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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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했을 때 다음에 잘 하면 된다, 괜찮다 말해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든든하다. 그것이 실수가 아닌 실패였더라도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수가 아닌 단 하나뿐인 선택의 상황에 놓인 이라면 어쩔 수가 없이 그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살펴볼 여력 따위는 없으니까. 김지연의 소설 『새해 연습』 속 ‘홍미’도 그러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제대로 된 돌봄 없이 자란 홍미는 스스로 모든 걸 해내야 했다. 이젠 부모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 홍미에게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할머니가 18년 동안 써온 일기장이 남겨졌다. 유산인 셈이다.


홍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할머니. 할머니의 이름은 ‘양지’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양지란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양지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1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일기. 일기를 쓰는 할머니라니. 그 일기가 홍미에게 도움이 될까.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전한 공무원의 말처럼 홍미의 소유가 된 일기장. 홍미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물건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하나의 선택이 아닌 다양한 경우의 수로 이어질 수 있는 물건.


소설은 홍미의 일상과 양지가 쓴 일기를 들려준다. 작은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홍미의 일상은 단조롭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홍미는 늘 새해를 기대한다.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고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까지 그런 새해가 홍미에게 오지 않았지만 새해니까.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라니. 이런 문장을 쓰는 김지연이 좋다.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알고 그 상황을 헤아릴 수 있다는 거니까. 누군가를 어루만질 수 있는 태도를 지녔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올해는 늘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였다. (26쪽)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홍미가 읽는 양지의 일기는 담백하고 아름답다. 양지의 일상도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일기 어디에도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양지를 찾아오는 공씨가 있을 뿐. 양지의 하루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없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할 삶의 모든 걸 다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다. 양지의 일기를 읽으며 조금 일찍 홍미와 양지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죽음도 미리 연습해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달력을 보니 오늘 보름이다. 절에 간 지도 오래되었다. 집에서는 달을 볼 수가 없다. 다음 보름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달을 보고 있으면, 자기 것이 아니었던 빛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없이 흥그러운 마음이 된다. (양지의 일기 중에서, 57쪽)


홍미는 유일한 친구 민석과 함께 양지의 집을 찾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폐가나 다름없다. 옆집 이웃을 만나 공 씨의 존재를 묻지만 양지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양지에게 손주 자랑을 하던 공 씨는 누구일까. 그러던 차에 홍미에게 공씨가 연락을 해온다. 공씨는 양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자원봉사자였다. 공씨가 원했던 건 아니고 다니던 마트의 재계약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홍미가 만난 공씨는 손주가 있을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양지의 일기는 거짓이었다. 양지는 일기를 통해 원하던 삶을 연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홍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내는 데 통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홍미는 자신이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착각했다. (60~61쪽)


홍미에겐 다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사장인 경식이 홍미가 자신이 뜻대로 되지 않자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퇴사를 요구한다. 살고 있는 반지하의 빌라도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홍미의 삶은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홍미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결혼하자던 민석에게 결혼하자고 농담을 한다.


이처럼 김지연의 소설 속 인물은 유머가 있고 농담을 할 줄 안다. 여유가 넘쳐서 그런 게 아니다. 때로 어쩔 수 없어서, 마냥 울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 스타일은 아니다. 빨강 머리 앤에 더 가깝다고 할까. 내 생각엔 그렇다. 김지연의 소설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다. 그러니 홍미는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충분히 연습했으니까. 다음이 없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홍미에겐 새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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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9-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이제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어쩔 수 없이 사는 삶...
왠지 모르게 공감하게 되네요.
 
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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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엔 그 사람이 어떻게 됐어? 빨리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감정의 혼란 속 단편이 그러했다. 화자에게 멈추지 말라고 조르는 독자가 된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이토록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 정말 대단하다. 읽는 내내 놀라고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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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바깥여름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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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이별하는 마음으로는 아니고, 마시고 싶은 커피는 따로 있는데 할인이라서 구매. 따듯한 커피를 마시는 이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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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서점을 좋아하고 거기다 고양이까지 좋아한다면 반할 소설이 있다. ‘2024 일본 판타지 소설 대상 수상작’ 우츠키 겐타로의 『고양이서점 북두당』이다. 제목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고양이서점이라니? 고양이가 서점의 마스코트인가 싶을 것이다. 아니면 서점 주인이 애묘가이던가. 어쩌면 독립서점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모두 맞다. 이 소설은 매력적인 고양이와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주인의 이야기니까. 판타지 소설이니 서점 주인이 사람이 아닌 고양이는 아닐까 그런 상상을 가능하다.


소설은 아홉 번째 환생한 검은 고양이 ‘쿠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 생인 것이다. 여덟 번이나 살았으니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만큼 다 아는 쿠로는 사람을 믿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고양이와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다. 생존을 위해서 따뜻하고 먹을거리도 있는 사람 근처를 돌아다니다 이상한 곳을 발견한다. 그곳이 바로 ‘북두당’이다. 그곳에서 한 여자가 고양이를 위해 물그릇을 채우고 “언제든지 와도 돼”라며 말을 건넨다. 마치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인간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여자의 친절과 다정한 말에 흔들린다.


쿠로가 살펴본 서점은 좀 이상하다.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열 살 소녀 마도카만 정기적으로 서점을 방문한다. 책을 입고하는 모습도 볼 수 없고 주인 여자는 네 마리의 고양이들과 책에 둘러싸여 지낸다. 그러다 마도카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생겼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마도카가 갈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비를 피해 미끄럼틀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느라 정신이 팔린 마도카는 쿠로의 울음소리에 집에 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쿠로가 마도카를 찾아준 걸 아는 서점의 고양이는 바로 친해지지 않아도 된다며 쿠로를 서점으로 이끈다. 그렇게 북두당에 들어간 쿠로는 다른 고양이들이 ‘마녀’라 부르는 ‘에리카’와 지내게 된다.


놀랍게도 에리카는 고양이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쿠로는 궁금했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서점의 고양이들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의 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쿠로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쉽게 여자에게 자신의 전생을 꺼낼 수 없다. 사실은 고양이에게 중요한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것. 여덟 번의 생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평온했던 세 번째 생의 시절이 있었지만 끝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쯤이면 짐작할 것이다. 쿠로가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로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소세키 곁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소설의 고양이가 바로 쿠로라는 걸 말이다. 쿠로는 자신의 진명을 나쓰메 소세키의 본명인 ‘긴노스케’로 짖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진명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지은 이름 따위는 싫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게 변덕이었는지, 고집이었는지, 아니면 자유방임주의적인 성격의 산물인지,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이름을 짓기로 했다. (122쪽)





소설은 쿠로가 들려주는 지난 여덟 번의 생과 함께 일본 역사를 돌아본다. 에도 시대 대기근,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 시대를 거치며 쿠로가 만난 인간의 모습은 자신들의 욕망만 채울 줄 아는 존재였다. 그런데 마지막 아홉 번째 생에서 만난 에리카와 마도카는 달랐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마도카와 마도카의 글을 읽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에리카. 이상한 건 마도카의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에리카다. 에리카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서점 북두당도 이상한 공간이다. 손님이 책을 사면 저절로 책이 채워지고 심지어 재고 정리는 고양이가 한다.


북두당에 정착한 쿠로는 작가가 되려는 마도카의 성장과정을 지켜본다. 그런데 열심을 글을 쓰던 마도카가 서점에 발길을 끊는다. 외모도 변하고 불량 청소년과 어울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글쓰기를 그만둔 마도카는 엄마와 갈등도 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마도카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쿠로가 세 번째 생에서 만난 소세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병들고 몸마저 쇠약했던 소세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글쓰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치유다. 마음의 상처를 글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바깥으로 끌어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 그렇게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가 닿게 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마음의 안녕과 평온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된다. (279~280쪽)


17년 동안 쿠로가 북두당에 살면서 만난 인간의 이야기. 신비로운 공간 『고양이서점 북두당』 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도카를 응원하는 에리카와 고양이들의 모습은 따뜻한 울림으로 남는다. 어디 그뿐인가. 소설 곳곳에서 나쓰메 소세키, 이나가키 타루호, 이케나마 쇼타로, 무로오 사이세이 등 고양이를 사랑한 문호들이 등장하는 재미와 그들을 향한 문학적 오마주와 글쓰기와 창작의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고양이서점 북두당』은 환생한 고양이의 시선으로 생과 사, 인간의 다채로운 삶, 상처와 회복, 치유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름을 불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쿠로의 모습을 통해 정체성과 우리에게 이야기가 건네는 위로와 힘을 생각하게 한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 문학의 소중함에 대해서.


책과 서점, 그리고 고양이란 조합을 생각하니 희귀본이 가득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와 외톨이 소년의 기이한 모험을 담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가 떠오른다. 고양이, 서점, 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린타로’는 때때로 학교에 가지 않고 서점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린타로는 폐점을 앞둔 서점을 지킨다. 그런 린타로에게 말하는 고양이 ‘얼룩’이 나타나 책을 구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책을 구하기 위한 린타로와 고양이 얼룩. 이 소설은 책의 힘을 믿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할아버지, 고서점에서 읽은 책들을 통해 린타로가 책을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려져 있어요. 괴로워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웃음을 터드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말과 이야기를 만나고 그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마음까지도요.” (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261쪽)


물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고양이서점 북두당』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다면 더욱 반갑게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소설이다. 고양이, 서점,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쿠로의 환생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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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6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표지 왜 이리 예쁘죠? 그래도 표지만 예쁘다하고 지나갔을 책인데 자목련님 글 읽고 읽어야ㅜ할 책으로 비뀌었어요.

자목련 2025-09-17 09:50   좋아요 1 | URL
재밌는 환상 판타지인가 싶었는데 글쓰기와 이야기가 갖는 힘과 의미에 대해 말하는 책이구나 싶었어요^^

레삭매냐 2025-09-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냥이...

소세키 샘의 <고양이> 책은
정말 오래 전에 사서 읽다 말
았더라는. 다시 도전해 봐야
겠어요.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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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꾼다는 건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뜻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꿈도 꾸지 마, 꿈 깨라고 면박을 준다. 그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고 않고 구체적으로 들어보려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일까, 꿈 깨라고 말하는 사람일까. 김초엽의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읽다 보면 그런 질문과 마주한다. 꿈을 이해하고 인정하려 노력하는 사람인가.


다른 존재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소설 속 물고기, 펭귄, 곰 같은 피부를 갖고자 실천하는 이들이나 다른 세계로 넘어갈 막을 찾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육체적인 고통에 기인한 것으로 수술 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신체의 변화로 얻은 활동의 제약, 쪼그라들고 움츠려든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간절함이었다.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감정, 나만이 느끼는 통증은 설명할 수 없고 이해와 공감을 얻기도 어려운 종류니까.


모두 똑같을 수 없지만 주류가 아닌 경계나 변두리의 삶을 살다 보면 주류로 넘어가려 애쓴다. 사람들이 그게 정답인 양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삶이라고. 보편적인 것이 아닌 다른 일상을 반복하거나 지향하면 신기한 듯 호기심을 가질 뿐 파고들지는 않는다. 김초엽은 다르다. 그런 타자를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같은 게 있으면 다른 것도 있는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 그가 그려낸 다양한 세계는 놀랍고 이상한 게 아니라 아름다울 지경이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속 ‘수브다니’는 최첨단 안드로이드였다가 인간화 시술을 후 기계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금속 피부 이식을 받으면 녹슬게 분명해 말류 하지만 수브다니는 강행한다. 그것만이 수브다니가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없지만 수브다니의 삶을 인정하며 어려울 게 없다. 타자를 인정하는 일, 정상이라는 세계로 오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인정한다면 혐오와 차별은 사라질 것이다.


타자와의 공존은 어려운 일이 아닌게 된다. 그런데 정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어쩌면 정상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나의 신체에 두 개의 자아(‘샐리’와 ‘레몬’)를 지닌 셀븐인의 이야기인 표제작 「양면의 조개껍데기」도 다르지 않다. 샐리와 레몬의 독립된 자아는 감정도 다르고 욕망도 다르고 자아가 바뀔 때마다 신체적 특성도 변한다. 하나로 통합될 수 없고 치열하게 갈등하지만 공존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우주 어딘가의 행성인 샐리는 내가 될 수 있고 주변의 누군가가 될 수 있다. SF 소설은 상상이 아닌 사고 영역의 확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이 김초엽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거대한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레몬은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로운 세계가, 그렇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양면의 조개껍데기」, 106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협소한 우주의 일부라는 걸 알지만 인간의 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진동새의 진동으로 기록하는 「진동새와 손편지」는 문자 대신 색채로 기록하는 외계 생명체 이야기를 다룬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단편 「스펙트럼」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문자와 언어를 대신할 수 있으니 눈빛이나 움직임으로 말하는 존재도 가능하다.





「고요와 소란」에 등장하는 사물과 생물의 목소리를 채집하고 전시하는 세계가 이상할 게 없다. 어쩌면 갑자기 사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요란한 소리에 감춰져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하는 말을 잘 듣기를 바란다. 얼핏 사물을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아름다운 단편 같지만 김초엽은 온갖 소리로 가득한 지구를 살피고자 하는 우주의 소리 수집가가 지구에 거미줄을 친 거라고 우리를 안내한다.


더 깊고 넓게 확장된 김초엽의 상상과 탐구는 먼 미래 데이터만 남은 세계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질문하는 「달고 미지근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소설이 아닌 현실 속 AI로 통하는 세계에서 인간 고유성과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도래할 세계가 그러하다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이 세계도 이곳의 사람들도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어떤 생물도 존재한 적 없는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달고 미지근한 슬픔」, 292~292쪽)


생태 탐사용 고래 로봇 이야기를 다룬 「소금물 주파수」는 동화 같은 소설이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을 배경으로 바다에서 수많은 고래들을 만나고 육지로 돌아오는 돌고래 ‘해몽’을 만들고 사랑한 할머니 과학자. 소설 속 해몽이가 진짜 존재할 것만 같다.


평행 세계를 다루며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는 「비구름을 따라서」는 나를 울컥하게 만든 소설이다. 죽은 친구 ‘이연’의 이름으로 온 추도식 초대장. ‘보민’은 누군가의 고약한 장난이라고 여겼지만 신경이 쓰인다. 이연과 보민은 보드게임 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만들고 설명하는 게임 ‘노바 파우치’를 하며 친해졌고 룸메이트가 되었다. 이연은 자주 직장을 옮겼고 가족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이연의 방은 잡동사니와 쓰레기 같은 물건들이 가득했고 그것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이라 말했다. 보민은 이연이 불안했다. 그래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사람은 아니었다.


날짜가 뒤죽박죽인 초대장 중 하나에서 발견한 문구가 아니었다면 초대장에 적힌 주소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문구는 언젠가 이연이 상상했다며 들려준 것이었다. 그곳에서 이연의 초대를 받은 두 명과 이연이 말한 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이연은 다른 세계로 건너갔고 그 세계에서 수많은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그쪽에서 보낸 걸 이쪽에서 발견하게 될 확률은 아주 적으니 이연은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평행세계에 대한 소설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애틋한 적이 었었던가. 이연은 자신이 본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을 초대했다. 막을 건너는 일은 보민과 다른 두 사람의 선택이었다.


알 수 없었다. 막을 건너온 것은 작은 사소한 물건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거대한 세계와 사람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상하는 일뿐. (「비구름을 따라서」, 374쪽)


김초엽이 보여준 세계는 낯설고 이상하다. 여기가 아닌 거기에만 존재할 것 같지만 그가 전하는 바는 명확하다. 무엇을 꿈꾸든 그 꿈을 방해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나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타자가 공존하는 세계를 향한 지속적인 환대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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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안 읽었다묜 바로 찾아서 읽고싶게 만드는 멋진 리뷰입니다. 김초엽이 전하는 공존과 환대의 세계가 정말 좋죠. 이렇게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작가가 있다는게 너무 좋네요

자목련 2025-09-15 17:19   좋아요 1 | URL
아름다운 SF 소설로의 초대라고 할까요. 김초엽이라는 통로가 아니었다면 저는 SF소설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해요. 배명훈 소설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