 채워진 성장소설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정희의 『새』다. 소설에는 우미와 우일 어린 남매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보호한다. 외할머니, 외삼촌, 큰집, 아버지까지 어른이 있었지만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데리고 온 여자가 떠나고 아버지마저 돌아오지 않는 셋 방에서 남매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좀 더 나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내일을 바랐을 아이들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새처럼 날 수 있다고 믿은 우일의 소망이 이뤄졌기를 바란다. 죽음을 통해 새가 되었다 하더라도. 성장한다는 건 아픔을 동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이 아팠겠다고 어루만지는 다정한 손길, 든든한 어른이 없는 지독한 성장은 고통스럽다. 설령 그것이 소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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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9-07-16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눈을 홀리네요.

자목련 2019-07-16 18:24   좋아요 1 | URL
네, 독특한 표지에요. 내용도 그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