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거림이 지나쳐서 이제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기온이 영하 저 아래로 떨어지는 날들이다. 몸만 추운 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바람이 들이치는 것만 같다. 새해에 맞게 뭔가 새롭게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은 어디서 오는 걸까. 주변에 뭐라 말하는 이도 없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새해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이즈음의 글에는 계획을 세우는 게 세우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큰 언니와의 대화가 있었다.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계획 없이 사는 나에게, 조금은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계획을 기록한 글을 찾아보니 대단한 게 없었다. 책을 조금 더 읽고 쓰고 친구를 만나는 일, 그게 전부였다. 운동을 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투자를 하거나 하는 건 없었다. 그런 계획을 다시 세워보기로 한다. 읽는 즐거움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도록 책을 고른다. 올해의 첫 시와 첫 책은 이렇다. 조용미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에서 만난 시, 디디에 에리봉의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책이다.

기이하다 오래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모든 걸 나누었던 것 같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다했던 것 같다
왜 지금은 이토록 남인가 다른 생을 받으면 이렇게 다시 시작되는가
이전의 모든 생은 분명하고 또 어렴풋하다 모든 생에서 나는 나의 기억과 함께였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런 걸 알 수가 있을까 당신은 지독한 타인이고 다음 생까지는 너무 멀다
언제나 다음 생을 믿을 만큼 나는 어리석었다
여기서 그쳐야 한다 끝이라는 말을 늘 생각한다 끝은 여러 생을 거쳐 행할 줄 모르는 습관이 생겨났다
끝은 끝끝내 오지 않아서 우리는 끝에 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끝이 없는 마음이 지옥인데도 죽어도 마음은 끝을 모른다 끝이 저 스스로 죽고 싶도록 아름답게, 처절하게 우리는
(「구제적인 삶」, 전문)
모든 게 불확실하고 모호하지만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하루의 일상, 하루의 시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분명하고 명확한 것들을 떠올린다. 하루하루 늙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 나이를 헤아리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혼자만의 새해 증후군은 조금 더 길어질지 모르지만 제주도에서 온 동백 사진은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