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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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언론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영화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개인 블로그를 선택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통로로 세상을 읽고 말한다. 누군가는 통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 말한다. 통로를 통해 접하는 것들이 하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크고 넓은 통로는 책이다. 책을 통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나의 감정을 진단한다. 알지 못했던 진실과 방관하고 싶었던 이슈를 향해 마음이 이동한다. 문소영의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닫혔던 통로를 열게 만들고 더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사실 예술, 문화, 사회에 대해 자신의 일상과 사유를 접목시키는 글은 많다. 문소영의 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의 바탕이 되는 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 영리함이라고 할까.

 

저자는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 6개의 주제로 나누어 42개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주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어쩌면 6개의 키워드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느리고 천천히 나를 발견한 예술가(윤석남, 박완서, 에드워드 호퍼, 세잔)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서글프면서도 용기를 불러온다. 내 안의 뭔가를 깨워도 괜찮다는 생각, 게으르면 어때?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기까지 하니 나는 부지런보다는 게으름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잖아. 그런 의미에서 불편하게나 엉뚱하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에 분노한다. 그러나 뉴스와 기사를 클릭할 뿐 댓글을 다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불편함에서 멀어지려 한다. 저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아이가 끔찍한 불행 속에 살아야 하는 이야기, 어슐러 르 권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투영한다. 조직과 나라의 위상을 위해 누군가(피해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정말 사라져야 할 일이다. 불편함을 바로잡기 위해 불편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 변화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틀안에 갇힌 것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유연하면서도 완고하다. 최근 심각하게 증가하는 청소년 문제와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왕따를 영화로 접목시켜 들려주는데 뜨겁게 다가온다. 범죄자의 엄마로서 그 책임을 다하면서도 맹목적이 사랑을 전하지는 않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모성의 다양성을 언급한다. 일방적인 사랑을 무조건 아름답다 여겼던 과거에서 벗어나 그것이 주는 비뚤어진 욕망을 「돈키호테」속 에피소드로 연결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통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현실에서 체감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다. 설령 미래에 결혼제도가 사라진다 해도 존속될 것이다. 그래서 모성의 진화와 그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117쪽)

 

그러니 하나의 기준만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고 시선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는 게 보편적인 인생이라 여기고 강요하지 말라는 거다. 언제 강요했냐고 따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옆집 누구, 엄마 친구 누구, 친척 누구로 시작해서 명절이면 어른이라는 쓸데없는 귄위를 내세워 강요를 쌓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라고 말하는 말은 그동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냥 다 같이 나대고 다 같이 잘난 척하면 안 될까? 서로의 나댐, 서로의 잘난 척을 관용하면서 ‘나도 잘나고 너도 잘났어.’. ‘아, 나 특이해. 어, 너도 특이해.’의 마인드로 산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166쪽)

 

우리는 한 번씩 쉽게 내뱉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진로를 결정하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격려라는 말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말들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운 멍에로 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좋은 의도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사회 곳곳의 고민과 어려움을 자상하게 들여다보는 저자의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다. 그 시선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산다는 건 불편하고 힘든 일 투성이며 자주 무너진다는 걸 알면서도 힘을 내자는 거다. 진심으로 사랑하며 지켜봐 주고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처럼.

 

기억되는 것, 그건 결국 사심 없는 사랑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275쪽)

 

나의 시선은 책을 읽기 전과 달라졌을까? 당당하게 답할 수 없지만 조금은 그렇다 말하겠다. 그리고 상상한다. 세상을 향한 통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을 향했으니 세상이겠지만 그 길에는 다채로운 삶이 가득하다. 다양한 삶이 어우러져 만드는 다채로운 삶을 그린다. 나의 시선이 닿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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