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빈터 작가정신 소설향 7
최윤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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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 전나무가 가득한 황홀한 숲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숲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최 윤의 <숲 속의 빈터>에서는 악몽으로 존재한다. 동거를 결정하고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온 젊은 연인에게 짙은 녹색은 점점 공포로 다가온다.

 

 서울 근교에서 직장에 다니는 민구와 진희는 지나치게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살기 위한 집을 찾는다. 마을과 조금 떨어졌지만 전망이 좋은 집을 얻고 애완견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목욕탕만 있다면 완벽한 삶이라 믿은 그들은 직접 목욕탕을 짓기로 한다. 도시에서 벗어난 한적한 삶, 그들을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러다 건너편 숲 이층집에서 벌거벗은 남자의 등장으로 그들의 일상은 흔들린다. 남자의 기분 나쁜 행동으로 진희는 점점 혼자 집에 있기가 두렵다. 진희의 말을 믿지 않았던 진구도 직접 목격하고서야 사태를 파악한다. 이상한 건 마을 사람 누구도 이층집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집을 구해준 복덕방과 이장집에서도 잘못 본 것이라고 말한다. 택시 기사도 숲 근처까지는 오려 하지 않고 목욕탕 배수관공사 업자도 방문을 꺼리는 것이다. 마치 모두가 어떤 사실을 함구한 듯 말이다.

 

 진희의 계속되는 부탁으로 배수관공사를 하러 온 사람은 왜 이 집을 얻었냐고 묻는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무서운 사건에 대해 들려준다. 군인이었던 이층집 남자가 총으로 마을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다. 마을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했던 남자는 그 사건으로 토지를 돌려주었다. 하지만 남자는 정신분열로 감옥에서 나온 후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도 그 집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다.

 

  “일 빼기 일은 얼만지 알아요, 젊은이들? 일을 뺏겼다가 일을 다시 얻으면 얼마나 될지?”

  “네……?”

  “다들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영이라 할 테지. 그렇지만 아니야. 마이나스 일이야. 여기서는 그렇게 셈한다구. 결코 메워질 수 없는 마이너스 일이지……” (78~79쪽)

 

 배수관공사 업자의 말대로 이제 민구와 진희에게도 마이나스 일이 되었다. 정말 그 숲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과거 사건으로 사람들은 이층집과 남자가 나타난 숲과 빈터에는 발길을 끊었지만 그곳이 삶인 민구와 진희는 달랐다. 여관과 친구집을 전전하다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남자의 존재는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숲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그저 하나의 빈터에 불과했다.

 

  ‘몸이 노곤해지는 걸 느끼면서, 우리는 봄이 되기 전에 빈터에 전나무를 심어버리는 것은 어떤가, 그런 얘기를 했다. 늦은 가을 쯤에. 빈터에 나무를 심겠다는데 반대할 사람 있으면 나오라지. 마을사람들은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곳에는 늘 빈터가 있었으니까. 숲 속의 빈터란 수도 없이 널려 있으니까.’ (84쪽)

 

 최 윤은 90쪽 안팎의 아주 짧은 소설에서 우연이 일상을 어떻게 와해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 우연은 과거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나무 숲이 간직한 과거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현재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민구와 진희처럼 빈터를 메우면 과거는 사라질 수도 있다. 한 번에 메워지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더 메우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일상을 지키려는 의지와 지속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삶에서 채워야 할 빈터의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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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디바 2014-12-0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윤 작가님을 참 좋아합니다. 깊이 있는 문장과 섬세함...

자목련 2014-12-04 17:11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최윤 작가 님 고유의 섬세함을 저도 좋아해요.
 
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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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편린이 모여 만들어지는 삶, 그 삶의 내밀함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만난 건 정말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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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0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가슴 뭉클하게 하는 글이네요^^
집에 전시만 해놓았는데 당장 읽어야겠습니다.

자목련 2014-12-04 17:12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행복하게 만나시길 바라요^^

라로 2014-12-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얼마전에 이 책 사왔는데!!!기대기대

자목련 2014-12-04 17:12   좋아요 0 | URL
완전 좋았어요. 기대 이상으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댈러웨이 2014-12-04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읽고 다른 두권의 단편집

댈러웨이 2014-12-0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 샀어요. 아C, 잘못 눌러서 두 개로 올라가요. ;; <아문센> 좋았어요. ^^

자목련 2014-12-04 19:40   좋아요 0 | URL
단편집 <런어웨이>도 좋아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아직 읽지 못했어요.
여긴 세상이 하얀색으로 변해버렸어요. 나흘째 이어지는 폭설이라 이젠 좀 무서워요.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442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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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슬픔으로 가득한 올해 나희덕 시인의 시가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마운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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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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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신비한 여정이라고 할까요. 강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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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동생이 선물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표지가 우표로 사용된 책이다. 좋아하는 언니에게 내가 선물한 책은 어떤 우표가 붙은 책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께 밤 언니는 책을 잘 받았다며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그 밤에 김연수의 산문집에 대한 짧은 기대를 나눴다.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언니의 이런 문자를 받았다.

 

 - Y야, 여기는 비오는 아침이야. 보내준 책 너무 유쾌한 걸? 완전 좋아. 고마워! -

 

 김연수를 말하는 하루다. 언니와 나는 김연수를 함께 만나고 서로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예쁜 동생을 생각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 사람들이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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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1-28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산문집 읽고났더니 김연수 작가님 팬이 되었어요그리고 선물해주고픈 사람도 떠오르더라구요

자목련 2014-12-01 10:13   좋아요 0 | URL
김연수 작가 님 정말 좋아요. 선물을 받으시는 분도 기뻐할 책이 아닐까 싶어요^^

댈러웨이 2014-11-2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표 사진이 다 다르다는 건 몰랐네요. 전 <4월의 미 칠월의 솔>.콜렉션 들어가야하나요? ㅎㅎ 자목련님, 김연수 산문집 중 최고. 즐독하시기를요.

자목련 2014-12-01 10:12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 님!!!!!!!
잘 지내셨나요. 아니 잘 지내셔야 해요. (횡설수설...)
몇 개의 계절이 지났는데 댈레웨이 님은 봄처럼 반갑고 환해요.

김연수 산문집 중 정말 최고인가 봐요. 여기 저기 끊이지 않아요.
여긴 눈이 마구 쏟아져요. 검게 물든 하늘이 정말 예뻐보여요.
아, 정말 반갑고 반가워요!!

게라심 2014-11-29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표랑 표지 색상, 이 디자인이 제일 이쁜 것 같아요.

자목련 2014-12-01 10:08   좋아요 0 | URL
다른 디자인도 갖고 싶게 만드는 마케팅,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