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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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일이 정말 힘들었을텐데 엄마는 단 한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내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엄마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라고 한 번이라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가 내게로 왔을 때,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다. 나와 같은 나이였겠지만 엄마는 네 아이의 엄마였고 나이보다 휠신 더 들어 보였을 게 분명하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기가 되니 산다는 게, 생이란 무엇일까, 자꾸 생각한다. 핑계를 대자면 올리브 때문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미국 메인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특별한 일상을 담은 소설말이다. 엄마가 올리브처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키가 크고 푸석푸석한 퍼머컬을 가진 마른 올리브의 이미지에서 잠깐 엄마를 떠올린다.  그러나 엄마는 올리브처럼 당당하지 못했고, 그녀처럼 사랑에 흔들릴 겨를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분주한 일상을 살았다.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3편의 연작 이야기는  다양한 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그 중심에 수학 교사이며 다정다감 대신 강한 자존심과 까칠한 성격의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누군가 이미 겪었을 법한, 혹은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연출되는 삶의 현장을 묘사한다.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흥미롭다.   

 약국을 하는 남편 헨리가 직원 데이지의 푸른 눈에 끌리는 순간을 올리브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자식은 또 어떠한가. 부모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 아들과 결혼한 잘난 며느리가 너무 못마땅해 몰래 신발과 옷을 훔쳐나오는 올리브의 심경을 그 나이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이혼하고 남의 자식을 키우며 재혼해 뉴욕에 살고 있는 크리스토퍼를 만나 어린시절 자신 때문에 힘겨웠다는 아들의 고백을 드는 건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작은 마을엔 놀랍고 끔찍한 삶도 있었다.어머니의 자살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케빈이 자살을 결심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은사 올리브는 그의 계획에 없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케빈은 자살을 실천에 옮겼을지 모른다. 올리브는 그렇게 여러 삶의 합집합이며 교집합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끌리고 더 빠져든다. 

 결혼식 전에 파혼한 딸의 남자친구에게 총을 쏘는 일이 엄마에게 최선이듯, 가족보다 남자친구를 선택하는 길이 딸에게도 최선일 것이다. 마약에 빠져든 젊은 청춘이 있었고, 일요일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편안함을 느껴 이혼을 결심하는 노년의 삶, 오랫동안 숨겨진 여자로 살아온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깨져버리는 삶이었다.  

 뇌졸중으로 요양원 신세를 지다 죽음을 맞이한 남편 헨리,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아들 크리스토퍼, 노년의 올리브는 여전하게 고집쟁이다. 언젠가 죽을 꺼란 사실에 올리브는 담담하지만 서글퍼한다. 그런 올리브를 보면서 내 모습은 언제나 똑같은데 세상과 사람들은 변하는 기분마저 든다. 

  그네들의 이야기는 낯선 땅 미국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 동네 옆집, 건너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가깝고 정겹게 느껴진다. 누구나 집집마다 그들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내게 닥친 문제가 제일 힘들고 제일 커 보일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알게 되는 건 언제일까.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출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그 당시엔 미처 알지 못한다. 뭐든지 지난 후에야 그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 현재에 충실하기 보단 언제나 먼 미래를 보기 때문이리라.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반복되는 현상처럼 우리네 삶도 그러하리라. 왈칵 밀물처럼 슬픔에 젖었다가 금세 기쁨과 마주할 것이다. 그리하여 삶이 계속되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p. 227  책에서 만난 문장처럼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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