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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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속상하다. 그것을 대신한 물건이 있다 해도 잃어버린 자신을 탓하는 속상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그저 실수일 뿐인데, 비난을 받을 만한 잘못이 아닌데도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실을 안겨준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는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당잡힌 삶을 사는 것이다.

 

 미술관 폭발 사고로 엄마를 잃은 열세 살 시오의 삶을 붙잡는 건 엄마와 그림이었다. 피할 수 없는 사고였고 폭발  당시 반지를 주며 파브리티우스의 그림 <황금방울새>을 가지고 나가라는 웰티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엄마를 찾을 수 없었던 시오는 무작정 그림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어쩌면 엄마가 집에 먼저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채 말이다.

 

 몇 년 전 시오와 엄마를 떠난 아빠와 연락이 닿는 건 어려웠고 고아가 된 시오는 친구 앤디의 집에서 지낸다. 주변의 보호와 상담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황금방울새>를 준 죽은 웰티와 조카 피파의 소식도 궁금했다. 시오에게 남은 건 그림과 피파에 대한 관심이 전부였다. 웰티의 낡은 골동품 가게를 찾아 호피 아저씨와 사고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피파를 만났지만 이별로 이어졌다. 그림과 함께 아빠가 있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이제 시오에게 가장 소중한 건 <황금방울새>였다.

 

 ‘그림을 꺼내고 만지고 바라보는 것은 가볍게 할 일이 아니었다. 그림을 향해 손을 뻗는 단순한 행동에도 뭔가가 팽창하는 느낌, 공기가 흔들리고 흥분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차갑게 냉각된 사막 공기 때문에 건조해진 눈으로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신비로운 어느 순간 나와 그림 사이의 공간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실재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그림이었다.’ (1권, 412쪽)

 

 새로운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 보리스를 사귀지만 아빠와의 삶은 시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는다. 도박에 빠진 아빠를 떠나 뉴욕의 호피 아저씨와 만났을 때 교통사고로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전히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오는 호피 아저씨를 선택하고 골동품 가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아무도 모르게 약에 취하고 아무도 모르게 그림을 생각하고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피파를 그리워한다.

 

 호피 아저씨를 도와 가게를 운영하는 시오의 삶은 제법 안정된 듯 보인다. 가혹하게도 만난 앤디의 가족에게 앤디의 죽음을 들은 시오는 점점 더 약에 의지한다. 그러니까 가면의 삶이었다. 가면을 쓴 삶은 잘 나가는 사업가였고 가면을 벗는 삶은 마약 중독자였다. <황금방울새>를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피해 달아나려는 시오. 시오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니 왜 웰티 할아버지는 죽음과 직면한 순간까지 그 그림을 시오에게 부탁했을까? 그건 호피 아저씨의 말에서 듣을 수 있다.

 

 “어떤 물건을 좋아하면 그 물건은 생명을 갖게 돼, 안 그러니? 물건들―아름다운 물건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거 아닐까? 처음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서 평생 쫓아다니게 만드는, 혹은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되찾으려고 애쓰게 만드는 그런 이미지들 말이야.” (2권, 460쪽)

 

 사랑을 주면 생명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시오는 그 그림을 통해 엄마를 기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함께 한 미술관의 시간, 엄마와 함께 본 그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엄마를 잃은 한 소년에게 그림이 주는 위안을 알 수 없다. 감히 그 슬픔과 절망을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아이들은 모두 치유하지 못한 상처와 함께 성장한다. 엄마와 외삼촌의 죽음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시오와 피피, 보호나 사랑이 아닌 방임된 보리스. 도나 타트는 그들의 내면을 소설 곳곳에 아주 치밀하게 담아낸다. 파브리티우스의 그림 <황금방울새>의 역할도 그러하다.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들을 이어주고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달랜다.

 

 ‘크나큰 슬픔, 내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슬픔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좋은 것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억지로 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선택할 수 없다.’ (2권, 465쪽)

 

 삶을 상실한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주문일까?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와 누군가를 이어주는 어떤 대상인지도 모른다. 시오에게 <황금방울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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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14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궁금했는데 자목련님 덕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5-07-14 15:4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묘사가 많은 소설이에요. 예상하지 못한 반전도 있구요. 해피북 님도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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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삶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행복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행복 말이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그 안에서 얻는 성취감이 있으면 그 일은 곧 행복과 같은 의미가 된다.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결혼은 그렇게 보였다. 은행에 다니는 남자와 만난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하는 가나코의 일상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그것이 가나코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오미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대학에서 만난 나오미와 가나코는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였다.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결혼 이후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일부였다. 그런 가나코가 남편의 폭력으로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다. 가나코는 남편의 반복적인 폭력에도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나오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하며 피해 다녔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가나코에게 당장 이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오미의 어머니가 그랬듯 가나코는 결심을 하지 못한다. 남편이 쉽게 이혼을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든 게 두렵고 무섭다.

 

 백화점에서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나오미는 가나코 걱정뿐이다. 어떻게 하면 가나코를 남편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그러다 상하이 출신 이혼녀 아케미에게 기발한 방법을 듣는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중국에서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알려준다. 가나코의 이야기를 들은 아케미는 죽여버리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술에 취한 남편을 죽이고 암매장하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치밀하게 준비한다. 미리 땅을 파고 시체를 담을 가방을 준비하고 남편과 닮은 중국인을 매수해 고객의 돈을 인출해 중국으로 떠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남편은 횡령을 하고 종적을 감춘 것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오늘 밤 사람 하나를 죽이려 하는 젊은 여자가 여기 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확신범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자신이 있다. 이상하게도 왠지 한 줌의 가책이나 망설임도 없다.적당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허함과도 또 다르게 시커먼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언재부터 자신은 이렇게 됐는지 그것조차 아득한 먼 옛날처럼 생각되어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마치 궤도를 벗어나 것처럼 사고는 점점 더 확산되어 갔다.’ (230쪽)

 

 그랬다. 나오미와 가나코의 행동은 범죄가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를 심판하는 것에 불과했다. 연습한 대로 일을 처리하고 둘은 자신의 일상을 이어간다. 출근하지 않은 남편을 찾는 전화가 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일이며 여권이 사라졌다는 것까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

 

 아,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진짜 행복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축배가 빨랐던 탓일까. 남편의 여동생 요코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CCTV를 분석하고 가나코를 미행한다. 나오미와 가나코에게 두려운 건 경찰이 아니라 요코였다. 가장 중요하게 대비해야 했던 알리바이와 CCTV를 허술하게 그렸다는 게 아쉽다. 어쩌면 이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장치였을는지도 모른다. 친구와 함께 남편을 죽인다는 파격적인 설정보다 요코와의 추격전에 더 몰입했으니 말이다.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가정 폭력과 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떠오르는 건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나오미와 가나코의 행복이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도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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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 - 배우자 대신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오는 시스템 만들기
너바나 지음 / 알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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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대해 문외한인 제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직은 부동산이 가장 최고의 투자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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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오늘 지인을 만나고 왔는데 부동산에 이제부터 직접 뛰어들어 일을 저질렀노라~~경험담을 듣고 왔어요
흠~~~아주 경이로운 눈빛으로 들으면서~~계속 흠~속으로 하고 왔네요!!
부럽기도 하고,딴세계 얘기 같기도 하고~~심란하기도 하고^^

자목련 2015-07-13 11:16   좋아요 0 | URL
제 친구도 몇 년 전에 과감하게 원룸을 은행(?)과 함께 사들였어요.
초반엔 관리가 어렵다고 걱정하더니 지금은 괜찮다는 평입니다. 저 역시 부럽고, 놀랍고...
 

 

 

 ‘책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다정한 질문 기계, 그것이 책이다.’ (48쪽)

 

 한 권의 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얼마나 될까.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애정이 표출되기도 하고 질문이라는 걸 염두하며서 책을 읽어야 한다면 책읽기의 즐거움을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라고 정여울은 자신있게 말한다. 겨우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두 권의 책만 읽은 나에게는 어렵고 먼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 헤세의 책을 읽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인생의 어느 시절이 있다.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헤세의 삶을 향한 여정이다. 헤세가 태어난 독일의 칼프, 헤세가 40년을 살며 잠든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헤세의 향기를 맡는다. 칼프와 몬타뇰라의 풍경과 함께 그곳에서 마주하는 헤세의 흔적을 감성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그 여정엔 헤세의 문학, 그림, 삶이 있다. 그 길을 함께 걷노라면 『수레바퀴 아래서』속 한스처럼 외로운 영혼이었다는 걸 짐작한다.

 

 헤세가 만든 인물은 늘 방황한다.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로 자신과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헤세의 소설에 대한 정여울의 평론을 통해 헤세를 읽을 수 있듯 그 싸움을 통해 내면을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인지도 모르다. 헤세가 정원을 가꾸고 풍경을 그린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헤세의 책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다른 나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헤세와 정여울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책이다. 헤세라는 이유만으로 칼프와 몬타뇰라는 아름다운 도시다. 헤세의 책을 읽고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그러니 누군가에는 문학여행서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헤세로 닿는 길이 된다. 책에 수록된 사진만으로도 그곳에서의 헤세를 상상하게 된다. 읽지 않은 헤세의 소설을 읽고 다시 읽게 되다면 나와 헤세와의 거리도 조금은 좁혀질 것이다.

 

 ‘우리가 헤세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는 우리 곁에 있어줄 것이다. 우리가 고통속에서도 외부를 탓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타인의 결점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볼 때, 그때마다 그가 우리 곁에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404쪽)

 

 헤세에 대한 책들이 많다. 헤세를 향한 정여울의 애정이 가득한 책 외에도 헤세를 만나는 길은 다양한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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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전을 본 적이 있어요. 여러해가 되었네요 어느덧. 그의 수동타이프라이터와 수채화들이 눈에 삼삼해요. 수채화 액자도 두개 샀었죠. 물론 프린트라 아쉽지만. 정여울의 이 책은 담아간 지 좀 됐는데 잊고 있었어요. 자목련님의 페이퍼로 상기되어 고맙습니다^^

자목련 2015-07-10 09:01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만나는 헤세의 그림도 좋아요. 헤세의 소설에 대한 서평도 실렸지만 정여울의 감성이 짙어서 살짝 아쉽기도 했어요. 아침부터 여름이라는 걸 실감하는 더위가 몰려오네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지금행복하자 2015-07-0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에 헤세전을 보고 왔죠~ 글처럼 아름다운 그림들을 많이 그렸더군요~ 작은 그림들이 더 진솔해보이고 맘에 다가왔던 기억이 나네요~

자목련 2015-07-10 09:0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글, 시, 그림, 헤세는 진정한 예술가였구나 싶었어요. 시원한 하루 시작하세요^^
 
제주에서 2년만 살고 싶었습니다
손명주 지음 / 큰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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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주도의 이주민과 원주민을 다룬 방송이 생각난다. 생활인으로 제주도에서 사는 건 꿈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꿈이 아닌 현실을 보여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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