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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의 영화, 책, 음악이 특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본 영화라는 이유로, 이별을 했거나 슬픔에 잠겼을 때 들었던 음악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책이 그렇다. 따뜻한 위로를 주는 책을 만났을 때, 오래 오래 곁에 두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내게 이제 특별한 책으로 남을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을 읽었을 때, 그 대상에 속하는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서,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에 반해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어머니라는 존재 때문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일상의 기록인 신변잡기라 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을 수 있다. 부드럽고 섬세한 글로 이처럼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진정 좋은 글이구나, 감탄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로 은유한 글은 아름다웠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책으로 시작된 문학과의 만남, 함께 외갓집을 다녀오던 풍경, 쌀 위에 글씨를 써놓던 지혜, 자식을 위해 매를 들던 모습,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온 귤에 대한 아련한 추억, 바다처럼 넓고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
‘나들이는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모순을 함께 싸버린 아름다운 말이다.’ p. 17 ‘그 노란 귤과 거의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 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 둥근 과일은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혔다.’ p. 24 ‘바다는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짐승이 저렇게 강렬하게 숨쉴 수 있고 소리칠 수 있고 쉴 사이 없이 생동할 수 있겠는가. 어떤 풀 어떤 나무가 저렇게 늘 푸른빛으로 번지고 뻗쳐서 이 지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인가.’ p. 27
어느 누가 간절함과 애통함을 이리 맑고 곱게 표현할 수 있을까. 1934년 생으로 올해 77세인 할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였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한 번도 글로 옮겨지 못한 미련한 나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고향인 온양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문학을 사막으로 표현한 글도 인상적이다. 그는 문학인 사막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니 사막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몸속에 수분을 저장한 낙타와 선인장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생이라는 끝없는 길을 걷는 우리에게 그는 먼저 걷고 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걸어여 할지 알려준다. 그가 경험하고 깨달은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감기를 들어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려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이마를 짚는 그 손, 의미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혹은 조그마한 자기 아들의 손일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신열을 느낄 수가 없다. 가장 분명한 병까지도 자기의 힘만으로는, 그 인식만으로는 잡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타인들의 손이 나의 이마를 짚어줄 때, 그 촉감을 통해서만, 선뜻한 타인의 체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열을 비로소 확인한다.’ p. 59 ~ 60
병든 굴과 조개에서 병을 막아내기 위해 배출한 분비물이 진주가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겪는 슬픔을 말한다. 고통 없이 탄생할 수 없는 진주처럼 절망과 슬픔을 이겨내면 희망과 즐거움을 만날 꺼라 우리를 응원한다. ‘우리들 고뇌의 술잔에도 이 아름다운 진주를 넣어라. 그리고 그 빛을 마시고 아픔과 눈물이 굳어버린 슬픔을 다시 녹여라. 그 생명의 술잔을 기울일 때 우리들의 피는 다시 시끄럽게 파동 치리라. 바닷물처럼. 진주의 조개를 흔들어놓던 그 바닷물처럼 고뇌의 술잔에도 그 생명의 술잔에도 잔잔한 파도가 일리라.’ p. 97~98 밑줄 긋고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글이다.
단 한번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때로 낙심과 좌절로 방황하고 그 길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돌아보며 그는 우수라 했다. 열병처럼 다가오던 10대의 첫사랑, 매일 직장에 출근하던 20대의 출근부 도장, 고단한 삶에 찌든 30대 아내의 모습,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회한에 쌓인 40대, 그리고 늙은 아버지들의 일상.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제대로 가고 있는가, 묻는다.
‘낙원보다도 이상하게 생긴 곳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렇다. 그것은 이방의 어느 나라보다도 멀고 먼 공간이다. 그 여행으로 얻은 공간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문학은 어머니의 땅에서 탱자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랗게 노랗게, 그리고 동글게 동글게 나의 언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간다.’ p. 162
그에게 문학의 마지막은 시작이 그렇듯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떠난 외갓집 여행.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여행이 그를 지탱한 것이다. 어머니 없이 어느 누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있기에 세상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때론 한없이 뜨겁고 때론 한없이 강하고 때론 한없이 여리고 거대한 엄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