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오른쪽 귀가 가려운 정도였다. 그랬던 게 귀가 아프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마스크를 쓰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의사는 무척 심각한 상태라며 나를 혼내는 투로 진료를 했다.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조심하라는 말을 놓지 않았다. 항생제 주사와 약이 처방되었다. 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한동안은 약에 취한 것처럼 잠을 많이 잤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길게 이어졌다. 외투를 챙겨 입을 정도의 계절까지 나는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해야 한다. 의사는 진료를 하면서 나의 귀, 그러니까 고막을 보여주었다. 나의 일부지만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나의 고막을 화면을 통해 마주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병원에 다니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아픈 몸을 달래며 하루하루 생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나에게 뭐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귀가 아픈 정도인데도 심신은 무너졌다. 다른 누구를 챙길 여력이 남지 않았다. 정말 나만을 위한 날들이었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내게는 나를 위한 마음이 필요했고 존재했다. 이주란의 소설은 나에게 그런 마음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 단편집은 이런 이야기다,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책이다. 이주란은 그냥 속삭이듯 말한다. 툭 던진다고 할까. 발단, 전개를 생각하고 그냥 한 부분을 잘라 말한다. 이 단편집 전체가 그러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분위기가 이제껏 어떤 문제든, 어떤 상황이든 너무 열심히 설명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너도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근데 우리는 너무 그렇게 살아왔다. 아픔도 슬픔도 감추거나 숨기거나.

이렇게 말하면 이주란의 단편들이 맑고 명랑하고 유쾌한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엄마를 잃은 조카, 그런 조카를 돌보는 이모와 할머니.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 죽은 동생의 공간에서 동생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 불안한 현실, 고단한 월세방의 일상처럼 힘겹고 지친 일상이다. 그런데도 소설 속 화자가 던지는 말들이 이상하게 힘이 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게 악착같이 살아온 시간과는 다르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냥 소소한 일상들을 누리면서 말이다. 조카의 친구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어버이날 꽃을 사면서 그리운 이를 생각하고, 항상 잘 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사는 대신, 힘이 들다고 말하며 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면 어떠냐고. 소설 속 화자의 말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다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들과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이상한 마음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해서 그런 것 같은 미안함. 나는 이제 그런 미안함을 줄이며 살 것이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처럼.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한 사람을 위한 마음』, 134쪽)

그러다 이런 소설을 읽으며 갈팡질팡한다. 권여선의 단편집『아직 멀었다는 말』에서 마주한 인물들이 너무 힘들게 살기 때문이다. 나는 귀가 아파서도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데 권여선이 들려주는 삶의 고통은 그 강도가 너무 세다. 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다. 가족들이 남긴 대출금을 갚느라 TV 시청료까지 아끼며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삶이 가혹하다. 혼자 남았다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월급을 고스란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그뿐인가, 권여선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고단한 삶이 어떤지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여준다. 계약직 교사에게 재계약이란 희망, 그 희망이 이뤄져야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돌볼 수 있으니 학교 측에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내야 한다. 사회적 약자가 바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때때로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얼마나 길고 지루할까. 그래도 끝은 아니니까 더 힘을 내야 할까. 그러니 ‘아직 멀었다는 말’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또 나는 그들에게도 그들을 위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를 위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돌아볼 때 코로나19의 공포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픈 귀를 달래며 지낸 2달여의 시간도 기억할 것이다. 거대한 공포 속에서 나의 작은 통증도 중요하니까. 살아 있으니 살아내야 한다고, 이런 말들을 자주 꺼내는 한 해였다.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군가에는 나도 그런 대상이었을 거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지친 표정이 역력한 이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겹다. 아픈 주사를 맞으러 왔지만 코가 줄줄 흐르고 마스크는 답답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의자에 앉아 발을 흔들려 엄마나 아빠, 할머니에게 종알종알 말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된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괜찮아진다. 올해의 일상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한지혜의 산문집『참 괜찮은 눈이 온다』처럼. 아주 작은방이 집이었던 시절을 시작으로 단칸방, 철거민, 임대 아파트에서의 복닥거리며 살아온 이야기,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송별회 자리에서 부른 노래,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으로 위로를 받은 순간, 식물인간으로 긴 시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걸 느낀다. 우리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된다. 실패의 기억, 아픈 일상, 가족과의 이별, 삶의 전반에 대한 한지혜의 담담한 단상은 그 자체가 일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전한다.

지겹고 힘들었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조금 달리 보인다. 귀의 통증이 사라지니 나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있던 밤을 잊었다. 어느새 다시 일상으로 회복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새벽을 생각한다. 너무 아파서,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깨우지 않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잘 한 일 같다. 그 몇 시간 차이로 나의 상태가 극명하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모든 게 나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좋은 일도 아주 좋지는 않았고, 나쁜 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64쪽)란 글귀처럼. 그러니 겸허하게 달라진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성공한 삶이 아니라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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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12-1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을 읽으면 위로가 참 많이 됩니다*^^* 저는 요즘 거절못하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보단 잘 거절해 보자란 맘으로 살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소란하면서도 고요한 일상, 가슴에 와닿습니다 ~

자목련 2020-12-16 09:10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이렇게 귀한 댓글에 힘이 납니다. 거절, 정말 어려워요. 우리에게 거절의 힘이 필요하네요.
차가운 겨울, 그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요.^^

scott 2020-12-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것 아닌 증상 자각하지 못한채 살아가는데 그래도 치료 받고 회복중에 계시니 다행입니다
자목련님, 건강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참 괜찮은 눈이 온다 ]

자목련 2020-12-16 09:13   좋아요 0 | URL
아침을 포근하게 열어주는 말씀 감사해요. 별것 아니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계속 귀를 생각하고 관찰합니다. 의사 말대로 제가 의사도 아닌데 말이에요. ㅎ
이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삶이 한결 깊어질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