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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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도 매일매일 실천이 어렵다. 어떤 날은 성경만 읽는 것으로 끝난다. 처음부터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해야 한다는 다짐이 없었기 때문일까. 배철현 교수의 『수련』을 읽으면서 나는 그 순간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를 수련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이며 오로지 나 스스로 나를 단련해야 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수련’이란 제목과 수련을 위한 방법으로 지금, 도장, 분노, 시기, 귀향, 시련,일치 등 28개의 단어와 아포리즘으로 정리한 내용을 보면 이 책은 일종의 자기 계발서 인듯 하면서도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글이고 심연을 울리는 짧은 에세이 같기도 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이는 스트레칭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바로 화장실로 갈 것이고, 어떤 이는 잠을 붙잡는다. 눈을 뜨면 맞이하는 아침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언제인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배철현 교수의 글은 어떤 식으로는 따끔한 조언이다. 잘못한 학생을 꾸짖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말씀 같다. 게으른 일상, 다음으로 미루었던 일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듯하다.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주저하는 나 자신을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을 책망하는 듯하다.

 

 최선을 지향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가 희구하는 천국이다. 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나는 그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초와 다를 바 없다. (「지금」, 18쪽)

 

 수련은 일상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양적인 시간으로부터 나를 탈출시키는 연습이다. 빅뱅이 일어났다는 137억 년 전이나 이 글을 읽기 시작한 5분 전이나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모든 길이는 순간일 뿐이다. (「도장」, 31쪽)

 

 책을 읽는 내내 벌을 받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말이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기도 했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어떤 계기가 된다. 어떤 책이든 상황과 맞아떨어질 때가 있기 마련인데 요즘의 나의 상태와 이 책의 글귀가 그런 경우이다. 고전문헌학자답게 책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단테의 『신곡』, 스토아 철학자,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 예수, 다양한 고전을 해석하여 현재의 우리의 삶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목숨을 건 전투를 마치고 하루하루 기록한 일기인 『명상록』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으로 시련을 설명한다.

 

 시련은 인간을 완성시키는 훈련이다. 시련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당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련을 피하게 위해 애쓰는 사람인가, 아니면 미래의 자신을 위해 시련을 기꺼이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시련은 수련자의 유일한 지름길이다. (「시련」, 229~230쪽)

 

 누구도 시련을 기다리지 않겠지만 시련을 통해 우리가 성숙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시련이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성공된 삶이 아니라 잘 살았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위한다면 수련의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스스로 지키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기쁨을 전한다. 시골로 이사 온 후 마당에 심은 능수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다시 죽음을 통해 새로운 봄의 부활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연결해 회귀, 귀향을 언급한다. 계절에 따라 삶과 죽음을 순환하듯 살아가는 능수벚나무, 10년의 시간에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인간의 생도 죽음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대단한 업적을 쌓거나 부를 위한 수련이 아닌 자신의 삶을 다스리고 지키기 위한 수련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를 위한 간절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은, 무아의 상태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검지의 힘에서 나온다. 당신의 고귀한 생생각을 실천할 지금이 바로 당신의 결정적 순간이다. (「일치」, 287쪽)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고요한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하루를 여는 시간에 자신을 위한 다짐의 도구, 혹은 하루를 마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나를 수련하는 방법, 망설이는 이들에게 그 시작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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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보러 간다는 건 어떤 볼 일을 보러 나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고 나는 꽃이 아님에도 꽃단장을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꽃을 피운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지는 꽃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여유로움, 그리고 마주한 꽃터널.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장소가 있었는데 나는 왜 이제야 이 꽃들을 만나러 왔을까.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든 순간이다. 늦은 오후에 누리는 호사였다.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이렇게 귀한 것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게으름과 우울, 무기력으로 봄을 앓던 나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꽃이 지고 초록의 옷을 입은 터널을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다짐했다. 꽃 피는 봄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그곳에 있을 나무를 보러 오겠다고.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단지를 보니 자목련도 활짝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더욱 우아해 보였다. 거기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주말에는 비가 오고 꽃비가 내릴 것이다. 그리고 봄은 급하게 떠날지도 모른다. 붙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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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1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벚꽃과 자목련이네요. 여긴 목련이 이제 피는 중이고, 아직 자목련은 조금 분홍빛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번주도 벌써 금요일, 자목련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4-16 14:26   좋아요 0 | URL
주말에 내린 비로 꽃이 지고 연두 잎사귀가 환해요.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보내세요^^

붕붕툐툐 2018-04-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찍으신 자목련 사진. 우힛~^^

자목련 2018-04-16 14:25   좋아요 0 | URL
^^*
붕붕툐툐 님,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2018-04-13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 남들보다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한 심리수업
피터 홀린스 지음, 공민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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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에서나 학교에서 아주 활발한 이가 집에서는 아주 조용한 경우가 있다. 쩔 수 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사회활동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상황이든 항상 활발한 경우도 있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대체로 이를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나름 그에 맞게 상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드러나는 성향이 진짜일까. 속마음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남들의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한 이의 속마음은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남들보다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한 심리수업’이라는 부제를 지닌『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이 그 안내서가 될 것이다. 미국 최고의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는 적절한 예시와 다양한 실험(뇌의 화학작용) 결과를 통해 성격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연애, 조직생활, 행복에 대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려준다.

 

 이 책은 내향적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책처럼 보이지만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그러니까 성격 유형에 관하여 알아보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즐겁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의 기본적인 특징을 소개하고 그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사항을 알려준다. 아마 이 몇 가지 사항만 읽고도 주변의 친구나 동료에 대한 오해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존중하자. 만나자고 했을 때 거절을 당하더라도 섭섭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 내향적인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불편함을 느끼기 쉬우므로 적응할 시간을 주자.

 · 내향적이라 그런 것일 뿐 무관심하다거나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33~34쪽)

 

 · 외향적인 사람이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소통을 많이 할수록 기운을 더 많이 충전할 수 있다.

 · 외향적인 사람은 실전 경험을 많이 쌓은 덕에 뛰어난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것이 사회활동에서 빛을 발한다. 이것이 외향적인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내향적인 행동 경향을 보일 수 있다. (48~49쪽)

 

 상대의 성향을 알고 만나는 것과 모르고 만났을 때 관계는 달라진다. 성향을 안다는 건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다.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점을 쉽게 간과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알면 대화의 폭이 넓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싫어가는 것을 알면 말과 행동을 조심할 수 있다. 관계란 이처럼 어렵고 힘든 것이지만 노력해야만 한다. 삶이란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것이니까.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양향성(외향성과 내향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되어야 한다.

 

 외향성과 내향성 사이를 영원히 왕복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균형을 얻을 수 있다. 넘치는 활력과 자아 탐험 두 가지는 모두 중요하며, 반드시 행동을 보여야 할 때도 반드시 침묵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양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진정 아름답게 만드는 주체다. (65~66쪽)

 

 우리는 때로 자신의 마음을 읽기도 힘들 때가 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며 주변 상황과 타인의 시선에 의해 흘러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떤 성격인지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던 마음 조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책에서 소개한 한 장면처럼 즐거운 파티에 가고 싶지만 두려운 마음, 친구들과 모임을 이어가면서도 어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 말이다. 어쩌면 두 마음을 다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타고난 성향 때문에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성향으로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성향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니 자신의 장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성격 유형이라는 틀에 놓고 살필 때는 여러 가지 소소한 차이가 있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반직관적인 측면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각자의 고유한 성격을 좀 더 깊이 살피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복잡하고, 잠재의식의 영향을 얼마나 강하게 받는지, 성격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알아야 한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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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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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설에 대한 작가의 글과 각기 다른 평론가의 글을 읽는 일도 흥미롭다. 김세희, 최정나의 소설을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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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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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 것인가, 계획하지 않고 그저 살아간다. 누군가는 불성실한 것 아니냐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럼, 하루를 잘 사는 게 계획이라고 슬그머니 말한다. 하루를 사는 건 너무 어렵고 금세 지나간다. 월 단위, 년 단위의 계획을 세우지만 대체로 무리한 계획인지 아니면 늘 등장하는 변수 때문인지 계획은 뼈대만 남을 뿐 살을 붙이지 못한다. 뻔한 핑계라는 걸 안다. 그래도 하루를 잘 살고 싶은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다다시’의 삶이나 나의 삶이나 비슷한 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같은 듯 다른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즐겁게 읽고 좋아하기에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건 아니니까. 이혼을 한 중년 남자 다다시가 자신이 원했던 오래된 주택을 구하고 혼자서 자신만의 삶을 계획하고 하나하나 실천하는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으니까.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계절의 움직임과 소리. 집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소유하는 개념도 좋았다. 다다시에게 집주인 소노다 씨가 세를 놓으면서 오래된 집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시야 저편, 공원 안쪽에는 키 큰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 올려다봐야 할 만큼 큰 나무들이 서 있다. 바람에 의외로 잘 휘어지는 큰 나무는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올려다봐야 할 만큼 키가 크다는 뜻은 이 집도 내 모습도 나무가 내려다본다는 뜻이다. 여름이 되면 철새가 날아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울거나 하지 않을까. 지금 들리는 것은 공원을 걷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목소리다. 적당한 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새소리도 아이들 목소리도 들리면 기쁘다. (35쪽) 

 

 나는 북쪽으로 난 이 창문이 좋았다. 옆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사이에 가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나무만 보인다. 창문에는 차양을 깊게 쳤다. 지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뻗은 서까래가 차양을 지탱한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더니 이층 어느 방에서나 창문으로 차양이 보인다는 게 생각 외로 신선했다. 서까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게 실감 났다. (63쪽)

 

 걷기에 충분한 공원, 자동차를 처분하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삶, 나에게 맞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시간, 느리게 천천히 먹고 마시는 다다시의 일상은 여유 그 자체로 다가왔다. 책이나 옷에 대해 의견이 달랐던 전처가 없는 공간, 누구의 참견도 없는 혼자 만의 우아한 삶이라 그를 부러워하는 이도 많았다. 유학을 떠난 아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간다. 옛 불륜 상대였던 가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라 할 수 있는 연인 가나를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전혀 소식을 몰랐던 가나가 지금은 다다시가 사는 동네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좋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 다다시는 혼란스럽다. 그러나 가나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심하게 대한다. 아무렇지 않게 다다시의 집을 들르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다다시와 다르게 가나에겐 관계의 회복이나 불타오를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쯤에서 나는 소설이 뻔한 결말로 흐르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노련하고 세련된 마쓰이에 마사시는 달랐다. 그가 공들이는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사는지 시선을 돌린다. 가나의 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다다시는 둘이 아닌 셋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나와 가나의 아버지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퇴원 후 심각해진 치매로 인해 다다시는 자주 가나의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거기다 미국으로 떠난 소노다 씨가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는 사정까지 생겼다. 계획했던 삶의 수정은 불가피하고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까 불안한 두려움을 포함한 기대도. 하루만큼 늙어가지만 내일보다는 젊은 날을 산다는 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애초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키스를 했어도 잠자리를 함께했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은 남는다. 말을 써서 생각하고 말을 써서 뜻을 전하게 되면서,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라는 유별난 생물이 된 이래로, 전달될 게 전달되지 않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말은 머릿속에서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터무니없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엉뚱한 해석을 하게 한다. 말을 초원한 직감도 있지만, 직감도 맞을 때가 있으면 틀릴 때도 있다. (244쪽)

 

 남들이 부러워하는 혼자만의 우아한 삶은 다다시에게는 때로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벽난로 앞의 온기를 나룰 이가 필요했고 냉동실에 만들어 둔 만두를 함께 먹고 차를 마실 이가 그립기도 했다. 그것을 채워줄 가나와 아버지가 등장했다. 가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봐야 하고 다다시는 그들 곁에 머물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피할 수도 없고 피하지도 않을 삶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결정된 것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다시는 충만하다. 소설의 제목처럼 우아한지 어떤지 알 수 없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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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1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리뷰 읽으면서 이 부분이 저는 좋았어요.

- 계획했던 삶의 수정은 불가피하고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일이 펼쳐질까 불안한 두려움을 포함한 기대도. 하루만큼 늙어가지만 내일보다는 젊은 날을 산다는 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따뜻한 바람이 세게 부는 오후예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4-13 10:18   좋아요 1 | URL
이렇게 세심하게 짚어주시니 감사해요. 서니데이 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