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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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을 읽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글쓴이와 일면식도 없는데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아는 사이가 된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비슷한 세대라서 글에서 나온 일상이 내가 겪은 그것과 같을 때, 같은 장소나 같은 물건에 애정을 드러냈을 때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글쓴이에 대한 애정이 과한 경우다. 그러니까 김애란 작가가 쌍둥이라는 걸 알았을 때 쌍둥이 조카를 생각하며 흐뭇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잊기 쉬운 이름』을 읽으면서 반가운 마음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닌 소설이 아닌 그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작가 김애란이 아닌 보통의 김애란의 글이 궁금했다고 할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미 김애란은 유명한 소설가이기에 우리에게 김애란의 글을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산문집에서 김애란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만나는 일은 좋았고 소설가 뒷면에 가려진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상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서 혼자 상상했던 이미지를 실체를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은 나만 느낀 건 아닐 거다. 초기 단편집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델이 그녀의 부모라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 그녀의 수상 소식을 동네에서 전부 알고 함께 내일처럼 기뻐했다는 게 친근했다. 어머니가 운영한 칼국수집 ‘맛나당’의 구조를 알 것 같았고 바쁘게 칼질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묻어 있는 흥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장에서 전해지는 체온이랄까. 하루하루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마시는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작가처럼 글을 쓸 수는 없지만 같은 표정을 짓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13쪽)

한때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던 거실에는 어둠과 침묵이 짙게 깔리고 이제는 미움도 사랑도 희석된 채 이따금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만이 오도카니 남았다. (111쪽)

지나온 시절에 대한 과대 포장이 아닌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표현이 그리움을 잘 드러내는 법이다. 노년의 부모가 특별한 놀이가 없는 저녁에 화투를 치는 일상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추억인데 어느 순간 그 추억의 주인이 나로 바뀌는 걸 느낀다. 어디에서나 삶은 비슷하게 닮아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고백엔 맞장구를 치고 만다. 아마도 한 번은 부사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부사의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부사는 왜 이런 대우를 받는 존재가 되었을까, 혼자 부사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면서 좋을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부사에 대한 압박(?)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하는 것이다. 작가와 부사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부사를 적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고 그냥 읽는 독자라서 다행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부사가 걸린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87쪽)

특정한 장소, 좋아하는 책, 친하게 지내는 동료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산문집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맛이다.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박완서를 향한 글에서 친밀감이 전해진다. 사적인 관계이며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친목과 만남이 궁금한 건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니까. 반대로 우리 사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글에서는 작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의 글을 읽고 공감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이들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아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141쪽)

 

읽으면서 설레고 감탄했던 문장은 많다. 하지만 그 여운이 오래가는 문장은 많지 않다. 발랄하면서도 달콤했던 문장은 김애란의 것이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도 이름이 있다면 김애란의 문장이겠다. 지나친 감상이라도 지금 이 순간엔 괜찮다. 여름을 말하는 게 아닌데도 여름이면 생각나는 문장, 여름을 닮은 싱그러움을 읽는다. 여름이니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것은 나무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고 가지로 손을 흔들면 안도하고 계절이 뒤따라온다. 봄이 되고 싶은 봄. 여름이 하고 싶은 여름. 가을 혹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봄’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머지는 나무가 알아서 한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문제지를 받고, 정답을 모르면서 정답을 쓴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두근두근 내 인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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