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폐허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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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을 때마다 절망과 고통에 부딪히는 시대다. 하여 많은 이들이 환멸의 삶을 살고 있다. 길을 잃을 양처럼 목자를 찾는다. 불안과 허무로 채워진 삶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인문학과 철학을 향한 급증된 관심을 보면 그곳에 무언가 해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에밀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어쩌다 읽게 된 책이다. 그러니 나는 에밀 시오랑의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때문에 그의 사색에 더 쉽게 흡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쫓기는 듯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유를 선물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한 긍정이나 행복에 대해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죽음, 고통, 허무, 슬픔, 우울로 가득하다. 그것이 모두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에밀 시오랑은 ‘유’가 아닌 ‘무’ 를 통해 존재를 말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시절, 살아내기 위해 살았던 시절에는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이런 구절을 마주하면서 죽음은 삶의 동의어구나 생각한다.

 

 ‘삶의 구조 자체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의 구성 속에 없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을 없음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삶을 삶의 부정이라는 원칙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곧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은 ‘없음’ 이 결국 삶을 누르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없음을 향하는 도정을 현재화한다.’ (「죽음에 대한 소고 」중에서, 45쪽)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나의 삶을 생각하니 말이다. 아니, 슬픔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는 여지없이 죽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을 누가 알아차릴까 두려울 뿐이다. 하지만 슬픔의 얼굴은 표가 난다.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슬픔에 표정은 잠식당하고 만다. 그리하여 결국엔 슬픔의 주제를 잃어버리고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슬픔은 신비로 교체된다. 아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는 슬픔이라니...  

 

 ‘깊은 슬픔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의 얼굴에서는 너무도 많은 외로움과 체념을 읽을 수 있어, 슬픔에 찬 얼굴은 곧 죽음이 밖으로 드러난 형상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슬픔은 신비로 향하게 된다. 그 신비는 너무도 깊어 슬픔을 수수께끼로 남긴다. 만일 신비의 등급을 매긴다면 슬픔은 무한하고 끝없는 신비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슬픔에 대하여 」중에서, 73쪽)

 

 어제와 다르지 않는 오늘을 살면서 우리는 때로 수많은 어제를 그리워한다. 그때는 좋았는데, 그때가 행복했는데,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에 속한 삶이 아니라 오늘을 느껴야 한다고 에밀 시오랑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순간은 오늘인 것이다. 현재를 기억하고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말이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의 상처가 남긴 환부를 지켜보며 살기 때문이다. 그는 이별했던 순간, 무시당했던 순간, 부끄러웠던 순간을 현재의 순간으로 채울 수 있어야만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각인시켜 준다.

 

 ‘영원한 현재는 실존이다. 영원한 현재를 경험하면서 실존은 자명해지고 확실해진다. 순간의 연속에서 떨어져 나온 현재는 없음을 벗어나 존재를 생산한다. 순간의 기쁨 그리고 사물의 온전한 있음이 주는 매력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 순간 속에 살 수 있고, 현재를 빈틈없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순간 속의 절대」중에서, 155쪽)

 

 모든 구절에 밑줄을 긋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이가 그럴 것이다. 주제마다 우울과 허무가 산재해 있지만 분명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왜 나만 불행할까, 왜 나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절망하는 이에게 나의 심연과 마주하게 만든다. 산다는 건, 그 자체가 고행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은 세상의 전부가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당해야 할 고통의 몫이 줄어든다. 안다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에밀 시오랑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다.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외로움이 아무리 깊더라도,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는 세상을 더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객관적 의미나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를 찾을 수 없지만, 존재의 다양한 형태들은 내게 언제나 슬픔과 희열의 원천이다.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이 우주의 궁극적 목적을 충분히 보상해주듯,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작은 구름 조각이 나의 우울한 염세주의를 즐겁게 해주는 순간들을 경험했었다. 내면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지극히 미미한 자연의 광경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발견한다.’ (「고통의 저주스러운 원칙」중에서, 198쪽)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는 제목처럼 곧 해가 뜬다는 명징한 사실을 잊고 살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만 살아갈 것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어둠이 길어질수록 마주할 빛은 크고 눈부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통과 절망의 삶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삶을 지배하고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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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돌아보며 읽은 책을 정리하는 일은 즐겁다. 잊고 있었던 책들과 다시 마주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읽었던 책, 놀랍게 읽었던 책,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책을 생각한다. 항상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싶은 책만 나열한 글이 많다. 부끄러운 일이다. 해마다 다양한 책읽기, 인문서적 읽기를 목표로 삼지만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다. 외국문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은 왜 이리 많은지, 새로운 작가와 만날 때마다 놀란다. 특별했던 소설, 더 많이 알고 싶은 작가들의 소설이다.

 

 20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 , 나만 그 명성을 몰랐던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 , 애정하는 작가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 , 영화로 더 기대가 되는 토마스 H. 쿡의  『붉은 낙엽 , 매튜 탐정의 다른 활약이 궁금한 로렌스 블록의  『죽음의 한가운데 가 그렇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 14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여든이 넘은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해서 여성 독자들이 많은 공감을 할 이야기라 생각한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곁에 둔 지 오래지만 정작 만난 건  『세상의 모든 아침』 이다. 긴 소설이 아닌데 무척 힘겹게 읽었다. 읽고 리뷰를 썼지만 어떤 소설인지는 설명할 수 없는, 파스칼 기냐르는 내게 그런 작가다. 제임스 설터는 그냥 좋다. 단편집에 이어 만난 장편  『가벼운 나날』 에서도 그는 무심한 듯한 삶을 그려내고 뒤흔든다.  『붉은 낙엽』 은 정말 놀랍고 아름다웠다. 분명 추리소설이었다. 아이는 유괴되었고 범인은 잡혔다. 그 과정에서 의심과 불신에 대한 묘사가 정말 멋지다. 로렌스 블록의  『죽음의 한가운데』 는 추억을 불러온다. 사건이 아닌 사건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공중전화를 찾고 싶게 만드는 아련한 그리움까지 선물한다.

 

 

 

 

 

 

 

 

 

 

 

 

 여전히 읽겠다고 구매한 책들은 많다. 하나씩 모으는 밀란 쿤데라 전집, 급 궁금해진 토마스 만과 윌리엄 포크너, 세계문학들, 해외문학상 수상작들은 언제나 궁금하다. 가장 빨리 읽게 될 외국문학은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끼의  『마부』, 읽다가 멈춘 문학동네 세계문학 여명』, 읽은 이마다 호평만 하는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애드 맥배인의 『조각 맞추기』,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이다. 게획대로 읽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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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1-0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도 벌써 셋째날이네요. 신명나는 한 해 누리세요^^

자목련 2014-01-03 17:44   좋아요 0 | URL
어, 하는 사이에 내일이 주말이네요.
2014년에는 즐겁고 기쁜 일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님, 매번 먼저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한국문학이다. 한데 1년 동안 사놓은 한국문학이 읽은 그것보다 훨씬 많다. 그러니까 여기 올린 책들은 읽은 책 중에서 선정한 것이다. 물론 기준은 내 맘대로다. 최진영의 <팽이>, 류소영의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노재희의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어쩌다 보니 단편집이 4권이다.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과 구병모의 <파과>도 나쁘지 않았다. 시집은 제대로 읽고 리뷰를 쓴 게 없어서 제외했다.

 

 최진영은 젊은작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이 소설집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 그녀의 시선이 더 궁금해졌다. 공교롭게도 작가정신의 소설이 두 권이다. 노재희와 류소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윤고은의 소설은 이번에 세 번째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가장 좋았다. 강유정의 말대로 그녀는 변화하고 있었다. 아, 김연수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리뷰를 쓰지 못했다. 이 소설집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리뷰를 쓰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민음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반갑고, 작가정신에서 나오는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진다. 2014년에는 김숨의 <국수>, 백민석의 <혀끝의 남자>, 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을 읽을 것이다. 꼭 리뷰도 남기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기다리는 작가는 김이설 단편집과 정용준 장편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문학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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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이 보낸 문자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문자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알림 문자다. 김숨의 소설집 『국수가 담긴 상자를 택배로 받은 기분이다. 표지도 산뜻하다. 창비에서는 김숨의 책이 처음이지 싶다. 고요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단면을 담았을 기다렸다.

 

 여전히 2G를 사용한다는 한귀은의 『엄마와 집짓기』도 기다렸다. 제목처럼 엄마와 집을 짓는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이면에는 분명 관계와 삶에 대한 글이 있을 게 분명하다. 봄을 맞는 듯한 표지가 이 겨울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민음의 시 200이자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인 손미의 양파 공동체』, 윤제림의 『새의 얼굴』은 12월과 1월을 이어주는 시집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2013년의 마지막 주문이자 2014년의 첫 주문으로 내 곁에 올 책들. 반가운 책도 보인다. 김민정 시인의 첫 산문집 『각설하고,』는 표지 이미지가 시인을 닮은 듯하다.

 

 

 

 

 

 

 

 

 

 

 

 

 

 

 

 

 

 

 

 그런가 하면 오전에는 몇 권의 소설집을 정리했다. 다시 읽지 않을 책이었지만 한참이나 망설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도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쌓인 책들, 먼지를 옷처럼 입고 있는 책들, 자주 읽고 싶어서 책장 앞에 놓아둔 책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이틀도 남지 않은 2013년에게도 미안하다. 성실하지 못했던, 간절하지 못했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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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0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3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에게 시 - 그 어떤 위로보다
박형준 지음 / 사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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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러운 마음으로 가득할 때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불현듯 전화를 걸어도 반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줄 사람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지 못한다. 내 작은 상처와 아픔에 나보다 더 아파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땐 속울음을 쏟는다. 그러다 시를 읽기도 한다. 소리를 내어 시를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괜찮아지는 듯하다. 물론 시를 읽다 끝내 참았던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다.

 

 계절마다, 달마다 생각나는 시도 있다. 비가 오면 읽고 싶은, 눈이 오면 꺼내고 싶은 시집도 있다. 시 전부를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다시 찾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시의 세계는 넓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시는 여전히 많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산다. 박형준이 엮은 『그 어떤 위로보다 당신에게 시』을 읽으면서도 몇 권의 시집을 메모한다.

 

 박형준이 소개한 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부터 황동규, 허수경, 문태준, 이정록, 정현종, 김기택, 함민복, 이제니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시인과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 만나는 시도 많았다. 한 편의 시와 함께 박형준의 글이 있다. 박형준이 고른 시는 힘겨운 삶에 위로가 되어주는 시다. 그러니까 어떤 시는 밥이고, 어떤 시는 뜨거운 포옹이 고, 어떤 시는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시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고운 손이 되기도 한다. 봄을 품었지만 유난히 추워 마음까지 옹송그리게 만드는 이 겨울, 이런 시는 이 시대의 모든 어른에게 위로가 된다.

 

 「코코로지(CocoRosie)의 유령」

 

 지금은 거울 속의 수염을 들여다보며 비밀을 가질 시기

 지붕 위의 새끼 고양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희고 작은 깨끗한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겨울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나는 어른으로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른으로서

 봄이 되면 지붕 위가 조금 시끄러워질 것이고

 죽은 물고기들을 닮은 예쁜 꽃들을 볼 수가 있어

 봄이 되면 또 나는 비밀을 가진 세상의 여느 아이들처럼

 소리치며 공원을 숲길을 달릴 수 있겠지

 하지만 보시다시피, 지금은 겨울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부끄러움을 가질 시기 (56쪽)

 

 황병승의 시에 박형준 시인은 이런 글을 덧붙혔다. ‘어른들의 슬픔은 신문에서, 방송에서, 회사 사무실에서 떠들어대며 객관화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슬픔이다. 그들은 슬픔을 나누고 곱하고 빼고 더하며 슬픔의 양을 잰다. 거울을 비춰보면 수염이 가득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자신만의 슬픔을 비밀스럽게 간직하려는 어린이다. 어린이들의 슬픔을 유리창을 맑게 닦아내는 세상의 창이다.’ (57쪽) 겨울이 지나고 나면 분명 봄은 올 것이다. 저마다 기다리는 봄의 풍경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생이 올라탄 롤러코스터는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분명 희망도 있을 터. 이성복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의 롤러코스터가 어디쯤 와 있을까, 생각한다.

 

 「강」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조각이

 미지(未知)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100쪽)

 

 ‘우리는 사소한 존재이지만 언제나 인생이란 강물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쓸쓸하고 아프더라도 그 기척은 아름답다’(101쪽)고 전하는 박형준의 글처럼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존귀하고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시가 지닌 힘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읽은 때마다 아릿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니 말이다.

 

1년 단위로 매듭지는 생인 양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괜히 더 심란하기도 하다. 도망치듯 떠나온 1월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새로 세워질 계획들을 생각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 게 아닌가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는 날들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을 1년, 천양희 시인의 시를 읽으며 절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1년」

 

 작년의 낙엽들 벌써 거름 되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작년의 씨앗들 벌써 꽃 되었다

 후딱, 1년이 지나갔다

 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 꺾었다 (216쪽)

 

 겨울에 마주한 까닭인지 기형도의 시 「겨울. 눈(雪). 나무. 숲」의 이런 시구를 여러 번 읽는다. ‘나는 여기 있다./ 죽음이란/ 가면(假面)을 벗은 삶인 것./ 우리도, 우리의 겨울도 그와 같은 것’/ 우리는/ 서로 닮은 아픔을 향(向)하여/ 불을 지피었다./ 창(窓) 너무 숲 속의 밤은/ 더욱 깊은 고요를 위하여 몸을 뒤채인다. (138,139쪽)

 

 ‘시는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숨통 같은 것이다. 숨을 잘 쉬면 육신이 맑아지고, 육신이 맑아지면 숨결이 맑아진다.’ (6쪽)는 박형준 시인의 말처럼 고단한 영혼에 위안을 줄 시들이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번지는 당신의 슬픔을 시가 위로한다. 감히 짐작할 수 없었던 크기의 맹렬한 위로와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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