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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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을 갖는 건 좋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하게 김훈의 소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에 대해서도 김훈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서, 기자 시절의 김훈을 상상하기도 했다. 읽기 전에 짐작만으로 소설을 판단하는 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미친 건 소설을 다 읽은 후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맑은 소설이다. 고요한 산사에 울리는 풍경의 울림이랄까. 내게는 그 소리로 들렸다. 그리하여 그 소리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가  꽃과 나무들 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한다. 김훈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김훈의 소설을 권한다면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가 아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소설은 세밀화가인 연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의 풍경이다. 연주 자신의 가족과 그녀 주변의 인물들을 그녀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묘사한다.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어머니. 군청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결국 뇌물죄와 공무원이란 위치를 이용해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는 감옥에 있다. 비루하고 비루한 가장으로의 삶,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아니지만 연주는 지난한 그의 삶에 연민을 느낀다.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고 자유를 얻는 듯 보이는 어머니, 늙고 병든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생각한다. 

  ‘마음의 일은 말하기 어렵다. 마음의 나라는 멀고 멀어서 자욱하다. 마음의 나라의 노을과 바람과 시간의 질감을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면회가면서 알았다.’ p. 11  연주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은 모두 마음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게 된 연주는 달마다 대표하는 꽃과 나무를 세밀화로 그려 보존하는 일을 맡는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숲을 통해 연주는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민통선 안의 생활은 단절 아닌 단절의 생활이었다. 안과 밖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까. 밖에서 보는 국립수목원과 민통선에 주둔한 군인들은 사무적이고 딱딱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와 연주가 만난 김중위는 여리고 부드러운 청년이었고, 수목원의 연구실장 안요한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이혼을 하고 세상과 소통을 두려워하는 아들 선우와 함께 사는 안요한을 통해 연주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선우와 나란히 식당에 앉아 아들의 밥에 반찬을 얻어주는 모습, 아버지와 꼭 닮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 연주가 그랬듯 나도 세상 모든 아버지들, 자식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사람들, 아버지의 삶이 가엾고 고단하게 느껴진다. 가석방 된 아내와 딸과 마주했을 때,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아버지는 꽃을 그리는 자식을 걱정한다. 

 연주가 그리는 숲은 김훈의 문장으로 피어났다. ‘5월의 숲은 강성했다. 숲의 어린 날들은 길지 않았다. 나무들은 바빠서 신록의 풋기를 빠르게 벗어났다. 잎이 우거지면 숲의 음영은 깊었다. 밝음과 어둠이 섞여서 푸른 그늘이 바람에 흔들렸고 나무들 사이로 맑은 시야가 열렸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스며서 그림자가 오히려 빛을 드러냈고 어둑한 시야 안에서 먼 나무와 풀 들의 모습이 가깝고 선명했다. 숲에서는, 빛이 허술한 자리에서 먼 쪽의 깊이가 들여다보였다.’ p. 143 

 5월의 숲을 상상한다. 5월은 방황하는 청춘을 닮았다. 바람이라는 시련과 고통이라는 그림자, 그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의 숲이 탄생되는 듯하다. 문득, 나는 몇 월의 숲을 닮았으며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생각한다.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잘 꿰어진 보석이다. 귀한 문장들, 자꾸 거내어 보고 싶다. 가령 이런 문장들,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p. 164  ‘저절로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일은 저절로 되어지지 않는다.’ p. 337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고 했던가. 봄을 시작으로 겨울까지 연주가 그려 낸 숲은 삶의 단면이었는지 모른다. 숲에 있을 때 숲의 존재를 모르듯 부재를 인식하고서야 존재를 확인한다. 풀과 꽃과 나무가 모여 이룬 숲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숲에서 나와야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네 관계도 그러하다. 아버지란 존재의 부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이 곧 아름다운 풍경임을 우리는 언제나 알게 될까.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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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72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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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친구들과 몰려 다니던 시절, 봄이 되면 봄앓이를 했다. 천지 사방으로 피어나는 꽃들과 연두빛 들판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른들 말씀이 그렇듯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정말 빛나는 시절이었다. 요즘, 그러니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는 부쩍 겨울이 되면 쓸쓸하고 허전하다. 다행인 건 일상을 나누는 친구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나만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간은 늘 괴어 있다 

 수세기 저편에서  
 풀꽃 하나 흔들린다 

 하이덱거적 창문으로서의  
 한 Dasein도 흔들린다  

 흔들리고 흔들리는  
 이 세계 속에서 왜 시간은  
 늘 괴어 있는 것일까? 

 영원으로서 흔들리는 이 세계 안에서  

 흔적도 없이 괴어 있는 
 시간의 잿빛 그림자  - <시간의 잿빛 그림자> 전문 p. 43 

 
 잠들지 못하는 밤, 시를 읽었다.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제목의 시집이다.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 후회의 순간들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느 해보다 올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환자복을 입고, 제법 환자다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병실에 침대를 마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입원과 가퇴원을 반복하던 내 또래의 환자, 단순 종양제거 수술로 알고 열심히 운동을 하셨지만 위암이셨던 할머니 환자. 초췌하고 고통스런 표정의 내 모습이, 그곳에 고스란히 괴어 있다.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 <한 세월이 있었다> 전문 p. 62   

 
 시인에게 괴어 있는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은 늘 그렇게 괴어 있는 건 아닐까. 괴어 있는 시간들이 모여 한 세월을 만들고, 잡히지 않는 순간들은 또 어디론가 흘러가고. 그러다가 한 순간 마주하게 되는 세월들. 우리네 삶이 돌고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지나온 고통과 슬픔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흘러갔다가 다른 모양으로 내게 돌아오듯 말이다.  

 시를 통해 시인은 지난한 시간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간을 정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새롭게 변화하려는 시도, 그러나 불안감도 엿보인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그래도 어떤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하는 의지, 내일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느라 헤아리지 못한 것들을 떠올린다. 시인의 시가 도착할 그곳이 시인의 바람대로 어떤 풀밭이면 좋겠다. 어떤 풀밭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내 詩밭은 황폐했었다 
 너무 짙은 어둠, 너무 굳어버린 어둠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그러나 이사 갈 집이 
 어떤 집일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 
 너무 시장 거리도 아니고 
 너무 산기슭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예는, 다른, 다른, 다, 다른,   
 꽃밭이 아닌 어떤 풀밭으로 
 이사 가고 싶다  -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전문  p. 50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 <참 우습다>전문 p. 84  

 
<참 우습다>란 시를 읽으면서 거울을 들여다 본다. 주름과 기미가 가득하다. 평균적인 얼굴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얼굴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57세의 나이를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갖지 못한 나이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나이, 그러나 언젠가 마주할 나이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 했던가, 나도 피식 웃음이 난다. 꽃 피는 봄이 아니라, 추운 계절에 만났으니 다행일까.  그렇지도 모른다. 앙상한 나뭇가지로 잘 견디는 나무처럼 이 계절을 잘 견디기 위해 좋은 시들이다. 이 계절, 조금은 쓸쓸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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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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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편의 영화, 책, 음악이 특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본 영화라는 이유로, 이별을 했거나 슬픔에 잠겼을 때 들었던 음악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책이 그렇다. 따뜻한 위로를 주는 책을 만났을 때, 오래 오래 곁에 두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내게 이제 특별한 책으로 남을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을 읽었을 때, 그 대상에 속하는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서,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에 반해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어머니라는 존재 때문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일상의 기록인 신변잡기라 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을 수 있다. 부드럽고 섬세한 글로 이처럼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진정 좋은 글이구나, 감탄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로 은유한 글은 아름다웠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책으로 시작된 문학과의 만남, 함께 외갓집을 다녀오던 풍경, 쌀 위에 글씨를 써놓던 지혜, 자식을 위해 매를 들던 모습,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온 귤에 대한 아련한 추억, 바다처럼 넓고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 

 나들이는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모순을 함께 싸버린 아름다운 말이다. p. 17  그 노란 귤과 거의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 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 둥근 과일은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혔다. p. 24  바다는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짐승이 저렇게 강렬하게 숨쉴 수 있고 소리칠 수 있고 쉴 사이 없이 생동할 수 있겠는가. 어떤 풀 어떤 나무가 저렇게 늘 푸른빛으로 번지고 뻗쳐서 이 지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인가. p. 27

 어느 누가  간절함과 애통함을 이리 맑고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1934년 생으로 올해 77세인 할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였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한 번도 글로 옮겨지 못한 미련한 나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고향인 온양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문학을 사막으로 표현한 글도 인상적이다. 그는 문학인 사막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니 사막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몸속에 수분을 저장한 낙타와 선인장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생이라는 끝없는 길을 걷는 우리에게 그는 먼저 걷고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걸어여 할지 알려준다. 그가 경험하고 깨달은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감기를 들어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려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마를 짚는 그 손, 의미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혹은 조그마한 자기 아들의 손일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신열을 느낄 수가 없다.  가장 분명한 병까지도 자기의 힘만으로는, 그 인식만으로는 잡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타인들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어줄 때, 그 촉감을 통해서만, 선뜻한 타인의 체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열을 비로소 확인한다. p. 59 ~ 60 

 병든 굴과 조개에서 병을 막아내기 위해 배출한 분비물이 진주가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겪는 슬픔을 말한다. 고통 없이 탄생할 수 없는 진주처럼 절망과 슬픔을 이겨내면 희망과 즐거움을 만날 꺼라 우리를 응원한다. 우리들 고뇌의 술잔에도 이 아름다운 진주를 넣어라. 그리고 그 빛을 마시고 아픔과 눈물이 굳어버린 슬픔을 다시 녹여라. 그 생명의 술잔을 기울일 때 우리들의 피는 다시 시끄럽게 파동 치리라. 바닷물처럼. 진주의 조개를 흔들어놓던 그 바닷물처럼 고뇌의 술잔에도 그 생명의 술잔에도 잔잔한 파도가 일리라. p. 97~98  밑줄 긋고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글이다. 

 단 한번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때로 낙심과 좌절로 방황하고 그 길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돌아보며 그는 우수라 했다. 열병처럼 다가오던 10대의 첫사랑, 매일 직장에 출근하던 20대의 출근부 도장, 고단한 삶에 찌든 30대 아내의 모습,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회한에 쌓인 40대, 그리고 늙은 아버지들의 일상.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제대로 가고 있는가, 묻는다.  

 낙원보다도 이상하게 생긴 곳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렇다. 그것은 이방의 어느 나라보다도 멀고 먼 공간이다. 그 여행으로 얻은 공간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문학은 어머니의 땅에서 탱자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랗게 노랗게, 그리고 동글게 동글게 나의 언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간다. p. 162

 그에게 문학의 마지막은 시작이 그렇듯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떠난 외갓집 여행.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여행이 그를 지탱한 것이다. 어머니 없이 어느 누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있기에 세상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때론 한없이 뜨겁고 때론 한없이 강하고 때론 한없이 여리고 거대한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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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 사회, 예술 관련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여행기가 많이 보인다.  떠날 용기가 없는 난 책만 읽나 보다. 여하튼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책을 골라보면 이렇다. 우선 여행기로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굴라쉬 브런치』는 곁에 두고 천천히 읽고 싶은 맛있는 책이다. 여행과 영화를 접목시킨 책으로 프라하와 카프카를 꿈꾸게 한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p. 60

 인문 사회 분야로 최근에 읽은 엄기호의『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은 20대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내가 그네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세대에 속한다는 게 슬프다.  조카들과의 교감이 줄어들고  거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이것이 수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됨이 쉽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 이보다 더 인문학적인 발견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맞지 않으며,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발견(깨달음) 말이다.그래서 우리에게 판단과 심판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찰의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가진 무게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수업이라고 믿는다. p. 263 

 안현신의『키스를 부르는 그림』은 키스를 주제한 그림 이야기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숨겨진 화가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다른 시리즈가 나온다면 만나고 싶다.

 서로에게 녹아들어 하나의 덩어리로 일체화된 두 몽뚱이는 마치 하나의 짐승 같은 모습이다. 홀로 버티기 버거운 존재들이 서로의 경계를 강하게 침투해보지만 그 몸짓은 오히려 불안하고, 채워질 길 없는 사랑의 갈망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p. 99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민세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을 읽으면서 백두산을 만나는 시간은 조금 울컥했다. 간결한 문장으로 묘사한 1930년대 풍경은 쓸쓸했고 아름다웠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책이다. 

 여행은 한가한 일이 아니다. 높은 산에 오르고, 한바다에떠서 천지의 드넓은 기운을 마시면서 웅장하고 아득한 기상을 기르는 것은 그대로 세상에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도시와 시골, 산과 들에서 백성의 만물이 살아 숨 쉬는 실제 상황을 폭넓게 보고, 고금에 변해온 자취를 살피는 것은 사회인에게 가장 으뜸가는 책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여행이 필요하고, 여행기도 가치가 있다. p. 5 - 서문 중에서  

 
이야기꽃이 쓴 동화『신데렐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신데렐라가 아닌 토론을 위한 책이라 하겠다. 고학년 자녀를 두었다면 아이와 함께 읽고 의견을 교환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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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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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일이 정말 힘들었을텐데 엄마는 단 한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엄마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라고 한 번이라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가 내게로 왔을 때,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다. 나와 같은 나이였겠지만 엄마는 네 아이의 엄마였고 나이보다 휠신 더 들어 보였을 게 분명하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기가 되니 산다는 게, 생이란 무엇일까, 자꾸 생각한다. 핑계를 대자면 올리브 때문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미국 메인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특별한 일상을 담은 소설말이다. 엄마가 올리브처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키가 크고 푸석푸석한 퍼머컬을 가진 마른 올리브의 이미지에서 잠깐 엄마를 떠올린다.  그러나 엄마는 올리브처럼 당당하지 못했고, 그녀처럼 사랑에 흔들릴 겨를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분주한 일상을 살았다.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3편의 연작 이야기는  다양한 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그 중심에 수학 교사이며 다정다감 대신 강한 자존심과 까칠한 성격의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누군가 이미 겪었을 법한, 혹은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연출되는 삶의 현장을 묘사한다.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흥미롭다.   

 약국을 하는 남편 헨리가 직원 데이지의 푸른 눈에 끌리는 순간을 올리브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자식은 또 어떠한가. 부모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 아들과 결혼한 잘난 며느리가 너무 못마땅해 몰래 신발과 옷을 훔쳐나오는 올리브의 심경을 그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이혼하고 남의 자식을 키우며 재혼해 뉴욕에 살고 있는 크리스토퍼를 만나 어린시절 자신 때문에 힘겨웠다는 아들의 고백을 드는 건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작은 마을엔 놀랍고 끔찍한 삶도 있었다.어머니의 자살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케빈이 자살을 결심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은사 올리브는 그의 계획에 없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케빈은 자살을 실천에 옮겼을지 모른다. 올리브는 그렇게 여러 삶의 합집합이며 교집합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끌리고 더 빠져든다. 

 결혼식 전에 파혼한 딸의 남자친구에게 총을 쏘는 일이 엄마에게 최선이듯, 가족보다 남자친구를 선택하는 길이 딸에게도 최선일 것이다. 마약에 빠져든 젊은 청춘이 있었고, 일요일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편안함을 느껴 이혼을 결심하는 노년의 삶, 오랫동안 숨겨진 여자로 살아온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깨져버리는 삶이었다.  

 뇌졸중으로 요양원 신세를 지다 죽음을 맞이한 남편 헨리,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아들 크리스토퍼, 노년의 올리브는 여전하게 고집쟁이다. 언젠가 죽을 꺼란 사실에 올리브는 담담하지만 서글퍼한다. 그런 올리브를 보면서 내 모습은 언제나 똑같은데 세상과 사람들은 변하는 기분마저 든다. 

  그네들의 이야기는 낯선 땅 미국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 동네 옆집, 건너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가깝고 정겹게 느껴진다. 누구나 집집마다 그들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내게 닥친 문제가 제일 힘들고 제일 커 보일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알게 되는 건 언제일까.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출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그 당시엔 미처 알지 못한다. 뭐든지 지난 후에야 그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 현재에 충실하기 보단 언제나 먼 미래를 보기 때문이리라.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반복되는 현상처럼 우리네 삶도 그러하리라. 왈칵 밀물처럼 슬픔에 젖었다가 금세 기쁨과 마주할 것이다. 그리하여 삶이 계속되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p. 227  책에서 만난 문장처럼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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