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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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23쪽)


책상 하나와 침대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공간에서 그거면 족하다고 여겼다. 방이자 거실이었던 지난 집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공간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곧 마음은 바뀌었다. 내 공간에 책장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책장을 들이고 나니 흡족했다. 진짜 내 방, 내 공간이 생겼다고 느꼈다. 책상과 책장, 정리는 엉망이지만 방 안에 들어오면 편안해진다. 집을 떠올리면 춥고 어둡던 이미지 대신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집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공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말한다. 공간의 주인이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내 방이 있는 친구와 언니의 방이었다. 그때는 방의 주인이 되면 그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공간이든 관리와 책임이 따른다. 그건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대구시 중구 북성로의 옛집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대가 함께 살아온 시절을 시작으로 집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집의 사회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집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삶의 형태, 이동하는 삶의 궤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족함이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원했던 서울,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꾸미고 수리하던 시간을 지나 동반자를 만나 함께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까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나온 공간을 채운 삶을 말한다. 나와는 다른 과정을 견디고 겪어온 삶이지만 이상하게 모두 그 집을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다른 공간에서 내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각 퇴근할 때마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던 기억,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오르는 아파트 공사를 보면서 허탈했던 기억,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원했던 기억들이 겹쳐졌다.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없다는 생각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간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30쪽)


공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질문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가족 구성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 부엌, 화장실, 베란다에 대해서도 자신의 공간이라고 여길까. 저자의 경험처럼 나머지 공간은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엄마에게는 정작 아무 공간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공간의 이동은 곧 삶의 이동이다. 그래서 원하는 공간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 애쓴다. 공간을 누구와 보냈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소중한 이와의 기억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면 특별한 장소가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간을 점유하고 삶을 이어갈 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속 공간에 대한 사유는 감동을 안겨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쪽)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절망, 좌절, 슬픔, 이별, 애도를 집이라는 공간이 지켜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로 존재하는 걸 말이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감추고 싶은 표정을 바라보는 존재로 있었기에.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이라면 자신의 공간(그곳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크기이든)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삶을 복기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이다.  나와 이어진 공간과 소중한 이들에게도.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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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책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장바구니 속으로 ~@@
주말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고 따뜻하게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21-01-0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포근한 월요일 보내세요^^
 


처음엔 오른쪽 귀가 가려운 정도였다. 그랬던 게 귀가 아프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마스크를 쓰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의사는 무척 심각한 상태라며 나를 혼내는 투로 진료를 했다.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조심하라는 말을 놓지 않았다. 항생제 주사와 약이 처방되었다. 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한동안은 약에 취한 것처럼 잠을 많이 잤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길게 이어졌다. 외투를 챙겨 입을 정도의 계절까지 나는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해야 한다. 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나의 귀, 그러니까 고막을 보여주었다. 나의 일부지만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나의 고막을 화면을 통해 마주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아픈 몸을 달래며 하루하루 생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뭐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귀가 아픈 정도인데도 심신은 무너졌다. 다른 누구를 챙길 여력이 남지 않았다. 정말 나만을 위한 날들이었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내게는 나를 위한 마음이 필요했고 존재했다. 이주란의 소설은 나에게 그런 마음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 단편집은 이런 이야기다,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책이다. 이주란은 그냥 속삭이듯 말한다. 툭 던진다고 할까. 발단, 전개를 생각하고 그냥 한 부분을 잘라 말한다. 이 단편집 전체가 그러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가 이제껏 어떤 문제든, 어떤 상황이든 너무 열심히 설명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너도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근데 우리는 너무 그렇게 살아왔다. 아픔도 슬픔도 감추거나 숨기거나.

이렇게 말하면 이주란의 단편들이 맑고 명랑하고 유쾌한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엄마를 잃은 조카, 그런 조카를 돌보는 이모와 할머니.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 죽은 동생의 공간에서 동생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 불안한 현실, 고단한 월세방의 일상처럼 힘겹고 지친 일상이다. 그런데도 소설 속 화자가 던지는 말들이 이상하게 힘이 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게 악착같이 살아온 시간과는 다르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냥 소소한 일상들을 누리면서 말이다. 조카의 친구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어버이날 꽃을 사면서 그리운 이를 생각하고, 항상 잘 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사는 대신, 힘이 들다고 말하며 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면 어떠냐고. 소설 속 화자의 말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다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들과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이상한 마음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해서 그런 것 같은 미안함. 나는 이제 그런 미안함을 줄이며 살 것이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처럼.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한 사람을 위한 마음』, 134쪽)

그러다 이런 소설을 읽으며 갈팡질팡한다. 권여선의 단편집『아직 멀었다는 말』에서 마주한 인물들이 너무 힘들게 살기 때문이다. 나는 귀가 아파서도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데 권여선이 들려주는 삶의 고통은 그 강도가 너무 세다.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다. 가족들이 남긴 대출금을 갚느라 TV 시청료까지 아끼며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삶이 가혹하다. 혼자 남았다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월급을 고스란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그뿐인가, 권여선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고단한 삶이 어떤지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여준다. 계약직 교사에게 재계약이란 희망, 그 희망이 이뤄져야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돌볼 수 있으니 학교 측에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바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때때로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얼마나 길고 지루할까. 그래도 끝은 아니니까 더 힘을 내야 할까. 그러니 ‘아직 멀었다는 말’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또 나는 그들에게도 그들을 위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를 위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돌아볼 때 코로나19의 공포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픈 귀를 달래며 지낸 2달여의 시간도 기억할 것이다. 거대한 공포 속에서 나의 작은 통증도 중요하니까. 살아 있으니 살아내야 한다고, 이런 말들을 자주 꺼내는 한 해였다.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군가에는 나도 그런 대상이었을 거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이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겹다. 아픈 주사를 맞으러 왔지만 코가 줄줄 흐르고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발을 흔들려 엄마나 아빠, 할머니에게 종알종알 말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된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괜찮아진다. 올해의 일상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한지혜의 산문집『참 괜찮은 눈이 온다』처럼. 아주 작은방이 집이었던 시절을 시작으로 단칸방, 철거민, 임대 아파트에서의 복닥거리며 살아온 이야기,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송별회 자리에서 부른 노래,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으로 위로를 받은 순간, 식물인간으로 긴 시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걸 느낀다. 우리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된다. 실패의 기억, 아픈 일상, 가족과의 이별, 삶의 전반에 대한 한지혜의 담담한 단상은 그 자체가 일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전한다.

지겹고 힘들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조금 달리 보인다. 귀의 통증이 사라지니 나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있던 밤을 잊었다. 어느새 다시 일상으로 회복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새벽을 생각한다. 너무 아파서,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깨우지 않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잘 한 일 같다. 그 몇 시간 차이로 나의 상태가 극명하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모든 게 나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좋은 일도 아주 좋지는 않았고, 나쁜 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64쪽)란 글귀처럼. 그러니 겸허하게 달라진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성공한 삶이 아니라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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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12-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을 읽으면 위로가 참 많이 됩니다*^^* 저는 요즘 거절못하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보단 잘 거절해 보자란 맘으로 살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 가슴에 와닿습니다 ~

자목련 2020-12-16 09:10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이렇게 귀한 댓글에 힘이 납니다. 거절, 정말 어려워요. 우리에게 거절의 힘이 필요하네요.
차가운 겨울, 그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요.^^

scott 2020-12-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것 아닌 증상 자각하지 못한채 살아가는데 그래도 치료 받고 회복중에 계시니 다행입니다
자목련님, 건강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참 괜찮은 눈이 온다 ]

자목련 2020-12-16 09:13   좋아요 0 | URL
아침을 포근하게 열어주는 말씀 감사해요. 별것 아니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계속 귀를 생각하고 관찰합니다. 의사 말대로 제가 의사도 아닌데 말이에요. ㅎ
이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삶이 한결 깊어질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
 


 일기예보는 맞았다. 지금 눈이 내린다. 그런데 눈송이가 너무 작다. 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쌓이거나 하지 않았다. 이제 진짜 겨울 속으로 들어왔다. 진짜 겨울이라고 쓰고 보니 지금껏 내가 썼던 겨울은 가짜 겨울이냐고 겨울이 따지는 건 아닐까. 아무튼 눈이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눈이 온다는 걸 알았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자꾸만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쌓이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다. 쓸데없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눈송이가 되어 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던 때가 기억난다. 추운 겨울이었고 나는 어렸다. 아마도 엄마에게 심하게 혼이 난 기억이다. 밖으로 나왔지만 마당을 서성이는 게 전부였다. 아파트에는 놀이터라도 있지만 한적한 작은 시골 동네에는 그저 산과 들이 전부였다. 사춘기는 아니었고 그보다 좀 더 어린 나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심각했을 것이다. 순간의 마음은 그 순간에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니까.


 어른이 되고 어느 겨울에도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시골 집은 아니었다. 전후 사정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때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디로 갔냐고? 결국엔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안온한 공간, 집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마구 쏟아진다. 곧 쌓이겠다. 밖으로 보이는 집의 지붕 위에 눈이 쌓인다. 무서운 기세로 내린다. 불과 20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얼마나 많이 내리고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녹을 것이다. 눈이 녹고 사라진 뒤에도 눈이 내리던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내리는 아침, 이런 시집을 읽는다. 세상에나 이런 제목인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이규리 시인의 『당신은 첫눈입니까』. 우연을 가장한 아침의 시다. 제목 때문에 구매했는데 이제 겨울의 시집이 되겠다. 겨울에 펼쳐보는 시집. 






 눈이 주는 감성은 묘하다. 멍하니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생각도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 비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눈과 비는 다르다. 눈을 맞는다. 이상하게 그래도 될 것 같다. 물기를 품은 눈이니 눈물을 맞는다고 할까. 눈물을 맞는다. 아프지 않게, 슬프지 않게 눈물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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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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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첫눈입니까, 란 물음에 첫눈이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12월의 시집, 이 겨울에 함께 읽고 싶은 시집이다.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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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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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여름을 준비하는 계절부터가 여름이다. 짧기만 한 계절을 길고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늦봄부터를 여름의 도입으로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름은 덩굴장미가 피는 순간 시작된다. 5월이 되면, 올해도 전국의 덩굴장미들이 건강히 피어 주기를 바라는 일. 그게 바로 내 여름의 시작이다. (129쪽, 덩굴장미의 일부)


여름엔 빨간 원피스, 자두, 캔맥주, 바다가 전부다. 그냥 생각나는 것들이다. 빨간 원피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와 함께 했던 기억도 흐릿하다. 자두는 여전히 사랑하는 과일. 캔맥주와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맥락으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원피스엔 샌들, 바다는 수영, 캔맥주엔 치킨. 냉면도 빠트릴 수 없다. 김신회의 『아무튼, 여름』은 제목 그대로 아무튼, 여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휴가, 여행으로 압축할 수 있는 계절, 여름이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날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는 달콤함,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더라도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날들이 여름의 특권일 것이다. 비록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더라도. 여름은 왠지 신나는 계절이다. 폭염, 장마, 무더위 이런 건 잠시 접어두면 말이다. 명랑하고 유쾌한 책이다. 솔직한 마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여름을 소환한다. 그 결과가 아름다운 추억일지, 고개를 절로 흔드는 후회일지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초당 옥수수의 맛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옥수수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은 거다. 아마도 내가 자두를 생각하는 것과 같겠지 싶다. 자두란 말을 들으면 입에 침이 고이고 한자리에서 열 개 이상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던 옥수수의 맛이 그립다.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입꼬리가 올라가고 단숨에 기분이 맑아지는 일.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32~33쪽, 초당 옥수수의 일부)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긴 겨울을 잘 버티고 견딘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봄이 지나고 여름엔 열심히 성장한다. 강렬한 햇빛과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여름에 쑥쑥 자라는 식물을 확인하는 일은 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장이 참 좋았다. 나의 반려 식물이 생각나서 그랬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아이들을 죽일 뻔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워두고 돌아오니 잎은 하나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충분히 물을 주고 겨울 살아난 식물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묵묵히 위로 향하는 식물을 볼 때마다 내 안에도 비슷한 새싹이 자라는 것 같다. 그래, 각자가 가진 속도는 다 다르지. 아끼는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90쪽, 식물의 일부)


하루하루 조금이라고 앞을 향해 가는 발걸음,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깨달음, 춥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람을 하루 더 살게 한다는 걸 우리 집 식물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92쪽, 식물의 일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맥주다. 만 원에 네 캔인 수입 맥주,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어느 개그맨이 설명한 것처럼 귀가 후 샤워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 한 캔의 맛은 여름 최고의 낙이다. 냉동실에 살짝 넣어둔 컵에 가득 맥주를 채우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의 황홀함이란. 하긴 맥주는 언제나 옳다.


겨울의 대척 점인 여름, 그 계절을 읽는 동안 겨울을 잠깐 잊는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살짝 손이 시리고 잔뜩 옷을 껴입었지만 나는 지금 여름을 살고 있는 듯하다. 선명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니 여름과 겨울만 남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겨울에 만난 여름은 명랑하면서도 애틋하고 안쓰럽다. 지난여름을 우리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기에. 더위에도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날들, 시간이 지나 이 여름은 더욱 애틋하게 남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의 날들은 새롭게 이어진다. 그 계절이 무슨 계절이든 즐겁게 맞이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좋아하는 것들의 생각하고 계절을 즐기는 일상을 기다리던 시간이 그립다. 우리가 마주한 다음 여름은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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