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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 호러 × 제주 ㅣ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평점 :
감사하게도 그믐 서평단에 선정돼서 읽고 리뷰를 쓴다. 그믐에서 나는 '가리봉탁구부'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다.
회사 때문에 제주에서 2년 반 정도 거주한 경험이 있지만 4.3이 이렇게나 오랜 기간 지속된 사건이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책의 첫머리에 배치된 단편인 '말해줍서'를 통해서 알게 됐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재수의 난'도 소재로 여러 번 나왔다. 이재수의 난은 영화 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4.3만큼이나 제주 분들에게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살면서 도민 분들이 외지 사람들을 간혹 불편하고 틈을 주지 않으시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 이유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이 비극적인 사건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모든 작품이 다 좋았지만 여섯 번째 이야기인 사마란 작가님의 라하밈을 특히 몰입해서 읽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2016년부터 2년 반 정도 제주에서 살았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연동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고 지나다 연동 성당 건물도 자주 봤다. 또 어렸을 때는 꽤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관련 용어들도 익숙하다. 스테파노의 정체를 추측하며 읽어 나가다 그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짜릿한 반전의 묘미를 느꼈다. 또 실제 구마를 전문으로 하는 신부님이 있는지도 궁금해서 모임에 질문으로 올렸는데 실제 존재하며 교황청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고, 작가님이 직접 답을 주셨다. 중간에 소녀가 강 신부에게 하는 행위를 묘사한 부분은 1Q84가 생각나기도 했다. 여러모로 푹 빠져서 재밌게 읽었다.
책에는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제조 서쪽에 치우쳐 있다. 다섯 번째 단편인 '등대지기'의 배경이 제주도 동남쪽 등대섬이기는 하지만.. 혹시 다음 편이 나온다면 동쪽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으면 한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구좌읍 종달리를 비롯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등대지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유일하게 과거의 아픈 역사와 연결돼 있지 않은 현대 배경의 작품이다. 외딴섬에 갇혀서 2년 만기 근무 시 2억 지급이라는 조건부터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중간에 한 번의 반전이 있었고, 다시 한번 반전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읽어 나갔으나 마지막 결말은 참 가슴 아팠다. 뿌연 안개 속에 살았던 나의 20대와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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