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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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거리낌 없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의뭉스러워진다. 뭔가를 소유하고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이뤄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득하다. 대화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깊이는 얕아진다. 진심을 표현하는 게 어렵고 가벼운 수긍이나 농담으로 눙 치는 경우가 늘었다. 사느라 그런 거라고, 고단해서 그런 거라고 여기면서도 돌아서면 내심 서럽고 웅크러진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속 단편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작가와 함께 나이를 들고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인물이 전혀 남 같지 않음이 반가우면서도 쓸쓸한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방문할 기회, 부러움의 대상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마는 「홈 파티」나 타국의 휴양지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겪는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소통의 부재보다는 돈의 문제로 부각되는 「숲속 작은 집」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적 어려움을 직면한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홈 파티’나 ‘숲속 작은 집’이라는 제목만 보면 우리네 현실과는 다른 삶이 아닐까 싶은 기대와 다른 각도를 보여주는 것. 나의 자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삶의 장면이 어떻게 펼쳐질지 성찰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이처럼 이번 단편집에서 김애란이 들려준 이야기가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냥 있을 법한 장면이나 삶의 조각이 아니라 누군가 살아내고 경험하는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가장 친숙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좋은 이웃」이 그렇다. 층간 소음이 심각한 요즘 좋은 이웃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마찬가지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아니, 내 집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전세를 살며 독서지도사로 공부방을 운영하는 ‘나’는 윗집의 공사로 인해 소음과 일에 차질이 생기고 피해를 입는다. 이사를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 안내를 하고 서명을 받으며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말은 이행되지 않는다. 선의로 이해를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전세이기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과 가르치는 학생의 이사로 복잡하다. 장애가 있는 시우가 곧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학부모는 그곳까지 와서 수업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만 선뜻 대답을 할 수 없다. 좋은 이웃이자 좋은 선생님은 의지가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좋은 이웃」, 142쪽)






남들처럼 사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 때가 되면 전세가 아닌 자가의 공간에서 살 수 있다는 행운은 나만 비껴가는 것일까. 이런 마음은 「빗방울처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좋은 이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를 다루지만 한층 심각한 전세 사기에 대한 이야기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앞둔 ‘지수’에게 닥친 일은 뉴스에서나 들은 것이었다. 집 주인이 집을 담보도 대출을 받고 연락 두절이 된 것. 천장에선 물까지 새는 상황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새 아파트 입주가 아닌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는 일이다. 그럴 수 있다 쳐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누가 지수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머물다 떠난 자리가 단정하길 바랐던 지수는 물 새는 천장 도배를 위해 도배사를 부른다. 안방 천장 상태를 살피던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건네는 그 평범한 말을 통해 아무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그녀에게서 받는다. 생의 마지막을 결심한 그 순간에 말이다.


삶의 끝이 무엇일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언제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러니 어떤 일들은 그냥 이유 없이 다가오고 일어난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의 ‘은미’에게도 그랬다. 달콤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간병이 길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연인 헌수와의 이별이야말로 예정된 수순이었고 엄마를 떠나보낸 은미는 사십 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나이, 그러나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나이, 은미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화상 영어 사이트를 통해 원어민에서 영어를 배운다. 그 과정에서 ‘안녕’이란 말이 은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연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엄마와의 작별, 그리고 원어민 교사와의 이별. 왜 나만 이렇게 버겁고 힘든가 싶었던 모든 것들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위안.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안녕이라 그랬어」, 250쪽)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준비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니다. 삶은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쯤 원하는 삶과 마주할지 알 수 없다. 좋은 삶을 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과 비교하고 절망한다. 행복의 수치를 돈으로 헤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사정도 있고 아픔도 있을 것이다. 김애란은 그것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돈과 이웃의 이야기로 엮은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더 높은 곳, 다른 계층으로의 이동을 욕망하는 자연스러움을 포착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라고 가만히 위로를 건넨다.


앞으로도 저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작가의 말 중에서, 316~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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