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라, 비둘기
김도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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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은 ‘불안’, ‘권태’, ‘우울’이란 단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해 준 작가다. 『불안의 황홀』이라는 산문집은 말할 것도 없이  소설집 『랑의 사태』에선 (위협받는 포로처럼 우울해요. 눈에 에워싸인 당신의 복사뼈처럼 우울해요. 한쪽 발을 잃은 마네킹처럼 우울해요. p.118)처럼 황홀한 우울을 전염시킨다. 그는 우울과 권태란 단어가 가진 고귀한 진심을 들려준 것이다. 그러니 신작 『꺼져라, 비둘기』를 읽으면 살짝 당황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당황함은 이내 기분 좋은 유쾌함으로 바뀌었다.  

 『꺼져라, 비둘기』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소설에서 비둘기는 정말 꺼져버려 마땅한 존재다. 선악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사적 견해라는 부제를 통해 비둘기는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고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은 작은 읍 토담리란 동네에서 비둘기로 인해 변화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 두 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전반의 화자는 이산으로 고교 씨름 선수였는데 시합 중 사고로 씨름을 그만두고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도와준다. 그는 사고 후 ‘서번트 증후군’을 앓게 된다. 후반의 화자는 시인 영만으로 그는 이산에게 멘토 같은 존재이다.

 이산의 부모님은 토담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토담집은 비둘기 해장국집으로 바뀐다. 토담리는 평범한 동네로 평화로운 곳이었다. 비둘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비둘기가 등장하고 근처에 타이어 공장이 생기면서 외부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선과 악의 두 부류로 나눠진다. 비둘기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다.  비둘기가 많아지면서 어디서나 비둘기 똥이 가득하다. 낮게 날아다니며 노약자를 위협하고 노점상인이 늘어 놓은 물건에 똥을 싼다. 하여 노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노점상은 사라졌다. 대신 목욕탕과 세탁소는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다.  여기에 오토바이 가게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오토바이 천국이 되어 버렸다. 짐작했듯 오토바이 주인 역시 악의 집단에 속한다.

 ‘비둘기 추방을 위한 주민들의 모임’을 이끄는 한의사 고붕 내외와 시인인 그의 아들 영만과 세탁소, 목욕탕, 오토바이 가게를 제외한 꽃집이나 자전거 가제 주인은 선의 집단이다. 그렇다면 이산의 가족은 어떠할까? 이산과 친척 누나 실래는 약자이며  선이고, 경제권을 쥐고 이익만을 추구하며 아버지를 농락하는 새엄마와 실래를 괴롭히는 그의 아들 만세는 악이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격을 지닌 전직 씨름선수인 이산의 아버지는 모호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그 자체로 소설의 중심이며 소설의 전부라 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과 사고나 선과 악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은 악에 비해 대부분 늙고 약자이다.  작은 무리의 선은 악을 이겨낸다. 대표적으로 불량한 만세로부터 실래를 보호하는 영만이 그러하다.   

 특이한 점은 전반과 후반이 끝나며 등장하는 소설가이다. 소설가와 등장인물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역할이나 소설의 흐름에 대해 말한다. 『꺼져라, 비둘기』는 사건의 구성이나 발단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입장은 모두 다르다. 이런 소설을 쓰게 된  소설가의 진심을 듣는 시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소설 속에서는 시도 들어갈 수 있고 사진이나 악보도 들어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소설은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간 시마저도 빨아들일 수 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소설이 빨아들이는 것들 중에는 유의미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무의미한 것도 있다는 거예요.’ p. 135

 소설 속에서 선은 악을 이긴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악을 이기는 게 선이며 결국엔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이 올 꺼라 우리는 믿고 싶은 건 아닐까. 선과 악은 어떻게 존재하기 시작했으며 선은 정말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지녔는가 묻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아니,  소설이 우리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독자가 그 답을 해주길 기다리는 건 아닐까.  그가 말의 운명에 대해 쓴 글에서 말 대신 선과 악을 넣어 읽어 보았다. 선과 악은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되는 거라 생각한다.  정의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어떤 말이든, 그것의 운명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태도나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 사이의 긴장에서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p. 47  

 ‘정의는, 말하자면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악이 그런 것처럼 선도 지식의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이 먼저 가서 상대의 눈과 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그 높이는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순간 그냥 딱 들어맞는 것이다.’ p.248 
 
 선과 악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놓고 보면 심오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지극히 맑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소설이다. 바로 영만의 역할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나란히 길을 걸을 것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며 별을 함께 바라볼 것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만의 길을 만들 것이다.  이 길의 초입에, 삶이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삶을 비겁으로 내몰지 않는 바르고 착한 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불을 켜둘 것이다.’ p. 196  

 소설에 흐르는 아름다운 글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사랑에 대한 시)읽는 건 정말 황홀하다. 작가 김도언은 시인을 통해 그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내게로 전해진 기분 좋은 즐거움을 많은 이가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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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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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에 대한 연민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그들에게서 나의 일부를 보았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나를 돌아보기에도 벅찬 생이다. 타인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바쁜 시간들 속에 우리의 심장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삶이 있다. 때때로 그들은 상처로 첨철된 지독한 불운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느끼는 연민은 어떤 안도로 부터 시작된 가식인지도 모른다. 조해진의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는 전작 『천사의 도시』나 『한없이 멋진 꿈에』를 통해 만났던 부서질 듯 위태로운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 그 이야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란 문장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순간,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속 인물과 이니셜 L이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간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은 방송작가인 ‘나’가 벨기에에서 떠도는 탈북인에 대한 기사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브뤼셀에 도착해 마주하게 되는 삶과 존재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무엇이 나를 벨기에의 브뤼셀로 이끌었을까.  어쩌면 작가는 그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시청자의 후원을 이끌어 내는 원고를 쓰는 ‘나’는 L을 도와준 한인 박의 도움으로 그의 흔적을 따라 나선다. 소재의 특별함 때문이었을까, 작가는 과하지 않게 보고 들은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 L과 ‘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담담하게 기록한 일기를 통해 ‘나’가 L이 되었듯 말이다.  

 일기에 적힌 거리를 걷고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머물렀던 숙소에 누워 그가 된다. 단지 이방인으로 느꼈을 두려움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을 짓누르는 두려움을 이겨냈어야 할 그를 떠올리며 ‘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불치병과 가난으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며 느꼈던 감정들, 그들을 대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진심이었는지,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로가 한참을 기대어 울다간 그 담벼락의 구체적인 위치를 사실 나는 알지 못한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오래오래 걸었지만 로의 환영은 손끝에 닿지 앟는다. 어느 순간 힘이 빠지면서 나는 스스로 주저앉는다. 이쯤에서 나도 그만 울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가족이나 동료들이 동참할 수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가면을 뒤집어쓴 채. 그 누구의 따뜻한 위로도 받지 못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p.93

 소설은 북한을 탈출한 스무 살 청년이 낯선 땅 벨기에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말한다. 작고 마른 체격의 탈북 청년이 한 마다의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견딜 수 있었던 건 희미하고 불확실한 기대였을 것이다.  자유를 향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얼마나 냉담한지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삶이었다. 그러나 존재를 확인 받아야 할 대사관에서는 그의 존재를 믿어주지 않았다.  이니셜 L에서 로기완으로 불려질 때까지 지난한 시간들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인 사람에게 미래는 선택할 수 없는 패가 아니다.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선택되어버린 길을 가야 한다는 단순한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순간 순간 불안해하면서, 사소한 기쁨은 포기하기도 하면서, 절대적으로 안전하지 않으나 절대적으로 위험한 길보다는 무언가 하나라도 더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가고, 걷고, 결국엔 살아남아야 한다는 빈약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의무. p.166 

 로기완을 만나기 위한 여정은 나의 정체성과 마주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짙게 깔린 슬픔이 사라지고 잔잔한 미소가 나타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그 시간이 길고 고통스러웠기에 더 환한 빛을 내는 것이리라. 타인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물론 섣부른 연민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누군가에겐 타인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의 삶을 그냥 지나쳐 버려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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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2-17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로 제작된다 해서 관심 가지고 있어 검색해 봤는데 자목련님은 역시 안목이 있으셨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3-02-17 11:54   좋아요 0 | URL
이 소설 발표되고 바로 송중기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들었는데 12년이 지나서촬영을 시작하네요.
개인적으로 조해진의 초기 소설의 분위기나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선을 좋아해요. 물론 요즘 소설도 좋지만요.
 
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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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운영은 소설집 『그녀의 눈물사용법』을 통해 처음 만났다. 단편은 하나같이 강렬했다. 기쁨보다는 슬픔, 절망에 가까운 삶을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를 만날 수 있다. 뒤이어 『나는 가짜다』에서 만난 자화상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해서, 그녀의 소설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졌다.  하성란의 <책을 삼키는 TV>에 출연한 천운영은 장편 『생강』에 대해 고문 기술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생강은 누구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쓴맛을 누구에게는 아주 생소한 신맛을 안겨줄 것이다. 사건을 기억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겐 어떤 맛으로 다가올까. 

 망설이지 마라. 돌이킬 수 없다. 놈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마라. 놈은 돌멩이다. 나무다 풀이다 미친 당나귀다 개다 염소다. 저것은 그냥 돌멩이일 뿐이다. 돌멩이에서 눈물이 흐르게 해라. 통제력을 잃지 마라. 감정을 들키지 마라. 냉철해야 한다. 흥분하지 마라. 얼음 가면을 써라. 들끓는 피를 차갑게 식혀라. 숨소리조차 감추어라. 땀도 흘리지 마라. 신음소리도 내지 마라.’ p.10~11   

 가슴을 쓸어 내리는 두려움을 지닌 잔인한 문장이다. 그러나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다. 단문이 지닌 매력이 이런 거구나 감탄한다. 천운영은 이렇게 나를 사로잡는다.  소설은 간결하면서 힘있는 문장과 빠른 전개로 진행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과 맞닥뜨릴 공포는 이내 사라졌다. 천운영이 작정하게 쓴 게 분명하다. 잠시 숨 고를 틈도 없이 독자를 그녀가 이끄는 대로 빠져든다. 
 
 소설은 고문 기술자인 아버지와 대학 입학을 앞 둔 딸 ‘선’의 시선을 교차로 들려준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부심을 가졌던 아버지,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애국자였다. 그가 마주한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였고 빨갱이였다. 그가 직접 사람을 죽인 게 아닌데 세상이 지목하는 살인자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가족, 동료, 친구 할 것 없이 세상 어디에도 내 몸 하나 믿고 숨길 곳이 없었다. 쫓기던 그는 결국 딸의 다락방으로 숨어든다.  

 언제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던 아빠가 잔인무도한 고문 기술자라였다니, 선이 알고 있던 진실과 세상의 이야기는 너무 달랐다. 사람들은 선을 고문기술자 딸로만 보려 한다. 경멸 가득한 차가운 시선이 선을 가둔다. 선을 알고 싶다. 과연 내 아버지의 실체가 무엇인지. 집과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들이 말을 믿을 수 없다. 진실은 누구에게서 들어야 하나. 그런 선에게 다가온 한 남자.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한 남자,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살고 싶어서 거짓을 말한 남자가 선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없이 다정다감한 아빠가 악마였다니, 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선의 모든 보물과 비밀로 채워진 다락방에서 아빠가 산다. 그 아래에선 선이 그를 증오한다. 최소한의 물품도 제공하고 싶지 않다. 딸과 숨막히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제 더이상 아빠와 딸이 아니다. 서로를 죽이려 하는 적수일 뿐이다. 선은 그에게 추위와 공포를 견디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선은 그에게 고통을 가한다.

 저것은 내 아빠가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성난 짐승이다.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 잡아다놓은 썩은 고기다. 눈알이 빠지고 내장이 파헤쳐진 먹다 남긴 고깃덩어리. 아니다. 저것은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파리떼다. 윙윙윙윙 더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아니다. 저것은 파리가 까놓은 구더기다. 살을 뚫고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징그러운 구더기다. 썩은 내가 난다.’ p.176~ 177 

 다락방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아버지와 딸의 심리 대립이 탁월하다. 언제 충돌이 일어날까 긴장감은 점점 고조된다. 그러나 천운영은 오히려 감정과 감정이 부딪혀 폭발하게 두지 않는다. 각각의 내면 갈등을 그릴 뿐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그럴까. 용서나 이해는 꺼내려 않고 흘러가게 둔다. 과연,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고 누구를 이해할 것인가. 생강의 참 맛이 무엇이다 말해 줄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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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는 생일 주간이었다.(이웃님의 표현을 빌려왔다.) 그러니까 생일이었던 4월 9일을 포함한 주가 되겠다.  생일 하루 전에는  고교 선배인 J 언니가 달콤한 케익을 들고 찾아왔다. 차를 마시고 그간 나누지 못한 일상을 들려주고 들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대해 시와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전에 고운 스카프가 먼저 도착했다. 내가 사랑하는 C가 보낸 것이다. 목이 아닌 손목에 둘렀다. 맨 살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말이다. 당신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고마운 나의 그대, 사랑해!!    

 

  

 큰 언니가 사서 택배로 보내준 커다란 블루베리 컵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블루베리와 딸기 두 가지다. 무척 갖고 싶던 컵이라 아주 좋다. 어떤 날은 녹차를 마시고, 어떤 날은 커피를 마시고, 어떤 날은 맥주 컵 대신 맥주도 마시고 싶은 컵이다. ㅎㅎ 과한 소비인지 모른다. 적어도 내겐 말이다.  저 컵을 구매하는 대신 책을 샀더라면 몇 권을 샀을까 생각을 했으니까. 



  

 생일 주간 내내 미역국을 먹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랬다. 해서, 정작 생일날 아침엔 미역국을 먹지 못했다. 날씨는 화장했고 기분도 좋았던 날이다. 저녁엔 외식을 했다. 때마침 식당에서 미역국이 나왔다. 가족들과 함께 먹는 저녁이라 더 좋았다. 생일도 365일 중의 하루일 뿐,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일 수 있다.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말이다. 그네들의 마음이 모아져서 나는 행복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당신들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 거하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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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4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5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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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단아하면서도 슬퍼 보인다. 단순히 표지와 제목만 보면 연애소설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회귀천 정사』속 ‘정사’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의 정사는 ‘情事’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해 함께 자살하는 ‘情死’다. 다르게 말하면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 죽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이며 그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무엇일까.   

 추리소설이라면 섬뜩하고 기묘한 게 당연하다. 꽃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라 그런지 표제작 <회귀천 정사>를 포함한 5편의 소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누가 무슨 이유로 살인을 했느냐 보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꽃(등나무꽃,  도라지꽃, 오동나무 꽃, 연꽃, 창포꽃)이 갖는 의미와 향기에 주목한다. 때문에 살인 방법마저 잔인함이 아닌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연쇄 살인사건과 범인을 먼저 밝히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등나무 향기>,어쩔 수 없이 환락가에 들어온 한 소녀의 사연을 들려주는 <도라지꽃 피는 집>은 슬픔이 가득하다. 소설 속 여자는 가난 때문에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겐 아픈 부모가 있고, 돈이 필요한 형제가 있었다.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런 기구한 사연을 알게 된 대필가는 그녀들을 가족이란 올무로 부터 해방시킨다. 자신이 폐결핵으로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에, 살인이라는 과감한 방법을 선택한다. 

 야쿠자 세계에 발을 딛게 된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그린 <오동나무 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기억하고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는 <흰 연꽃 사찰>, 사랑하는 한 여자의 사랑을 얻으려 자신을 연모하는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애달픈 <회귀천 정사>. 그들은 누군가를 사랑했기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 했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소설은 모두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특히 어린 시절에 대한 일들을 어머니가 의식적으로 주입한 기억이었음을 알고 자신의 성장과정에 의문을 갖는 <흰 연꽃 사찰>과 오직 단 한 사람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천개 가인 소노다의 주도면밀한 계획이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회귀천 정사>는 더욱 그렇다. 모든 사건의 비밀을 알아차리기에 문장은 너무도 아름답다.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색다른 소재여서 소설을 읽는 동안 어느새 꽃을 묘사한 문장에 빠져든 나를 본다.  

  다양한 문양을 그리는 흰색과 보라색 꽃으로 어둠 속 강은 꽃무늬 옷을 두른 것처럼 보였다. 눈 앞을, 덧없는 선을 그리며 어둠에서 다시 어둠으로 흘러가는 꽃들은 마치 소노다가 남긴 수천 수의 노래를 이루는 무수한 언어의 잎으로도, 소노다와 정을 나눈 여자들 속에 남아 있던 생명의 빛으로도 보였다. p.  359 <회귀천 정사 중에서>

  5편의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인 1912년에서 1926년까지 일본은 정치 및 경제가 불안했고 대지진이 일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소설 속 인물이 갖는 모호함과 불안은 시대적 배경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누군가의 손에 꺾이는 꽃처럼 살아야 했을 것이다. 꽃을 사건의 중심에 놓았기에 추리의 끝은 꽃으로 매듭 지었다 볼 수 있다.

 그저 단순하게 추리소설이라 여기며 읽었던 마음이 마지막엔 짙은 빛이나 투명한 느낌의 유화를 마주한 듯하다. 아마 두 번째 읽게 된다면 꽃잎 하나 하나에 숨겨진 복선과 슬픔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묘하고 오묘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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