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런거리는 유산들
리디아 플렘 지음, 신성림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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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쁜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가족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말도 맞지만 말이다. 어제는 작은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사촌 동생의 한의사 합격에 대한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친밀하게 교류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강한 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명절에 아버지 형제를 만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당연한 일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설이 다가오는 시기라 그런지 식탁 위에 놓인 사진을 들여다본다. 많지 않은 식구들, 봄날의 햇살 아래서 다들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를 보내고 찍은 사진이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껏 그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리 안에 계속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 쪽에서는 우리를 더는 생각할 수 없다. 대화는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이어진다. 그들에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40~41쪽)

 

 아버지를 기억할 물건은 거의 없다. 반대로 큰언니의 흔적이 남은 물건은 아주 많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큰언니와 함께 산다. 다만 곁에 없을 뿐이다. 사라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 다시는 만질 수 없는 것, 대화를 나룰 수 없는 것, 특유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 소소한 것들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건 때로 비통함을 몰고 온다. 곧 첫눈이 올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큰언니에게 전할 수 없다. 아니, 전할 수 있다. 눈이 온다는 걸 말하면 그것을 큰언니가 듣는다는 걸 믿으니까. 사촌동생의 한의사 합격 소식을 마음으로 전하면서 함께 기뻐한다.

 

 사라져서 곁에 없다는 것, 그것이 죽음의 실체일까. 죽음에 대해 말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주인을 잃고 남겨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하면 맞을까. 주기적으로 큰언니 집에서 일정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엔 나를 기다리는 나무들이 있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윙윙 거리는 커다란 냉장고가 있다. 계절마다 이불장을 환기 키시고 이불을 꺼내 소독한다. 큰언니를 증명하는 신분증, 여권, 일기장, 영수증은 아직도 그곳에 남았다. 천천히 정리해도 괜찮다는 이유로, 미뤄둔 일이다. 유산을 정리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럴 때마다 리디아 플렘의 『수런거리는 유산들』 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책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남겨진 집을 정리하면서 상실의 슬픔과 애도를 기록한 책이다.

 

 부모님의 공간은 그들의 부재를 증명한다. 병원에 계시다고 믿고 싶어도 현실은 거짓을 곧 드러낸다. 저자는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게 싫고 두렵다. 왜 자신이 그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화가 난다. 남겨진 자의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저한다. 건강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잡다한 것들,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한 손수 만든 옷들, 외가와 자신이 태어났을 상황에 대한 기록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에게 보낸 750통의 편지. 저자의 부모는 젊은 시절 나치 수용소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잔인한 고통의 시절을 살아온 그들의 연애편지를 읽기가 겁나는 건 당연하다. 외동딸에게 그 경험을 들려주고 싶지 않다. 털끝만큼도 그 시절에 닿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한 번도 그 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영원히 봉인되어야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건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일인가. 사랑을 담아, 서로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편지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 사랑할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삶을 향한 의지와 자신을 향했던 사랑도 함께. 큰언니의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나의 기분도 그러했다. 내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어느 해의 일기장을 펼쳤다가 낯익은 글씨체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행의 흔적이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큰언니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곳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함과 결핍함, 동요의 순간들과 함께. 상냥함이 깃든 슬픔이 퍼지는 것은 더 나중이다. 부드러운 아픔이 떠난 사람의 이미지를 둘러싼다. 죽음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었다. 그 흐름에는 지름길이 없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죽음은 삶에 속하며, 삶은 죽음을 껴안는다. (119~120쪽)

 

 그러니 부모님의 죽음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의 공간과 물건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정리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사라졌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는 크면 클수록 그들의 존재감도 커진다는 걸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애도의 기록이자 죽음에 대한 『수런거리는 유산들』이 증명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과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죽음은 그렇게 우리 삶에 존재한다. 동시에 부재한다. 며칠 후 명절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또 대화를 통해 떠난 가족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움의 두께가 얼음처럼 단단해진다.

 

 무의식이 과연 죽음을 아는지, 단지 이별만 아는 건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영원히 헤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영원히라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사는 법을 배우려면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부어야 할까? 우리는 성인이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을까? 몸속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간직하는 나무들처럼?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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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1-26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17-01-30 11:58   좋아요 1 | URL
건강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포근한 날들이어서 편하게 지낸 것 같아요.
항상 다정한 서니데이 님의 인사 고맙고 감사합니다.
 

 

 겨울을 살고 있다. 많은 눈이 내렸고 바람이 강하게 분다. 겨울다운 날들이다. 지난주에는 친구 집에 다녀왔다. 지난주는 방탕의 주였다. 그냥 전화통화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지척에 살지만 3년 가까이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다. 부끄러움이나 속상함을 감추지 않아도 괜찮은 친구다. 그러니까 나의 모든 것을 아는 친구인 것이다. 뜨거운 유자차를 마시고 딸기와 빵을 뜯어 먹으며 일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오후 늦게 길어진 햇살에 몸과 마음을 기댄 시간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이를 먹고 그리고 늙어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우리 제법 좋은 사이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온다. 떡국을 먹고 예배를 드리고 잠시 떨어졌던 가족을 만난다. 외국에 계신 선생님은 이즈음 한국이 그리울 것이다. 그리운 곳이 있다는 건 슬픈 건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대상이 있다는 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친한 동생이 명절 선물로 책과 컵을 선물했다. 그녀는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다. 설빔을 받은 것처럼 즐겁다. 나는 그것을 기다릴 것이고 기다리는 동안 충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몇 권의 책을 고른다. 조금 느리고 천천히 내게 와도 좋을 책들. 고독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기대하는 올리비아 랭의『외로운 도시』, 유홍준의 『안목』,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그리고 착한 가격의 한국문학 『호텔 프린스』.

 

 

 

 

 

 

 

 

 

 

 

 

 

 늙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건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는 말이다. 한치 앞에 닥칠 일도 모르며 사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가슴 한구석에 뿌리를 내렸다. 주어진 시간에 대해 낭비가 아닌 제대로 된 소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늦었지만 한 해의 리스트를 쓴다. 별반 다르지 않은 것들, 건강, 감사, 사람, 그리고 어떤 것.

 

 쌓였던 눈은 녹지만 겨울은 계속된다. 곧 봄이 올 거라는 생각은 잊는다. 겨울을 사는 일, 겨울에 사는 일, 지금의 계절은 겨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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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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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진 것들,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전부를 알려는 이는 많지 않다. 자신이 속한 기관과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할 뿐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게 속 편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기관이 상징하는 이미지, 그것은 누가 만든 것일까. 경찰서, 법원, 변호사 사무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곳이지만 거부감이 든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방문해서는 안 될 곳처럼 여겨진다. 판사 문유석은『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그런 편견이나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대체로 법원과 판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뿐 인가, 뉴스를 통해 수없이 많이 들어온 고소, 고발, 원고, 피고라는 용어도 정확하게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화나 협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도 법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법을 잘 안다고 억울한 일이나 사건 사고에서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법 없이 산다는 건 거짓말이다. 가기 싫어도 경찰서에 갈 일도 생기고 법원의 조정을 받을 일도 생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니까.

 

 책은 소설 형식으로 법원의 일상을 보여준다. 법원이라는 공간에서 인간이 아닌 판사로 존재하는 사람들, 판사와 인간 사이에서 오가며 고민하고 갈등한다. 법의 틀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다. 가상의 서울중앙지법 44부 합의부 재판부에서 한세상, 임바른, 박차오름 세 명의 판사가 맞는 다양한 사건은 언론을 통해 익숙한 것들이다. 술에 취한 여제자를 성추행한 교수의 사건, 의료사고로 죽은 아들에 대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시위를 하는 할머니, 잊힐 권리를 주장한 국회의원, 아버지의 재산으로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형제들의 분쟁사건,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사건.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억울하다고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누군가는 정당방위를 외친다.

 

 소설 속 사건을 읽다 보면 처음엔 원고의 편에 섰다가 피고의 말을 들으면 그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속 나의 판결과 판사의 판결이 같으면 기뻐하고 다르면 화가 나기도 했다. 하나의 사건에 딸린 기록지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은 정말 놀랐다. 양쪽의 말을 모두 정독해야 하는 일, 그리고 법률에 맞게 최선의 판결을 해야 하는 판사의 노고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등장하는 세 명의 판사는 가장 현명하고 지혜롭게 판결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밤을 새워 기록을 읽고 또 읽으며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특히 초임 판사 박차오름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소설 속 판사의 모습은 픽션이니 진짜 판사의 모습을 소설 속 그것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법정에서 가장 강한 자는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판사야. 바로 우리지. 그리고 가장 위험한 자도 우리고. 그걸 잊으면 안 돼.”(281쪽)

 

 그럼에도 소설을 읽고 난 후 마치 거대한 성역과 군주처럼 여겨졌던 법원과 판사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작아지고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도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바라보는 법원이라는 숲은 너무 멀리 있다. 그 안의 판사라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튼튼하게 잘 자란 나무가 좋은 숲을 이루듯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는 판사들이 믿음의 법원을 만들 것이다. 그리하면 법원이라는 숲은 그들만의 숲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모두의 숲으로 그 안에서 누군가는 쉼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런 숲을 희망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그 숲을 지키고 관리하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 시작은 관심이고 실천으로 『미스 함무라비』를 읽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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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의 달인 - 2014년 제4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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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부로 대한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에게 받은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 두고두고 마음 깊은 속에 자리 잡아 그것은 거대한 괴물처럼 자라기도 한다.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모르고 산다는 식상한 말로 대신할 수도 없다. 구효서의 『별명의 달인』은 이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의 모습처럼 편안하고 한편으로는 생경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화양연화」, 남편과 딸을 잃고 삶을 내려놓은 여자의 공허한 눈빛에서 절망을 읽는 「저 좀 봐줘요」, 갈망하는 삶을 찾아 고국을 떠난 누나의 목소리에서 어떤 불안을 감지하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 상대의 특징을 꿰뚫어 별명의 달인이 된 친구라면 아내가 왜 떠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은 「별명의 달인」까지 구효서의 소설 속 인물은 모두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해 잘 모른다. 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닮았다는 걸 우리는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보통의 부자 관계와는 다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 「바소 콘티누오」에서 음악을 향한 열정이 그렇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막내아들. 자신의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막내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같은 공간에서 그의 뜻을 거부하지 않고 살아간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가장 완벽하게 닮은 부자의 모습은 나란히 걷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주보기는 분명 아니지만 외면도 아니다. 마주보기보단 더한 마주보기라는 걸, 알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완강히 마주보기를 꺼리는, 두 사람에게 작용하는 동일한 종류의 의지가 실은 모종의 연대거나 유대라는 걸. 그리움, 혹은 면구(面灸)의 유대.’ (「바소 콘티누오」, 25~26쪽)

 

 아버지와 아들이 그러하듯 「모란꽃」에서는 어머니와 딸이 그렇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펄 벅의 소설 표지의 꽃에 대한 형제들의 기억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저마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의미나 목적을 두지 않고 글쓰기를 하는 화자는 엄마의 중얼거림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답을 듣기 위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견디기 위한 말들이었다. 형제들의 기억 속에 표지가 모란꽃 아니더라도 그 책을 기억하며 그 시절을 공유할 수 있었다.

 

 ‘엄마는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숨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상 참 모를 것투성이여, 나가 왜 사는 중 알았으면 진즉 못 살았을 것이다…… 엄마의 엄청난 말들이 허공에 흩어졌다. 글로 쓰니까,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쓸모 있는 내용도 아니고,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었으나, 흩어져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모란꽃」, 80쪽)

 

   ‘그 속절없는 일에 애초부터 무슨 이유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질 않은가. 버릇처럼 숨처럼 그래온 것뿐이니까. 40년간 하염없이 이어져오기만 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이어져갈 거니까.’ (「모란꽃」, 112쪽)

 

 그게 무엇이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놓치고 절망의 늪에서 그 존재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삶은 이전과는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그런 이유를 붙이자면 암 투병 중 병원에서 사라진 형과 언어장애가 있는 동생의 이야기「6431-워딩.hwp」에서 동생에게 말(글)을 가르쳐준 형은 그런 존재였다. 형은 모두에게 사라진 존재지만 동생은 끊임없이 그와 소통하는 기이한 이야기.

 

 ‘나에겐 말과 글이 따로일 수 없다. 허공에서 흩어지되 무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거듭 뜻을 일깨우는 게 형의 말이라면, 내 말은 언제든 다시 들춰볼 수 있는 글이 된다.’ (「6431-워딩.hwp」, 142쪽)

 

 가족과 함께 읽으면 하나의 추억을 소환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숨쉬는 것처럼 편안하고 쉬운 일상은 어디에도 없지만 숨쉬는 것처럼 지속되는 일상에 대하여. 닮았지만 닮지 않은 이야기들, 알 것 같지만 어렵게 다가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가족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가족의 이야기. 구효서는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하나 같을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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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7-03-04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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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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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함께 할 존재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가장 깊게 나를 알아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그런 존재다. 모든 감정을 나누며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풍경을 마주했을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을 생각한다. 말을 나눌 수 없는 대상도 있다. 애완동물, 아끼는 물건, 자주 찾는 공간, 꽃, 나무, 바다... 끝없이 확장된다.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듯이 말이다.

 

 아무 기대 없이 읽게 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은 그런 존재와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창한 일상이 아닌 작고 소소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충만함, 그리고 ‘나’라는 존재와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 품고 있는 영롱한 빛을 보여주었다. 영원한 여름으로 남은 그 여름이 떠올라서 숨을 고르는 순간도 있었지만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바닷바람의 차갑고 달콤함 맛으로 나를 채우고 말았다. 주인공 마리가 표현한 이런 느낌처럼.

 

 얼음은 엷고도 달콤하게 사라진다. 그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다, 그저 단순히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 자잘하고 하얀 안개 같던 것이 점차 덩어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물이 된다. 모두 달콤하게 배로 들어간다. 그런 느낌. (100쪽)

 

 대학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한 마리는 단순하게 빙수가 좋아서 고향 바닷가 솔숲에 작은 빙수 가게를 차린다. 엄마 친구의 딸 하지메는 어린 시절 화재로 얼굴 오른쪽에 화상 흉터를 지녔다. 자신을 구해주고 평생을 한 집에서 살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지친 하지메와 함께 보낸 여름 이야기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흉터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하지메는 조용하고 가냘프다. 마리는 화려했던 관광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폐허처럼 변하는 고향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메에게 바다와 온천을 소개하며 과거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우리 인간은 매 순간 추억을 만들면서 시간 속을 헤엄쳐 가지만, 끝내는 깜깜하고 거대한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가.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어. 죽을 때까지 계속.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그런 한편으로 계속해서 잃어 갈 수밖에는. (79쪽)

 

 마리와 하지메의 일과는 단순하다. 네 가지 종류의 빙수를 팔고 쉬는 시간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드나무 아래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당당하고 능동적인 마리에 비해 조용하고 수동적인 하지메는 조금씩 친해진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재산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일들을 경험한 하지메에게 마리는 과한 조언이나 위로가 아닌 바다와 자신의 감정과 일에 대해 말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주는 기쁨, 빙수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이 주는 즐거움, 그런 마리를 통해 하지메의 어두운 마음은 천천히 환해진다. 마리와 하지메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고 있었다. 말이 아닌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고 현재의 일상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빙수 가게로 돈을 많이 벌지 않겠다는 마리의 다짐과 마리가 그린 이상한 생물 그림을 인형으로 만들겠다는 하지메의 계획이 그러했다.

 

 ‘모두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그만큼 너그러울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별빛이 이어지듯 그것은 커다란 빛이 되어, 맞설 길이 없을 만큼 거대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 보이리라. (151쪽)

 

 바다 수영을 할 수 없다는 건 하지메가 떠난다는 것이다. 하지메와 함께 보낸 여름이 끝나고 가게는 한산하다. 마리가 빙수 가게에서 빙수를 만들 때 하지메는 자신의 인형을 만들 것이다. 이제 다음 여름을 기대할 수 있다. 그건 하지메가 온다는 일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이 아니라 소중한 하루가 쌓여 미래의 디딤돌이 된다. 때로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보며 아파하면서 추억할 것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과 내일이 주는 감동을 아는 사람은 마리와 하지메처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조금은 쓸쓸하고 차가운 바다를 곁에 둔 겨울, 마리와 하지메를 만난 그 여름을 반짝이는 빛으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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